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 영적 싸움에 관하여 -
마가복음 1:21-34
지난 주 설교에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일의 의미와 또 예수님의 가르침의 권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같은 말씀을 기초로 해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일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영적 싸움(spiritual warfare)”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싸움에는 싸워야 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그 원수는 사단 마귀와 더러운 귀신들입니다. 전에 공부했던 마가복음 1:12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 계시면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보시고, 대적하시며, 쫓아내셨습니다. 사단 마귀와 더러운 귀신은 실재하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로잡고 죄와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원수”입니다. 이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74). 예수님의 사역은 우리 영혼들을 사이에 두고 예수님과 사단 마귀 사이에 벌어진 “영적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15).
예수님의 생애가 영적 싸움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신자들의 삶도 영적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으니, 우리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이 그냥 앉아서 평안하게 그 승리를 누리면 되는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성경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12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울 자신도 그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7). 이와 같이 신자의 삶은 그 전체를 묶어 “선한 싸움”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자의 직업은 “군인”이며, 우리가 하는 일은 “싸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며, 우리도 예수님처럼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순전히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싸움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수 사단 마귀를 무장해제(disarm)시켜 그를 무력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 싸움은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싸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하고 위험한” 싸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영적 싸움”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또 이 싸움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싸우는 “영적 싸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다른 설명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신자 개개인이 자신의 죄와 싸워 이겨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악한 영들을 분별하고 쫓아내는 일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전도나 선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노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영적 싸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사회악(social evil)을 척결하고 사회 정의(social justice)를 실현하는 것이 신자들이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설명들은 모두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의 어떤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들과 더불어 우리는 영적 싸움의 보다 근본적인 요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요소들이란 ‘우리의 적(원수)은 누구인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또는 무기는 무엇인가?’ ‘이 싸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싸움은 매우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적이 아닌 아군 끼리 싸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들과 무기들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지 못함으로 인해 효과적인 싸움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싸움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 또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이 모든 노력이 결국 헛수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볼 때,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의 본질을 매우 정확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원수는 “사단 마귀”입니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사단 마귀에 대해 승리하셨지만, 그 세력을 “완전히” 멸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마귀를 무장해제(disarm)하시고, 그 정체를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명하신 것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신 것입니다.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쫓겨나간 것은 맞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누가복음 11:24-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쫓겨나간 귀신이 돌아다니다가 갈 곳이 없어 자신이 원래 있던 사람에게로 돌아와보니 고맙게도 그 속이 비어있고 더하여 깨끗하게 청소까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귀신은 다른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그 집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돌아온 귀신들을 저항하지 (resist) 못하고 함락당했습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처한 영적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Resist)” (베드로전서 5:8-9a). 요즘 우리는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전염병을 완전히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요즘은 “위드-코로나(With Corona)”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곧 코로나를 근절할 수는 없지만 백신 접종과 위생적인 일상생활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이 전염병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 마귀와 그가 부리는 더러운 영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까지 계속해서 삼킬 자를 찾아다니며 병균처럼 공중을 돌아다닙니다. 이 원수 마귀에 대해서 우리가 할 일은 항상 근신하고 깨어서 이를 대적하는 것(Resist)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멸하시는 대신, 우리에게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3:14-15절 말씀입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께서 열 두 명의 사도들을 세우셨는데, 그들을 부르신 목적들이 여기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둘째, 보내셔서 전도를 하게 하시며, 셋째,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가 맨 마지막에 언급된 것을 보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여러 마을들로 보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도록 하십니다. 이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은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예수님께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했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누가복음 10:17). 평생 사단 마귀에게 까불림만 당하던 제자들이 그들 앞에 항복하고 쫓겨나가는 귀신들을 보면서 얼마나 놀라고 기뻐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들의 보고에 이렇게 화답하십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누가복음 10:18-19). 정말 너무나 든든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참으로 기뻐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0: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으로 기뻐해야 할 것”이야말로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의 가장 궁극적인 의미이며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고 보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크고 중요한 약속이며 축복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며 (resist) 영적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으며, 이들은 이 권세를 의지하여 실제로 귀신들을 항복시키는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귀신을 내쫓는데 실패한 경우도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한 아버지가 자신의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그 귀신을 내어쫓아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제자들이 이를 해내지 못합니다. 결국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으십니다.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가복음 9:28-29). 마태복음에 같은 기사를 다룬 부분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20).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고 또 믿음도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조금 의아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데 왜 귀신을 내어쫓기 위해서 더하여 기도와 믿음이 필요한 것일까요? 제자들 입장에서는 뭔가 약간 사기를 당한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영적 군사로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영적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이들은 이 질문을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종용히 (privately)”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은밀한 비밀”을 캐내듯이 예수님께 여쭌 것 같습니다. 제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들은 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매우 간절하게 원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이 아버지의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그런데 매우 아쉽고 창피하게도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실패가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매우 결연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고 또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을 쉽게 하면 “네 아버지한테 가서 달라고 해!”라는 말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가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돈이 급히 필요한데 아빠한테 가서 말하면 혼이 날 것 같으니, 엄마한테 가서 몰래 얘기를 합니다. “엄마 나 OOO원만 주면 안 돼?” 그러면 엄마는 자녀에게 말합니다: “아빠한테 가서 달라고 해!” 자녀는 아마도 아빠 몰래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혹시 아빠와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모든 돈을 갖고 있다면,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아빠한테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겸손하게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아니면 그냥 고아처럼 가난하게 살거나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과 기도는 물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에서, 영적 군사로서 우리에게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영적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이 치명적인 약점의 반대가 되는 것이 바로 “믿음과 기도”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겸손”입니다. 이것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을 이용하여 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영적인 교만이라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바로 영적인 겸손입니다. 이 겸손에 관하여 여러 성경 저자들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6b-8a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Resist)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이 말씀에 우리가 영적 싸움을 이길 비밀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순복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겸손한 순종”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며,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나름대로의 매우 정당한 사정과 이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매우 단호하게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2:3-4).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영적 군사로 살며 영적 싸움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걸림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활”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만큼이나 “중요한 자기 생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기 생활”이 중요한 만큼 이것은 사단에게 이용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사단은 (혹은 하나님은) 이것을 가지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또 구약의 욥기에 나오는 욥은 먼저 갖고 있는 재산을 다 잃고, 그 다음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열 명이나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건강하던 그의 몸이 깊이 병들어 심지어 친구들조차 그를 알아볼 수 없이 비참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지독한 시험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욥은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하였으며, 순종하였으며, 겸손히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자기 생활” 속에 포함시키며, 내 것으로 차지하고자 합니다. 이것들을 나의 유익을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며, 자랑하고자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사단은 다가와서 “네가 하나님의 자녀이라면 ……” “네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 하면서 우리를 부추깁니다. 우리의 마음은 높아지고 결국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행하는 것이 곧 “사단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며 그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네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이렇게 시험할 때,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 3:18) 하며 마귀에게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6-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권세를 가진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히 거하는 자”입니다. 믿음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은혜롭고 소망스러운 약속을 줍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주께서 돌보시리라!” 이 약속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낮아진 형편을 슬퍼하거나, 자기 생활 속의 염려들에 매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겸손히, 그리고 담대하게,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을 싸우며 이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비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단 마귀를 대적하는 참으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