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포도원 농부의 비유 ( 마가복음 12:1-1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3. 20. 03:48

포도원 농부의 비유

 마가복음 12:1-12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전체를 걸쳐 일관되게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하나가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우리가 배울 있는 교훈입니다. 교훈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그와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며, 또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범죄했을 일어났던 일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어겼습니다. 결과 그들은 잃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에덴 동산을 잃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유전자 가졌음을 말하며,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세상의 이라는 직분을 가졌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결과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세상의 이라는 그들의 존귀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에덴의 축복을 잃고 일생 땅을 갈며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난하고 비천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같은 교훈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나타납니다. 탕자 둘째 아들은 존귀하고, 부유하며, 사랑이 많은 아버지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야심 생겼습니다. 야심이란 아버지를 떠나 나라로 가서 그곳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많은 재산을 챙겨 아버지를 떠났을 , 그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자신은 돼지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그와 동시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며, 또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함께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얻게 되면, 그와 동시에 자신을 회복하게 되며, 또한 내가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함께 회복하게 됩니다.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 아버지는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행복에 겨워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또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지식 관한 것입니다. 지식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것에 대해서 아는 이라고 정의할 있습니다. 젊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관심이 있었으며, 그래서 이런 저런 소스들을 통해서 관련된 지식을 얻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 대하여 옳은 지식 갖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그가 듣는 것들을 비판적으로깊이 생각해야 것임을 말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정확하게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학도였던 그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과학적 지식 탐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무엇인가를 안다 점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과학적 지식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과학적 지식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기 위해서 갖고 있는 여러 다른 지식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포도원 농부들은 가지 지식을 가질 있습니다. 하나는 포도 농사에 관한 지식입니다. 포도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들은 많은 소출을 얻을 방법에 대해서, 생산한 포도를 저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수확한 포도로 좋은 포도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지식을 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알고 지켜야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셨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포도원의 주인이 되시며, 그것을 그들에게 세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렸을 , 그들의 마음 속에 욕심과 거짓된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포도원을 차지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들은 포도 농사를 짓는 데는 지혜로웠지만, 포도원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우리를 회개 하고 겸손 하며,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결국 하나님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나의 생명과 행복에 관한 지식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한 지식이라고 있습니다.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올바른 지식 가져야 하며, 또한 진리를 생명처럼 지키고 그것에 겸손히 순종해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짜는 구유 자리를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더하여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고, 망대도 짓고, 포도즙을 짜는 구유도 만들었습니다. 모든 갖춘 포도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포도원 이스라엘입니다. 이사야 5:7a 말씀입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리고 5:4a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하고 물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하실 있는 모든 좋은 일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으로 우리를 이미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 축복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공부를 마쳤을 , 졸업식을 즈음하여 교수님이 졸업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치 높은 기둥의 꼭대기에 올라 앉아있는 거북이와 같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거북이가 높은 기둥의 꼭대기에 올라 앉아있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가 그것을 그곳에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북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것의 높음 거북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딛고 서있는 기둥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이것이 결코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것이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훨씬 컸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도움 위에 있음을 잊지 말고 겸손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포도원을 세로 주고 떠나는 주인도 포도원의 농부들에게 같은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주인은 그들을 위해 최고의 포도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나라로 떠났습니다. 농부들의 입장에서는 보다 좋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갖춘 최상의 포도원을 맡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주인이 부재중인 100% 자율 경영이어서, 모든 일을 주인처럼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소출 얼마 주인에게 의무 외에 아무런 짐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거의 포도원을 그들에게 선물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들은 이런 포도원을 맡게 것을 기뻐하며, 이를 세로 주고 주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주인이 소출 얼마를 받기 위해 그의 종을 보냈을 , 마치 주인 본인이 것처럼 종을 환영하고 환대하며, 그들이 포도원을 경영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이를 세로 주인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얘기하며, 종이 돌아가는 길에 포도원 소출과 더불어 감사의 선물도  함께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종을 환대하기는 커녕 그를 잡아 심히 때리고 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했을까요? 이는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교만(pride)” 뜻하는 헬라어 단어를 풀어 설명하면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보이게 하는 ,” “자신의 재능이나 장점을 과도하게 높게 여기고 과시하는 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앞에 언급한 높은 기둥 위에 올라앉은 거북이 자신을 기둥 보다 높다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를 높이고 있는 것은 거북이 자신이 아니라 그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심지어 그가 기둥 위에 올라간 것도 혼자 힘으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북이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만드는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인이 그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주었습니다. 이들은 마치 어느 갑자기 높은 기둥 꼭대기에 올려진 거북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자신의 힘으로 기둥 꼭대기에 올라갔으며 자신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신들이 홀로 포도원을 일구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포도원의 주인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주인은 그들의 포도원을 빼앗으려는 원수 되었습니다.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포도원 소출을 얻으려는 파렴치한 되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행위는 마치 그들이 딛고 있는 기둥을 마구 파괴하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출애굽기 19:4-6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노예들이었습니다. 애굽 나라와 애굽 바로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이들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채찍을 맞으며 벽돌 만드는 고역에 시달리는 참으로 하찮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애굽 사람들을 여러 재앙으로 낮추시고,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날개로 업어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 되게 하며, 그들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섬기고 다스리는 제사장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 아담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에게 세상을 맡기시며 그를 세상의 왕으로 세우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행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시고, 그곳에 머물도록 그들을 매일 매순간 떠받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과 언약들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지식입니다. 지식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생명입니다.

