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리니
이사야 11:1-10
오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천국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6-9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세상 사람들도 천국의 행복한 삶을 동경하며, 그러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애를 씁니다. 어떤 나라나 사회나 개인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가늠하는 보편적인 척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도 “소득”일 것입니다. 1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더 행복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또 단순히 1인당 평균 소득이 높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라면 사람들의 행복 지수도 그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번영과 복지는 모든 정치인들의 가장 중요한 공약이 되었습니다. “소득” 곧 돈이 세상 나라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라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동산을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완전한 낙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동산을 완전한 낙원으로 만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상태가 바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상태”가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얼핏 생각하면 좀 싱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게 천국이라면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을 잘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단 마귀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그가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거짓말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왜곡시킨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에덴 동산을 주시고, 서로 사랑할 파트너를 주시고, 온갖 아름답고 맛있는 과실을 주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도 주셨습니다. 심지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는 계명을 주신 것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그들의 삶 중심에 모시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단 마귀는 “너희가 이 실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며, 하나님을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고 시기하는 훼방자로 둔갑시켰습니다. 사단에 속은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죄는 더욱 깊어지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더욱 더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하나님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시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왕이거나, 제사장이거나,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지도자였습니다. 이들의 사명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을 보살피고 섬기고 인도하며, 이를 통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러한 직무를 가장 잘 수행한 사람은 아마도 다윗왕이 아닐까 합니다. 사무엘하 5:12절은 사무엘상-하 전체를 요약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였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다윗을 왕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다윗왕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하게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많은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시편 103:8-11). 다윗은 우리와 같은 죄인이었지만, 오히려 그 죄로 인해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겼습니다. 그는 이 하나님을 증거하며, 또 자신이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인자한 왕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도자들이 있는데 하나는 악한
지배자(wicked ruler)이며, 다른 하나는 겸손한
청지기(humble minister)입니다. 악한 지배자는
자기밖에는 모르는 자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아래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이런 지도자 밑에서 사람들은
신음하며 고통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전혀 그 뜻을 펴실 수가 없어 좌절하십니다. 하지만 겸손한 청지기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자신을 완전히 버립니다.
그는 자신을 단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사람들 가운데 실행하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이런
지도자를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체험하며, 이로 인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집니다. 천국을 체험하게 됩니다. 요즘은
Minister라는 단어는 주로 높은 사람들의 타이틀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국방부 장관을 Defense Minister라고 하며, 국무총리는 Prime Minister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래 ‘Minister’는 “수종 드는 사람” “섬기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앞 부분의 ‘mini’는 ‘작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minister’는
‘작은 자’입니다.
Minister가 작은 자이며 또한 작은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직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의 작은 자를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minister는 마땅히 가장 작은 자를 책임지고 감당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가복음 9:48절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가장 큰 자니라.”
이 말씀은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렇게 작은 자를 가장 큰 자로 여기고 마치 주님을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듯 그를 영접하고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minister입니다.
사실 진정한 minister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minister가 되셔서 세상을 섬기셨는가를 분명하고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언된 메시아 예수님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령이 충만한 minister”이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은 여호와의 신 곧 성령으로 충만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을 가리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시고 이에 전심으로 순종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빠짐없이 빼곡하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혜와 지식으로 세상을 섬기셨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낮은 자들을 정직과 공의와 성실로 섬기시고, 사단 마귀를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우리와 같이 연약한 육신을 입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의 지식을 왜곡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가장 높은 하나님의 지식을 세상의 가장 낮은 자에게까지 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가 그리는 천국에는 유독 어린 것들, 약한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린 양, 어린 염소, 송아지, 암소, 젖 먹는 아이와 이제 막 젖을 뗀 어린 아이는 모두 작은 자들이며 상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해침이나 상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냅니다. 심지어 사자와 표범과 이리와 독사 같은 사납고 위험한 맹수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쉬고 장난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예수님과 같은 minister입니다. Minister인 내가 할 일은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곧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과 작은 자 사이에 중매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단순한 “말”이나 “글”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4,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냥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식은 작은 자를 큰 능력으로 구원하며, 거룩하게 하며, 믿음에 굳게 세우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전해질 때, 그 사람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천국이 임합니다. 우리같이 작은 자들에게 섬기는 종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각자도 예수님을 닮은 겸손하고 충성된 minister가 되어 한 작은 자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할 수 있기를,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천국이 세상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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