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다윗의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마가복음 12:35-3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6. 12. 04:21

다윗의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마가복음 12:35-37

 

기독교 신앙의 요체(essence)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알고 믿는 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지식과 믿음을 갖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하면 (마가복음 8:29)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 있습니다. 물론 고백을 통해 우리 안에 생명의 씨앗이 심겨지고 자라나는 역사가 시작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평생을 걸쳐 감당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믿으며 지식과 믿음 위에 인생을 새롭게 쌓아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저는 대학생일 예수님을 영접한 지금까지 수십 동안 예수님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매일 새롭습니다. 알면 알수록,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리스도 예수님은 없는 신비로 다시 앞에 계시며 끊임없이 저로 하여금 주님을 구하며 좇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 키워나가는 일은 끝이 없다고 것입니다. 그럴까요? 이는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모든 면에서 무한(infinite)하시기 때문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마치 방이 개나 되는지 없는 거대한 궁궐과 같습니다. 모든 방은 형언할 없이 아름답고 진기한 보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방들이 미로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방을 때마다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놀라운 보화들이 우리의 숨을 멎게 합니다. 보화들로 인해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귀한 것들을 배설물 여기게 됩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빌립보서 3:8-9a).

 

오늘 본문의 35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대해 예수님께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당시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던 같습니다. 그리스도란 구원자 가리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을 혹은 무력으로 굴복시키거나 혹은 화친함으로 왕국을 구원하고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 되어 그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렸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며 그들의 선한 목자였습니다. 하지만 다윗 치하의 전성기 지나고 왕국은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나라 되어 오랜 세월을 방황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속국이 되어 이방인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들을 구원하고 다스릴 그리스도 기다렸습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이 그들 가운데 임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가운데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면 으레이 사람들은 그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십니까?” (요한복음 1:19-20, 마태복음 11:3). 그만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소원은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는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자랑하는 명의 조상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의 흐른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하며, 이를 근거로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한편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이며 선생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모세의 제자라고 자부하며, 그들의 속에 모세의 율법 앞세웠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없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사도행전 2:23), 오직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법을 가진 백성이라고 뽐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완성자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라면,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이었습니다. 다윗 왕국이 누렸던 권세와 영광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모세의 제자인 유대인들에게 당연히 임할역사의 귀결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임하여, 능력과 권세로 영광스러웠던 다윗 왕국을 회복할 것을 소망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날에 자신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권세와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참으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그들이 소망하는 전부였으며, 그들이 가진 모든 어려움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소망을 이루어줄 구원자였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다윗왕과 같은아니면 최소한 다윗왕과 비슷한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피가 흐르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모세의 제자라는 특별한 정체성(identity)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들의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헛되고 거짓됨을 있습니다. 마태복음 3:7-9절에서 세례 요한은 그에게 나아오는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로마서 4: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나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유대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육체를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세상의 후사가 것이라는) 이미 보장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자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을 믿는 자들 믿음을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근거 없는 자부심에 눈이 유대인들을 책망하면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 합니다. 대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촉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육체로서의 아브라함은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껍데기입니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껍데기 안에 여호와 하나님 그의 영원한 방패와 상급으로 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만 따랐습니다. 이는 알맹이 버리고, “껍데기 취하였다는 말입니다. 점에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는 커녕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점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모세의 제자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뜨게 소경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이가 예수라 하는 사람이라고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9:11). 이에 유대인들이 그에게 욕을 하며 말합니다.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니라.”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너희의 바라는 모세니라” (요한복음 5:45).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모세가 증거하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런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13 또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렇습니다. 율법은 모세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는 단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사용된 도구 불과합니다. 모세가 위대한 사람이 것은 그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를 가리켜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 하며 (민수기 1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집에 충성됨이라하십니다 (민수기 12:7). 그는 하나님 앞에서 마치 투명인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전혀 왜곡되지 않은 그대로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제자였습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높이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온유함과 충성됨을 따르지 않고, 오직 그의 높은 자리 탐냈습니다 (마태복음 23:2). 이는 알맹이 버리고, “껍데기 취하였다는 말입니다. 점에서 그들은 모세의 제자이기는 커녕 모세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을까요? 사실 이들의 가르침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에서는 자주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쳐 부르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9:27, 12:23, 15:22 ). 마태복음 1:1절에서도 예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22:16절에는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으십니다. 그랬을까요? 또한 위에서 아브라함 모세와 관련하여 언급한 바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에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완성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완성자는 하나님이시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윗 왕국이 세워지고, 보전된 것입니다. 다윗이 참으로 훌륭한 것은 그가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마치 거울 같았습니다. 그의 생애를 통해서 때로는 영광의 하나님이, 때로는 능력의 하나님이, 때로는 긍휼의 하나님이, 때로는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셨습니다. “죄인으로 치면 다윗은 세상 누구보다도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와 그의 아내를 상대로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가장 지혜롭고 성숙해야 인생의 마지막에 분별력을 잃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인구 조사 함으로 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실패하지 않은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자 되시며 하나님 외에는 그리스도 없음을 알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찬송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사무엘하 22:3). 그렇습니다. 다윗은이스라엘의 구원자 아니며, “능력과 권세와 영광 가진 자도 아닙니다. 그는 다만 구원의 하나님 필사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축복하사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이시고, 장차 그의 후손 가운데 그리스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다윗의 믿음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구원하심을 잊어버리고, 인간 다윗 신격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우상 만들었습니다. 우상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고 그리스도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다윗은 그냥 죄인 뿐입니다. 그는 왕도 아니고 구원자도 아닙니다. 그냥 껍데기 뿐입니다. 서기관들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 가운데 구원자를 찾는 헛되고 거짓된 소망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 110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아래 때까지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시편 110편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지은 시들 하나로 원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시에는 명의 (Lord)” 나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다른 하나는 다윗이 (my Lord)”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다윗이 라고 부르는 분이 바로 장차 그리스도로 땅에 오실 분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분입니다. 주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음을 여러 군데에서 증거합니다. 마가복음 16:19절은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증거합니다. 로마서 8:3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하나님처럼 떠받드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 비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 되시는지를 증거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58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먼저계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세와도 비교되십니다. 히브리서 3:3 말씀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지은 자가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사도행전 13:36-37절에서는 다윗과 비교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든 위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심지어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합니다 (베드로전서 3:22). 그럴까요? 이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 빼면 우리와 다름없는 육체이며,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그릇이며, 영광을 비추는 거울일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히브리서 1:3절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19절은 아버지(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신다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마디도 말해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가진 자는 이상 바랄 것이 없도록 부유한 자입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차 내려주실축복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알고 많이 믿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복은 결코 다함이 없는 복이며,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복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모든 세상의 보화들을 배설물 여기며 오직 우리의 보배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얻고 안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