메시지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11. 6. 04:38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3

 

성경은 신자들의 삶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비유합니다. 그 중에는 전쟁터에서 싸움을 하는 군인,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 씨를 심고 거두는 농부, 먼 길을 여행하는 순례자 등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는 자들의 삶을 경주(race)”로 비유합니다. 그리고 경주자(runner)로서 어떻게 하면 이 달음질을 끝까지 잘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경주 100m 200m의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과 같이 먼 거리를 달리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 경주를 위해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인내(perseverance)”입니다. 저는 마라톤을 풀 코스로 달려본 경험은 없지만, km의 단축마라톤이나 군대에서 군장을 메고 먼 거리를 달리는 구보를 해보았습니다. 이런 경주를 할 때, 출발선에 선 주자들은 대개 몹시 흥분되고 긴장된 마음으로 멋진 레이스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얼마간 달리다 보면 이런 처음의 흥분은 곧 가십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발과 다리는 무거워집니다. 목적지는 아직 까마득히 멀리 있습니다. 출발선에서 들리던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격려의 소리도 이제는 사라지고, 홀로 외롭게 달리는 내게 들리는 것은 오직 나의 가쁜 숨소리뿐입니다. 그늘에 앉아서 편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달리기를 포기하고 쉬고 싶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 고통입니다. 이것이 또한 평생을 걸쳐 믿음의 장거리 경주를 하는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이 경주를 끝까지 훌륭하게달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중요한 지침들을 줍니다.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신자들의 영적 실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주를 마치고 영광에 들어간 수많은 증인들이 거대한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소외된 소수자(marginalized minorit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하시고 (누가복음 10:3),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하십니다 (누가복음 12:32). 이 말씀들은 제자들의 이중적인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곧 이들은 세상에서는 이리 떼에 둘러싸인 작은 양 무리와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입니다. 베드로 또한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 (scattered strangers)”라고 부르며 (베드로전서 1:1), 동시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9).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이러한 이중적인 상황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에는 사나운 이리들이 있고, 치명적인 유혹들이 숨어있고,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이나 늪과 같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이곳은 쉴 곳이나 함께 어울려 즐거움을 찾을 곳이 아니며, 정착할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곳은 계속 달려야 하는 레이스 코스입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알아주지 않는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우리는 자주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세상에서 소외된 소수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택하신 백성(chosen people)”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수없이 많은 믿음의 증인들과, 천군천사들과,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경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탄식하며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주자인 우리가 처한 영적인 현실입니다.

 

달리기를 하는 우리는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장거리 경주를 달리는 선수가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경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바꾸어 말하자면, “죄란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유명한 만화영화 심슨 가족(The Simpsons)”의 한 장면입니다.

호머 심슨과 자판기.png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하는 호머 심슨은 홀로 야근을 하다가 그만 사고를 당합니다. 그의 두 팔이 각각 음료수 캔과 과자를 파는 자동판매기에 끼인 것입니다. 그를 구하려고 사람들이 왔는데, 도저히 팔을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왼쪽에 있는 사람은 전기 톱을 가지고 심슨씨의 팔을 절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전등을 비추며 자동판매기의 내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심슨씨에게 묻습니다. “호머, 지금 음료수 캔을 붙들고 있는 겁니까 (Homer, are you just holding onto the can)?” 사실은 자동판매기에 팔이 끼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밤 야근을 하던 심슨씨는 동전이 없자 자동판매기 밑으로 손을 넣어 캔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팔을 기계 안으로 밀어 넣어서 겨우 캔을 하나 붙잡기는 했는데 그것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캔을 포기할 수 없었던 심슨씨는 그렇게 손으로 캔을 붙들고 밤을 새웠습니다. 심지어 팔을 잘라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캔을 놓지 않았습니다. 심슨씨의 팔을 잡은 것은 자동판매기가 아니라 그의 욕심이었습니다. “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십니다. 우리의 목숨과 비교하면 온 천하는 콜라 한 병의 가치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치 자석(magnet)에 끌리는 핀(pin)처럼, 우리 속의 불신과 욕심은 우리의 발을 세상에 붙들어 매고 오도가도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불신과 욕심의 죄를 회개하고, 캔을 붙들고 있는 손을 펴는 것입니다. 저자는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자주이런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내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날개처럼, 바람처럼 가벼운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볍지 않다면 내 마음을 (발을)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놓아야 (let go) 합니다.

 

저자는 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달리는 경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또는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믿음의 주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Lord”라는 뜻이 아니고, 믿음의 창시자 (originator), 모델 (exemplar), 앞에 선 인도자 (advancer, leader)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 속에 믿음을 시작하시고, 또 이 믿음이 자라도록 우리 앞에서 본을 보이시며, 그것이 온전하게 될 때까지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주에서 우리가 항상 바라보아야 할 분 또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그에게 하신 말씀은 나를 따라 오너라입니다 (마태복음 4:19). 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마지막 주신 말씀도 동일하게 나를 따르라입니다 (요한복음 21:19, 21). 따라서 믿음의 경주는 처음부터 끝까지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달리는, 마치 “2 3각 달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호흡과 스텝을 예수님과 맞추면 쉽게 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매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달리기곧 주님께서 우리 앞에 본을 보여 달리신 경주의 전체를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또 추가하여 말씀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이 말씀들은 주님께서 달리신 경주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죄인들을 참으시고 그들을 위해서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17절 말씀입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하시더라.” 이 전도의 말씀은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깨우시고 돌이켜 천국을 영접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천국 복음을 영접하기보다, 주님을 거역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끝까지 이 경주를 감당하셨습니다. 중간에 입을 닫고 전도하기를 멈추시거나, 화를 내고 죄인들을 떠나거나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역하는 죄인들을 참으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서 내가 지금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지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거역하는 세상의 죄를 느끼며 고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거역하는 세상의 죄를 느끼지 못한다면, 필시 우리 자신이 그 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달리기를 하는 대신, 우리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즐기며 그 죄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세상의 영광을 좆거나 그 영광에 젖어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에 대해 상한 마음을 갖고 입을 열어 전도해야 합니다. 회개와 천국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감당해야 하는 믿음의 경주입니다.

 

저자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권면합니다. 인내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들을 이겨내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바 달려야 할 코스가 있습니다. 이 코스에는 많은 고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은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것입니다 (로마서 8:18). 우리 각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