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마가복음 12:38-4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7. 3. 03:16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마가복음 12:38-44

 

포브스(Forbes)라는 잡지는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발표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부유함이란 이들이 소유한 재산을 돈으로 환산한 금액의 크기를 말합니다. “이야말로 세상에서 부유함과 가난함을 판단하는 척도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다분히 성공의 척도이며, 행복의 척도이며, 심지어 선량함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 난다혹은 곡간에서 인심 난다 말이 있습니다. 쌀독에 쌀이 그득해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마음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앉아 군림하면서 우리를 다스리는 왕은 이며, “돈에 대한 욕심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우리 자신을 판단하며, 심지어 우리의 믿음 생활까지도 판단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different view)”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천국(天國) 눈이며,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누구인지를 판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같은 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서로 대비가 되는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서기관들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가난한 과부입니다. 서기관들(teachers of the law)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율법 학자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제가 매우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구약의 에스라서에 나오는 에스라(Ezra)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에스라서 7:6a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 7:10 말씀입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학사 (teacher) 에스라에 관한 말씀들은 서기관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기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해박한 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에 해박할 아니라 이를 연구하고, 몸소 실천하며, 이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힘쓰는 자입니다. 참으로 서기관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서로 연결되고, 하나가 되며, 하나님을 (King)이요 (Lord) 모시는 거룩하고 축복된 공동체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이란 크고 중한 일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헌신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서기관들은 에스라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들은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사람들로부터 인사 받기를 좋아하며, 회당의 모임에서나 마을 잔치 같은 데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길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속은 탐욕으로 가득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의 재산을 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서기관들에 대해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의 핵심 무엇일까요? 그것은 겸손하고 진실된 사랑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동시에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따르면, 자신들을 위해 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세가 여호와께 나아가 간구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출애굽기 32:31-32). 모세의 기도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모세는 제삼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제삼자인 모세가 가운데 끼어들어 슬퍼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걸고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신의 처럼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욕됨을 받는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동시에, 범죄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벌을 받을 것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리고 둘을 화해시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버려가며 사이의 갈등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미 인정하신 훌륭한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냥 입을 닫고 가만히 체하며 넘어가면 그에게는 모든 일이 순탄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님 백성뿐이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백성들은 죄악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서기관으로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겪는 고난이란 상상할 수도 없이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11:11절에 모세는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그리고 15절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지는 짐은 죽음보다 더한 곤고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서기관으로서 행한 겸손하고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학사 에스라의 다짐과 모세의 헌신을 생각할 ,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들의 허물이 참으로 분명하게 보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충만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영광 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그리고자기 욕심 채우기 위해서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잠언서 30:15-16절에는 족함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들 중에는 음부 족하다 하지 않는 있습니다. 서기관들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그들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삼켜버리고 태워버리면서도 만족할 몰랐습니다. 그들은 높아지기를, 그리고 많이 갖기를 원했습니다. “과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한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런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는 것은 이들의 욕심이 얼마나 사납고 무차별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들은 거짓으로 길게 기도하며 자신들의 거룩함을 뽐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짓입니다. “겸손하고 진실한 사랑 정반대가 되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교만하고 거짓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대신 자신들을 높은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높은 자리에 군림하면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돌보실 없었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막혔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서기관들이 오직 충만함으로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정죄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서기관들을 주의하라하시고 그들이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하십니다. 서기관들이 닥치는 대로 삼키고 태우는 음부와 같고 불과 같지만, 실상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같은 진노의 심판 아래 있으며 그들을 삼키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에는 줌의 재도 남길 없는 참으로 가난하고 비천한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른 주인공은 가난한 과부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연보 헌금통을 바라보며 앉아계실 , 여러 부자들이 와서 많은 액수의 돈을 헌금통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와서 렙돈 고드란트가 되는 액수의 돈을 연보궤에 넣었습니다. 고드란트(Godrant)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던 화폐들 가장 작은 가치를 지닌 동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로 1000 혹은 미화로 1불이 된다고 합니다. 아주 미미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를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여자가 일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풍족한 중에 넣었거니와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예수님께서 과부를 칭찬했습니까? 이는 그녀가 구차한 중에 자기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 넣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다만 그녀가 헌금통에 넣은 돈의 액수만을 보고 그녀를 판단했을 것입니다. 여러 부자들이 많이 넣은 것에 비교할 , 그녀의 헌금액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합니다. 아마도 연보궤를 지키던 관리인은 부자들이 금액을 넣을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겠지만, 과부의 순서에서는 안쓰러움과 귀찮음과 비웃음이 교차하는 복잡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한채 여자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모든 아셨습니다. 그녀가 렙돈을 넣은 것도, 그녀가 가난한 과부인 것도, 그리고 그녀가 넣은 것이 그녀의 생활비의 전부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녀에 대해서 깊은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입니다.

 

헌금을 하는 것은 크게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가난한 과부에게서 아주 작은 액수의 헌금도 기대할 없습니다. 이는 그녀의 형편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녀의 마음은 자신을 가난한 과부로 만드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런 자신의 어려운 형편을 알아주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 렙돈 그녀의 모든 소유 그녀가 갖고 있는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렙돈 탐했다면, 그녀는 몹시 두려워하거나 분노하면서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다해서 싸웠을 것입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그녀의 마음은 검고 딱딱하게 말라버려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는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이제 향기로운 꽃처럼 밝고 화사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이웃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쳤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보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무엇인가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보통이라면 돈을 헌금통에 넣는 것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담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렸습니다. 그녀의 마음 속은 천국(天國)”이었습니다.

 

구약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볼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선지자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열왕기상 17:9).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야가 사르밧에 가서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너무나 궁핍해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나눠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조각을 청하는 엘리야에게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후에는 죽으리라.” 불쌍한 과부는 마지막 남은 양식을 아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죽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런 여자의 형편을 듣고서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후에 너와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을 들은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부는 죽음을 앞둔 극한의 가난 중에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따라 마지막 남은 그녀가 가진 전부 엘리야에게 가져왔습니다. 이로 인해 오랜 가뭄 중에도 오히려 그녀와 아들과 엘리야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비록 과부가 몹시 가난했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 엘리야가 거할 만한 자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자리에 임하셔서 그녀를 다함이 없는 은혜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6-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마음에 정한대로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적게 심는다 많이 심는다 말은 액수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심는 주는 (giver) 마음 상태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것을 각각 “sow sparingly” “sow generously”라고 번역하는데, 인색하게 심는다 넉넉하게 심는다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마음 강조합니다.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 하며, 하나님께서 즐겨 내는 (cheerful giver)”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심은 쌀독에서 나지 않습니다. 인심은 착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8절에는 이런 사람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8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짧은 말씀에 모든이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모든 은혜,” “모든 ,” “항상 (모든 시간),” “모든 ,” “모든 착한 등입니다. 그리고 넘친다,” “넉넉하다 말도 자주 나옵니다. 말들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참으로 부유한 사람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의 시작은 우리가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주는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 하나님께서 마음을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우리를 넉넉하고 넘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전부 기꺼이 드린 가난한 과부와 엘리야를 섬긴 사르밧 과부가 받은 은혜입니다. “즐겁게 주는 자의 마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제물을 흠향하시고 하늘의 복으로 응답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9절은 말씀합니다.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주는 하나님 앞에서 쌓는 부유함은 세상의 썩어질 부유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같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21).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여시고, 참된 부유함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