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세기 3:1-2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9. 11. 11. 21:59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세기 3:1-24

 

창세기 3장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하고 타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유명한 만큼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간과하기도 쉽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설화들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3장은 우리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설명한 글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볼 때 올바른 답을 써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문제를 잘 읽고 어떤 답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도, 자동차 정비사가 고장 난 차를 고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선은 환자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또 차가 어떻게 고장 났는지를 올바로 진단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은 에덴 동산입니다. 그곳은 모든 것이 완전하여 하나님 보시기 심히 좋은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낙원 된 세상에 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의 세상과 그곳에 사는 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낙원을 회복하기 위해서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의 의미를 우리가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 대한 소개로 시작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고 설명합니다. “간교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간교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악하지만 그 악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 악함을 포착하기가 매우 어려운 성질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속에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름다운 무늬를 자랑하는 뱀과 같습니다. 이 뱀은 바로 사단 마귀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 이와 같은 간교함으로 인해 사람이 사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것의 악한 꾀를 피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은 사단의 정체를 여러 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9절 말씀입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사단은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또 계시록 12:10절에서는 사단을 가리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accuser)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8:44절에서 예수님은 사단을 가리켜 살인한 자 (murderer)”이며 거짓말쟁이 (liar)”라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단을 사람들을 거짓말로 꾀어 죄를 짓게 하고 또 이를 하나님께 고소함으로써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이 사단 마귀야말로 우리의 원수(adversary)이며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귀를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고 합니다. “간교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깨어 있으면서 뱀처럼 지혜롭게” (마태복음 10:16)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뱀이 여자를 꾀는 모습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죄에 빠뜨리는 사단 마귀의 역사의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이 됩니다. 첫째는 여자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의심의 밭에 거짓말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대신 거짓된 믿음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유혹의 시작은 의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은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뱀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널리 알려진 당연한 사실처럼 여자 앞에 툭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여자가 이전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그녀를 이끌어갔습니다. 그것은 의심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이 에덴 동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또 이를 기쁘고 자유롭게 누렸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조차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들을 따먹다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서면 밝게 웃으면서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지!”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신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하나님께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숨기시는 이유가 있어서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금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풍요롭고 아름답던 에덴 동산은 보이지 않고 이제 자신이 이상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뱀의 질문에 대한 여자의 대답은 그녀의 마음이 의심으로 흔들려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자유롭게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제외한 모든 나무를 사람들이 자유롭게 먹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이것은 더 이상 크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정확히 말하지 않고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라고 두루뭉실하게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면서 그녀의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본래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신 것을, 그냥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말함으로써 정녕 (surely)”이라는 말을 빼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시켰습니다. 본래 여자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과 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해서, 사단이 그 마음에 거짓말의 씨를 뿌릴 틈새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의심으로 크게 흔들린 그녀의 마음 곳곳에 거짓의 씨를 뿌릴만한 틈새들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굳게 붙드는 대신, 이제 다른 이들의 말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뱀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마음에 거짓의 씨들을 마음껏 뿌려댔습니다. 4-5절에 뱀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surely die)”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not surely die)”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마음에 여러 거짓된 생각들을 심었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교만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라이벌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거짓 소망을 심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기보다는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여자가 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자 그녀의 눈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본래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그녀는 늘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 속에 그어놓으신 보이지 않는 ()”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은 자신의 거짓말로 그 선을 지워버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뱀의 거짓말이 여자의 마음에 자유를 준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앞에 저 높은 곳을 향한탄탄대로가 놓여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앞에 펼쳐진 자유는 저 높은 곳을 향한탄탄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끝 모를 추락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탐하여 이것을 따먹고 또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여자가 변해가는, 다시 말해서, 타락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결과를 가져온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뱀의 거짓말이며 다른 하나는 여자의 탐욕입니다. 뱀의 거짓말은 그녀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신 탐욕이 그녀를 사로잡았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하신 것이 그녀의 눈에 탐스럽게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뱀이 인도하는 거짓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뱀의 거짓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간교해서 사람은 그것이 거짓이며 나쁜 것임을 전혀 눈치조차 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탐욕은 이 뱀이 꾸며놓은 거짓 세계에서 자유롭게 그 꿈을 펼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이름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4, 10, 12, 18, 21, 25, 31).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참으로 ()”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 참으로 ()”인 것입니다. 하지만 뱀은 거짓말을 해서, 선악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혼란하게 만듭니다. 이사야서 5: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사단은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을 통해 세상에 거짓의 씨를 뿌려댑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말들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자신의 탐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구하는 대신 나 보기에 좋은 것을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정반대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것이 선하게 보이며, 어둠이 빛으로 보이며, 쓴 것이 달게 느껴집니다. 이는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이후 사람은 선악을 구분하는자신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2절에는 흥미로운 말씀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기서 아름다움을 보고라고 번역된 말은 원문에서 앞에서 언급한 바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과 똑 같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음을 따라서 자기의 원하는 대로 아내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을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제 육체가 되었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신이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창세기 6:3). 오늘날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여자(혹은 남자)를 배우자로 삼는 것은 매우 당연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것이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더욱 심각합니다. 오늘날 사람의 눈에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요한1 2:15-17절은 이것을 매우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사도 요한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 좋은 것들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눈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탐스럽고 좋아 보이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종일 이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얘기하며, 이것들을 구하며, 또 이것들 때문에 울고 웃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눈에 좋은 것은 이제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참여하시고 관여하실 일이 전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따리를 싸시고 떠나가심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거짓말에 넘어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8절 말씀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의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뱀의 말처럼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 속에 수치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으며,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지은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같은 하나님이시며, 에덴 동산은 여전히 아름답고 풍요로운 천국이며, 아담과 하와 또한 이전처럼 벌거벗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으며, 또 결국은 낙원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주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된 것입니다.

 

는 우리를 하나님처럼 높아지게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는 우리를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의 참 뜻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