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35-39)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8. 1. 2. 04:12

전도하러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35-39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데 구약은 창조(creation)의 역사를, 신약은 재창조(re-creation)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란 하나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재창조란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전도입니다. 전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여 사람들의 귀에 들려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세상이 창조된 것처럼, 전도를 통해 말씀이 사람의 귀에 선포되고 그 들려진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영혼에 재창조의 신비로운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전도 이외에 재창조를 위한 다른 매개체(medium)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세상이 생겨날 수 없는 것처럼, 전도가 없이는 영혼의 구원도 없습니다. 오직 전도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재창조의 매체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요구입니다. 이것이 오늘 설교 말씀의 요지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께서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미명에 (아직 어두울 때)”라고 한 것을 보면, 매우 이른 시간인 것 같습니다. 또 늦게 일어난 제자들이 예수님 계신 곳을 찾아가 만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일정한 곳에서 기도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이른 아침에 정해진 곳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역에 필수적인 일과였습니다. 신자의 신앙 생활에서 기도는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신을 내어쫓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마가복음 9:29). 이 말씀에 따르면 기도는 믿는 자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자주 기도를 깨어있는 삶과 연관시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태복음 26:41) 하시며, 사도 바울 또한 깨어 구하기를 힘쓰라” (에베소서 6:18) 하고 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 4:2) 권면합니다. 특히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아직 어두울 때에깨어 기도하신 것을 생각하면, 기도는 신자를 깨운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난다는 말은 흔히 이나 에서 깨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깨어난다는 말의 참 뜻은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나는 것(wake up to God)”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도가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집을 떠나서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을 향해 여행을 합니다. 정든 집을 떠나서 홀로 낯선 곳을 향해 길을 걷고 있는 야곱의 마음은 외롭고, 두렵고, 무거웠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자 야곱은 길 가에 있는 돌을 베개 삼아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그는 꿈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늘에까지 닿은 사닥다리가 세워져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바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위에서 야곱에게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가 누워있는 그 땅을 주실 것과,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번성할 것과, 또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며, 그를 지키시며, 결코 그를 떠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에 야곱이 잠을 깨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창세기 28:16). 야곱에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는 마치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깊은 어두움 속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려 있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의 천사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야곱이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것이 깨어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영적으로 잠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지 않다면, 그의 삶은 어둠 속의 방황이 될 것입니다. 새벽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잠든 내 영혼을 깨우는 매우 중요한 일과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와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전날 예수님께서 많은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급히 달려온 것을 볼 때,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매우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과 또 이로 인해 주님께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제자들은 몹시 흥분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바로 그 구원자이심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전혀 기대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38절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침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을 뒤로 하시고, 이웃의 다른 마을들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전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전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전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전도의 절대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세상에 전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면 좋습니다하고 권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단지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는 자이기 때문에, 말씀을 빠뜨리거나, 더하거나,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로 전달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말의 권위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사람들이 자기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피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권세에 의지하여 그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의지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자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전도자 예수님께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4:17).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오는 천국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즐기고 있는 여러 즐거움들이 있고, 세상에서 경영하고 있는 많은 사업들이 있고, 세상에서 신경을 써야 할 많은 인간관계들이 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온전히 돌이켜 오는 천국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전도의 말씀을 거역할 어떤 이유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전도는 듣는 자들의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전도는 또한 절대적인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책이나 인터넷이나 강연 등을 통해서 이런 지식들을 전파하고 또 얻습니다. 오늘날은 지식이 넘쳐나서 이런 세상을 지식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지식은 마치 시뻘건 물이 사납게 흐르는 홍수와 같습니다. 이 지식의 홍수는 너무 빨리 흘러가기 때문에 오늘 새로운 지식은 내일 전혀 쓸모 없게 됩니다. 또 홍수에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운 것처럼, 지식의 홍수 속에서 참된 지식을 얻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어렵습니다. 이런 세상의 지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에 전도자로서 훈련 받으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동시에 직장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당시 최고의 IT기업인 IBM에서 여러가지 컴퓨터 관련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을 배운다는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배웠던 컴퓨터 지식은 전혀 쓸모 없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더욱 새로울 뿐 아니라 그 끝 모를 신비로움이 매일 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베드로전서 1:24,25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노래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누구에게 전도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계신 마을에서 이미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1:21). 그리고 이제 다른 가까운 마을로 이동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교회들은 자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선교지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하지만, 정작 근방에 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치 저인망 그물로 바닥을 휩쓸듯이 갈릴리 온 마을들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39).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전도의 대상입니다. 마치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큰 딸 마리아가 어렸을 때 병치레를 자주 해서, 저도 아이와 함께 병원 입원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병실에는 여러 명의 어린이 환자들과 그들의 엄마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엄마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정말 할렐루야 아줌마였습니다. 그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치지 않고 병실에 모여있는 다른 보호자들과 함께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딱딱한 설교가 아니라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의 수다처럼 밝고 즐겁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서 성경 이야기들을 풀어냈습니다. 다른 병실들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 병실은 전혀 병실 같지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아줌마가 환한 빛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에게로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 주변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전도하시자 귀신들이 쫓겨 나갔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 다만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a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전도자는 입을 열어 다만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자에게는 능력과 성령과 확신이 함께 임합니다. 전도자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자의 말씀을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로 확증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화려한 변론이나 미사여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전도일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신 것이며, 전도는 세상을 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매우 권능 있게 하셨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요구이지만, 전도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도보다 더 급박해 보이는 다른 필요들(needs)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런 필요들을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심을 생각하면,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병을 고쳐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전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전하는 전도를 대신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 새벽기도는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만큼 전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전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혼들을 위해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희생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고난이 따릅니다. 우리가 입을 닫고 있으면 세상은 공동묘지처럼평화로울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의 입을 열면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움직이며,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귀신이 쫓겨나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앞에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이 시대를 섬길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기도전도에서 성장하고 열매 맺는 전도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