 

전도서 7: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도 보호하는 (shelter)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매우 훌륭한 피난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먹고 입는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고 안전하고 안락한 집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부자로서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으며, 윤택한 사회생활을 있습니다. 참으로 돈은 모든 면에서 뛰어난 보호하는 (shelter)” 됩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소유 극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그들의 피난처였으며, 그들의 능력이고, 자랑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지혜 어떻게 돈을 많이 벌고 어떻게 그들의 소유를 늘리는가에 관한 지식이었습니다. 지혜를 따라서 그들은 주인을 멸시하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지혜를 따라서, 그들은 자기 것이 아닌 포도원을 욕심 내고 심지어 그것을 차지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들에게 포도원의 주인을 공경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이 무엇을 했다고 우리가 여름 뼈빠지게 일해서 거둔 소출의 일부를 요구한다는 말인가?” 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신들의 “영리함” 뽐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껴서 많은 소유물을 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많은 소유물로도 행복과 생명을 지킬 없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지식이 더욱 아름답다 (뛰어나다)” 말합니다. 그럴까요? 이는 지식(지혜) 그것을 가진 자의 생명을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기자의 표현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는 지혜 마치 힘을 가진 인격적 존재(a powerful personal being) 것처럼 말합니다. “지혜가 그것을 얻은 자의 생명을 보호해준다 말합니다. 맞습니다. 지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혜를 얻은 자란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살아계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키고 따르는 자입니다. 그리할 ,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보호하시고 생명을 지켜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포도원의 주인은 최후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서 아들은 공경하리라합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주인의 기대와는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는 상속자이니 죽이자 그러면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져 버렸습니다. 이로써 이들은 돌아올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농부들은 말하기를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합니다. 이것이 세상 지식의 본질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리에 사람의 업적과 공로를 쌓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온갖 지식과 정보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지식 그렇게 매일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식 날로 희박해지며 이제 거의 찾아볼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조차 이제 사람들의 지식욕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세상 지식 일편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그렇게 해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며,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요 세상의 왕으로 높임을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참된 지식을 얻을 있습니다. 참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겸손하게 만드는 지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지혜입니다. 잠언서 9:10 말씀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우리가 지식을 가져서, 생명을 얻으며 하나님 안에서 존귀하고 부유한 자로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