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6-18
생물학 용어로 DNA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의 세포 속에 들어있는 Deoxyribo-Nucleic Acid(디옥시리보 핵산)의 이니셜로, 이것은 해당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곧 그 생물을 구성하는 여러 기관들의 모양, 크기, 색깔 등의 정보가 모두 이 DNA에 들어있습니다. 생물들은 이 DNA에 적힌 말씀 그대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으며, 번식도 합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똑같은 DNA 곧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면에서 서로 꼭 닮았습니다. DNA는 “씨”를 통해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해지며, 일단 물려받은 DNA는 평생 바뀌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DNA는 생물학 용어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나 사물의 근본적이고 변하지 않는 특징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근면성은 한국인의 DNA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일을 열심히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DNA”에 해당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창세기 1:26,27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또 창세기 5: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위의 말씀들에서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이 바로 DNA입니다. 5:3절 말씀 곧 아담이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1:26,27절 말씀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DNA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DNA는 하나님의 생김새나 색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몸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DNA는 하나님의 신성(神性–divine natures)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DNA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단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DNA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DNA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DNA입니다. 세상의 DNA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성경 말씀을 꼽으라면 저는 요한1서 2:15-17절을 선택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이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사도 요한이 언급하는바, 우리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세상 DNA의 근본 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입니다. 곧 “세상 사랑”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랑”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보다 자세히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것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며, 또 “지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타락한 우리 사람은 처음부터 이 세상 DNA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평생 이 “세상 사랑”의 본성을 따라 살다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허무하게 인생을 끝내게 됩니다. 세상 DNA를 통해 우리가 맺는 열매란 많은 죄와, 죽음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영원한 형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산해진미를 누리며, 호화롭고 살며,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은 “풀의 꽃”처럼 곧 사라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하고 싶은 설교의 요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씨”로 주신 바 하나님의 DNA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증거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요한복음 서두에 소개된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자신이 하나님이 되시며, 온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말씀되신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심겨진 씨앗”입니다. 그리고 이 씨앗은 “하나님의 DNA”를 품고 있습니다. 곧 신령하고 온전한 씨입니다. 깨끗하고, 아름답고, 흠이 없고, 강하며, 또 맛있고, 향기롭고, 영원한 열매를 맺는 씨앗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씨앗을 세상에 심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요한1서 2:14).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속에 거한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입니다.
앞에서 타락한 사람들의 DNA의 뿌리는 “세상 사랑”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곧 하나님의 DNA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알고 누리는 지식” 이것이 바로 신령한 DNA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John Owen이라는 영국인 신학자는 그의 책 “Communion with God”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origins and source of all divine dispensations lay in the Father’s love.” 제 말로 번역하자면 “생겨난 모든 것들의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6,7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까지도 기억하시고, 우리들의 머리털 개수까지도 다 헤아리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참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시면 그 새를 지으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머리카락을 만지시면서 그것들을 다 만드시고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가에 핀 백합화를 보시고 그것을 예쁘게 옷 입히신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밤 하늘에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면 그것을 지으셔서 밤을 밝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고 있는 DNA 곧 하나님의 형상은 더욱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며,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심을 믿지 않고 대신 진화론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으니 하나님의 창조도 물론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은 더더욱 믿지 않습니다. 그대신 “우연(Accident)”이 우주와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Wikipedia에서는 진화(Evolution)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Evolution is change in the heritable characteristics of biological populations over successive generations. These characteristics are the expressions of genes that are passed on from parent to offspring during reproduction. (진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생물의 유전적 형질들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질들은 생식 활동을 통해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자들이 발현된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진화론은 시작부터 “번식(reproduction)”과 “유전(inheritance)”을 가정하고 있으며, 유전과 번식이야말로 진화론이 성립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메커니즘입니다. 곧 어떤 생물이 자손을 번식하지 못한다면 진화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전과 번식 자체가 이미 고도로 복잡한 생명활동이라는 사실입니다. Synthia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것은 일종의 박테리아인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자들이 합성한(synthetic) 일종의 인공 박테리아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만든 (create) 것은 아니고, 기존의 박테리아로부터 얻은 DNA를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여 합성한 것입니다. 이 실험 프로젝트의 목적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 세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생명체” 곧 “살아있는 것”이란 스스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고, 자극에 반응하고, 번식할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많은 실험들을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인 Synthia Version 3.0은 473개의 유전자 그리고 531,560개의 염기쌍(base pairs)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개의 유전자가 각각 평균 1,100-1,200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것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 473개의 유전자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지구상에 최초로 생명체가 우연히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연히 531,560개의 염기쌍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염기서열대로 줄을 서서 400여 개의 유전자들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유전자들이 그냥 정보로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단세포 생물로 “발현(expression)”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100번을 양보해서 우연히 한두 개의 유전자를 갖춘 존재가 생겨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전과 번식을 할 수 없다면 진화가 시작될 수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 하나가 늘어나는데 약 100만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이 가정에 따르면 유전자 1000개를 가진 박테리아가 유전자 20,000개를 가진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약 200억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Synthia 수준의 생물체가 되기까지도 최소한 4억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진화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 4억년의 긴 세월을 견뎌내며 “유전과 번식이 없이” 스스로 Synthia가 될 수 있는 어떤 “생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존재는 없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단세포 박테리아”가 그들의 빛이요 생명이며 DNA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단세포 박테리아”가 그들이 믿는 모든 믿음들을 지탱해주는 기초이며 기둥이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그들을 흑암의 세계로 이어주는 견고한 다리(bridge)가 됩니다. 이 흑암의 세계는 빛도 없고,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는 공허한 세계입니다. 물론 그곳에는 DNA라는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박테리아를 닮은 DNA도 없습니다. 이 흑암의 세계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그 결국에 도달한 목적지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0-23절 말씀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명들은 모두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Synthia가 갖고 있는 473개의 유전자 중 149개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생명 유지를 위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심지어 “단세포 박테리아”까지도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단세포 박테리아”조차 그 손가락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진화론이라는 허탄한 이야기를 믿을까요? 이는 진화론이 과학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다리(bridge)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고, 그들의 교만과 불신과 죄악으로 그 다리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길이 없어진 사람에게 유일하게 남은 목적지는 생명도 빛도 없는 허망한 흑암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거짓말들과 단세포 박테리아를 엮어서 이 흑암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를 세웠습니다. 다리 저편의 컴컴한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과 죽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도리가 없이 두려움을 가득 안고 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 크신 사랑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DNA는 우리 육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바 세포 속에 새겨져 있는 유전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말씀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영이 되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새겨 넣으신 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이 신령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육신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DNA를 품으신 한 알의 씨앗입니다. 이 씨가 세상에 뿌려지고 우리 각자의 영혼 속에 심겨져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DNA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것들은 정말 듣기만 해도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화려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우리 눈으로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사야 53:2).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아름다우심 곧 그의 크신 능력과 사랑과 지혜와 생명을 그 안에 품으신 “씨앗”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 씨앗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DNA입니다. 디모데후서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갈라디아서 6:22절은 또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또 빌립보서 2:5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렇게 말씀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씨가 우리 속에 심겨지고 자라나면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세상의 DNA를 회개하고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자라도록 성령께 순종하며 매일 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령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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