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1-20)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10. 31. 01:2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 1:1-20

 

오늘 우리가 공부할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첫 장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여러가지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치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방향을 잡기 위해서 의지하는 북극성과 같습니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 상에 있기 때문에, 다른 별들과 달리 움직이지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속히 될 일”(1)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늘 마음에 두고 유념해야 합니다. 이에 3절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 사람들에게 미래란 컴컴한 어둠의 세계입니다. 시간에 관한 한,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앞날을 예상하고 전망합니다. 통계 수치를 이용하기도 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심지어 점쟁이의 말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결코 우리를 영원한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100년 앞을 내다본다고 하더라도 이는 본질적으로 다 어둠의 일이며, 그 어두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처음이요 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시기로 작정하신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우리의 항해 길을 인도하는 별과 같습니다. 비록 말씀의 깊은 의미를 다 헤아릴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자주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1절에서는 이 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계시하신 것 (revelation by Jesus),” 또는 예수님께 대한 계시(revelation about Jesus)”라고 해석됩니다. 본문 전체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두 해석이 모두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상 역사가 그 결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결국이란 예수님의 온전한 드러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세상의 결말에 예수님께서 온전히 드러나시며, 각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때가 되어 사람들은 재판장이신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원한 미래,” 곧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형벌을 결정하시는 심판주가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두려워하며 울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날을 준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날에 놀라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형상이 나옵니다. 12-1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이 말씀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제사장이십니다. 지혜가 한이 없으시며,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눈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원수 마귀를 그 발 아래 밟으시며 만물을 말씀으로 붙드시는 권세입니다. 천사들을 부려 그 뜻을 이루시며, 세상을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 밝히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을 때, 요한은 두려워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 앞에 드러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자태를 감당할 수가 없어 엎드러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에 노출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알고 경험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24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에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 사도 요한이 이 계시의 말씀을 받을 때 그는 밧모라고 하는 섬에 있었습니다. 9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이 당시의 로마 황제인 도미티안(Domitian)은 크리스천들을 핍박하였는데, 요한도 이로 인해 이 섬으로 유배당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자신의 삶을 가리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5:1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신자의 세상에서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주님의 영광을 바라며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자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의 영광이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영광의 주님 앞에 서게 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영광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삶을 삽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요한이 만난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으로 계실 때의 예수님과는 사뭇 다르십니다. 물론 같은 예수님이시지만, 주님의 겸손한 육체로 감추어진 모습이 이제 온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며칠 전에 치과 공부를 하고 있는 딸 마리아를 만나서 이빨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제 3년차 학생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마리아는 아빠를 자신의 환자로 등록했습니다. 아빠와 딸이 아니라, 환자와 의사로 만난 것입니다. 가운을 입고 제 이빨을 치료하는 딸의 모습은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어린이마리아와 사뭇 달랐습니다. 치료 후에 마리아는 제게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이런 저런 조언들을 해주었습니다. “의사마리아를 만나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좀 어색했지만, 앞으로 익숙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시골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자 동네 사람들은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하며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마가복음 6:3). 이들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 예수와는 터놓고 친하게 지낼 의향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영적인 지식은 목수 예수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2000년 전에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고난의 예수님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17,18절에,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죽은 자 같은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같은 표현들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4절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며, 그리고 8절에도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심은 주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대주재 하나님이심을 가리킵니다. 이 전능하신 주님은 사망을 이기셨을 뿐 아니라, 사망자체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주이십니다.

 

우리의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주님에 대한 지식을 넓혀가며, 영광의 주님께 대하여 익숙해져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자라나는 것이며, 영생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크리스천의 성장에 대해서, 우리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성장의 핵심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성장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이 내 영혼에 계시되는 만큼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믿음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또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처음이시며 끝이 되십니다.

 

3절에 이르기를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 날을 위해 힘써 해야 할 일은 성경에 쓰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힘써 공부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달아 마음에 새기며, 영광의 주 예수님을 예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계시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데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광의 주님께서 이미우리 속에 임하시며 나의 삶을 다스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영광과 능력으로 오실 때, 애곡하는 대신 찬송하며 기뻐하는 우리 각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