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가복음 4:1-20)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0. 4. 29. 21: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가복음 4:1-20

 

오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의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사용하신 여러 가지 비유들이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 잃어버린 양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등입니다. “비유란 어떤 가려진 추상적 또는 영적 개념을 예시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보다 익숙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무리들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따로 제자들에게 그것의 숨겨진 영적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들은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1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예수님의 비유들은 너희곧 예수님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시지만, “외인들에게 이 비유들은 그 비밀을 감추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비밀들이 숱하게 많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외인들은 그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성경 전체가 하나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한국어나 영어로 읽을 수 읽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늘 말씀은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주의 깊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11-1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간단히 말해서 성경 공부의 목적은 우리가 세상의 죄에서 돌이켜 (turning)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 (return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상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육적인 욕심과 또 세상의 거짓된 유혹이 서로 매우 완고하고 들러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죄에서 돌이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라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이 비유에서 말씀입니다. 14절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비슷합니다. 씨는 그 안에 생명의 힘과 지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작은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는 자라서 완전한 성체가 될 모든 잠재력을 이미 다 갖고 있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읽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지식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영적 세계가 땅에 사는 우리 사람들이 읽고 들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모양으로 우리 가운데 뿌려진 것입니다. 또 다른 비슷한 점은 씨는 오직 땅에 심겨져야만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땅에 심겨지지 않은 씨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작은 한 알의 씨앗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땅에 묻히면 그 씨 안에 숨겨진 생명이 깨어나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은 오직 우리 마음에 심겨졌을 때만 자라납니다. 히브리서 4: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하지 아니함이라.” 이것은 또한, 씨를 뿌리지 않고서는, 추수 때에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이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에 불과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지 않고서는 그 인생의 끝에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씨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들과 생명의 씨앗들은 오직 하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사람이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23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따르면, 네 가지 종류의 밭이 있습니다. 길 가와 같은 밭, 흙이 얇은 돌밭, 잡초가 우거진 밭, 그리고 좋은 밭입니다. 이 네 가지 밭들은 각각 씨가 성장하는 네 단계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곧 씨가 심겨지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고, 마지막에 열매를 맺는 과정입니다. 각 단계에서 씨는 매우 어려운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애물들이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우리의 죄들을 가리킵니다.

 

길 가와 같은 밭은 믿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사람들의 경험, 지식, 지혜, 도덕 등으로 단단하게 닦여져 있는 사람의 길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잘 닦여진 인간의 길들 때문에,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길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 55:8-9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지만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우리의 길과 생각을 하나님의 것보다 더 높이 올려놓습니다. 다행히도 자신의 길과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소수의 겸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처녀 마리아는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누가복음 1:38). 또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누가복음 5:5). 이들의 겸손한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까스로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돌 밭에 떨어진 씨앗은 금방 싹을 내지만 곧 말라버립니다. 이는 흙이 얕아서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7).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필연적으로 환난이나 핍박이 뒤따르게 됩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의 생애는 그와 같은 환난과 핍박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셨으며, 자신의 생명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의 격렬한 변화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중심이 바뀜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 깊은 곳에 깨뜨릴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단단한 바위가 존재합니다. 이 바위 속에는 를 우상으로 모시고 있는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바위를 깨뜨리고 그 성전을 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모든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시며 살아계신 참 하나님으로 경배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잡초가 우거진 밭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와 엉겅퀴가 함께 자라서 씨의 기운을 막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말씀이며, 우리의 일심 (나뉘지 않은 마음)”을 요구합니다. 시편 86: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나뉘게 하는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 들끓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짓눌리게 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가 Hugh Latimer 목사((1487-1555)마귀야말로 누구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설교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태초에 뱀이 여자의 마음에 거짓말을 심은 것처럼, 마귀는 우리 속에 온갖 종류의 두려움, 근심, 욕심을 뿌리느라 밤낮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 60, 심지어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좋은 밭에 비견되는 마음이란 바로 겸손한 믿음, 온전한 헌신, 그리고 인내하는 기다림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덕성들은 우리 측에서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일 뿐이며, 우리 안에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주 말씀을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하려고 하며, 이를 통해서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삶에 유익한 어떤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하지만 대개 이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 씨를 심는 것은 오늘 저녁 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먼 장래의 추수 때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씨를 심는다고 하더라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모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농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인내와 헌신과 그리고 추수를 기다리는 기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과 함께, 우리의 완악해진 불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 속에 자기 사랑의 숨은 돌들을 제거하며, 욕심과 염려의 잡초들을 뽑아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자라 열매 맺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