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3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5. 29. 06:05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34

 

지난 주에 우리는 염려하지 말라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31-32). 예수님께서는 먹을 , 마실 , 입을 것들을 가리켜 이방인들이 구하는 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구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입니다. 제자들이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먼저 구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먼저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무엇일까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말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말입니다. “로마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는 로마법 있습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로마법을 따라야 합니다. 몸은 로마에 있는데 나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법을 따를 거야라고 고집을 피운다면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것입니다. 격언을 그대로 오늘 말씀에 적용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라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있습니다. 법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하였다 칭찬을 듣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니다. 그리고 법을 어긴다면 그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곤란한 일을 당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를 구할 있을까요? 잠언 3:6 말씀입니다. “너는 범사에 (여호와) 인정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서 기자는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인정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모든 일에 항상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이며 그의 나라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할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 잠언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길을 지도하시리라 말씀합니다. 잠언 3:6절의 앞뒤로 나오는 5절과 7절에는 경고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5).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6:7).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며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며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길을 비웃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스스로 옳은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행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가 걷는 길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이며, 어두움이며, 죽음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의 나라에서하나님의 나라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자주 천국(Heavenly Kingdo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요한계시록 21:4절은 천국을 가리켜 “(그곳에서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그대로 순전한 행복(Pure Happiness)”입니다. 그런데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 원하지만, 동시에 세상 나라의 행복 원합니다. 둘이 서로 비슷해 보일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행복은 영원한 행복 반면, 세상 나라의 행복은 세상과 함께 사라져버릴 일시적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을 얻는 방법 또는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세상 나라의 행복을 얻는 길은 세상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길은 거의 대부분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동시에 함께 걸어갈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얻기 위해, 세상의 지혜를 포기하고 대신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든지, 아니면 세상 나라의 행복을 얻기 위해,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둘이 함께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둘을 함께 누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구하는 것입니다. 몸은 천국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마음은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30세가 조금 넘은 나이에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민 주선 회사를 통해서 이민 수속을 진행했는데, 회사에서 이민 설명회라는 모임을 열었습니다. 먼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교민을 초대해서 사람으로부터 현지의 사정을 들어보는 모임이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고향 나라를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는 변화를 앞두고 참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중에 사람의 질문은 주로 자신이 한국에서 누리던 것들을 뉴질랜드에서도 그대로 누릴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식당은 많은지, 아이들을 한국에서처럼 교육할 있는지, 한국 물건은 쉽게 있는지 등등 그녀는 끊임없이 집요하게 아주 시시콜콜비슷한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녀의 질문을 받던 초청 강사는 그녀에게 아주머니는 이민을 가시지 않는게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의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녀에게 이민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의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또한 한국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살면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든지, 아니면 세상 나라에 살면서 세상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살면서 동시에 세상의 의를 구하는 것은 일단 불가능 것이며, 이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외식(Hypocrisy)”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삶이 그랬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 엄격하게 지키는 경건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십일조를 드리고, 구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천국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주 그들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부르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의 겉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25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3:2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들에게 신앙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껍데기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의 더러운 속내를 감추는 포장지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성직 맡아 높은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금과 예물로 자신들의 더러운 욕심을 채웠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들이 소경된 인도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13).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었지만 속으로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경고하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하나님께서 세상과 씨름하시는 씨름의 대상은 세상의 아닙니다. 물론 본질은 이지만, 죄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20 말씀입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것으로 것을 삼으며 것으로 것을 삼는 그들은 있을진저!” 세상 나라에는 세상 사람들이 선이라고 여기며 빛이라고 여기는 세상의 있습니다. 그런데 선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며, 빛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두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에서 선한 것이 그들의 눈에는 악하게 보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것이 그들의 눈에는 어두움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악을 악하다 하시고 어두움을 어둡다 하시고 것을 쓰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일삼는 세상의 외식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빛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친히 몸으로 증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사람들은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하는 삶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5:10).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핍박 서로 뗄려야 없는 관계에 있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핍박을 견뎌내고 끝까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말씀을 들으며, 오직 마음으로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이를 없을 뿐만 아니라 의가 무엇인지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하는 싸움입니다. 세상의 싫어하고, 이로 인해 겪는 고난을 견디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의로운 가지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23:5-6 말씀입니다. “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있는 유일한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한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 내세울 만한 털끝 만큼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거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있을까요? 오직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롭게 하심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의를 의지하여 그의 나라에서 살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를 통해 의로움을 입도록 우리에게 보내주신 의의 선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와 공평과 정의로, 하나님의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 되십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여호와 우리의 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얼굴 갖고 계십니다. 얼굴은 우리를 향하여 있습니다. 얼굴은 인자하신 목자 왕이시며, 우리를 공의와 평화와 진리로 다스리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높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진리와 공평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의 다른 얼굴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있습니다. 얼굴은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친히 몸의 살과 피로 우리의 죄를 덮어 우리를 보호하시는 우리의 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되시며,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되십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그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에 평안히 거하며, 의의 자녀들로 자랄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그렇게 중요할까요? 이는 우리가 의의 열매 맺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5:6 말씀을 기초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제목의 설교를 적이 있습니다. 설교에서 사과 비유하여 설명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농부의 과수원으로 비유할 있습니다. 과수원의 농부가 갖고 있는 가지 소망은 좋은 사과 열매 맺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농부는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과수원에 의로운 가지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가지에 접붙여지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 맺게 됩니다. 의의 열매는 우리가 받을 거룩한 몸이며, 영원한 생명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락이며, 예수님과 함께 누리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떠나서는 이러한 축복을 전혀 기대할 없습니다. 이는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빌립보서 1:9-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니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것이 우리를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이며, 예수님의 공로이며,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소망의 씨가 되며, 열매로 맺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입니다. 바로 우리가 모든 핍박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매일 하나님 나라를 살며, 매일 하나님의 의를 먹고 마시는 축복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가득한 의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