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이사야 14:1-2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7. 24. 20:34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이사야 14:1-27

 

이사야 13,14장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바벨론(Babylon) 유프라테스 하류 지역에 건설된 고대 도시로서 BC 18세기의 구바빌로니아 제국(Old Babylonian Empire) BC 7-6세기의 신바빌로니아 제국(New Babylonian Empire) 중심 도시였습니다. 이사야서의 시대적 배경이 BC 7-6세기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벨론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라고 이해할 있습니다. 바벨론은 특히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2 왕인 느부갓네살 II세의 대규모 건축 사업을 통해서 거대 도시로 성장했는데, 세계 7 불가사의 하나로 우리에게 알려진 바벨론 공중 정원(Hanging Gardens of Babylon) 이라크에서 발굴되어 독일에서 복원된 바빌론의 (Ishtar Gate) 그의 지시에 의해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성경에서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또한 보다 포괄적인 영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마디로 말해서 (evil)” 상징합니다. 그리고 악은 하나님께 대한 교만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억압입니다. 사실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로부터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걸쳐 나옵니다. 창세기 11장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들이 시날 평야에 모여 벽돌과 역청을 사용하여 하늘까지 닿는 높은 성과 대를 쌓는 일을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것은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의 일을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쌓는 일을 멈추게 하시고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혼잡(confusion, mixing)”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바벨 바로 바벨론입니다.

 

바벨 신의 (Gate of God)”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뜻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건설한 바벨론 도시에는 신들을 위한 수십 개의 신전들이 있었으며 그것들 특히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둑(Marduk) 위한 신전은 고대의 바벨탑을 복원하는 의미로 건설되었으며, 신전의 변의 길이가 660피트(200m) 달했다고 합니다. 이것들을 생각하면 느부갓네살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도시를 건설했을 것인지 짐작이 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5:1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바벨론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Rome)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골로새서의 4:10절에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고 것을 , 당시 베드로와 마가가 함께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당시 로마는 그대로 신전의 도시였으며, 특히 판테온(Pantheon) 세상의 온갖 신들을 모아놓은 신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 또한 바벨론 신의 (Gate of God)”이라고 불려질만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벨론을 가리켜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며 (요한계시록 17:5),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합니다 (요한계시록 18:2). 이런 바벨론의 역사를 생각하면, “바벨론 교만한 욕심이 가득한 세상과 영적 세계의 더럽고 가증한 영들이 만나는 곳이라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모든 유혹들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창세기 3:5). 이것이 마귀가 사람을 죄에 빠뜨린 유혹이며,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게 동기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며,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지며, 하나님처럼 강하게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3-14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바벨론의 교만한 마음을 이렇게 드러내십니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하도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나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탑을 쌓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높은 탑을 쌓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탑을 쌓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일생을 거쳐 쌓은 탑을 우리는 업적(achievements)”이라고 부릅니다. “업적(業績)”이라는 한자 말은 일을 이루다또는 이루어낸 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일생을 통해서 이루어낸 배움, , 인간 관계, 수입과 재산 등이 모두 우리가 쌓는 업적의 일부가 됩니다. 업적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chievement”인데, 단어는 “ad (~ 향하여 나아가다)” “chief (머리, 우두머리, 최고)”라는 말이 합해져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achievement 내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노력의 결과들이며, 결과적으로 나를 높은 곳으로 올려주는 성과들이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일생을 통해 높은 업적을 남기기를 원하며, 그것이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업적에 비해 초라할 슬퍼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높은 업적을 쌓고 싶어할까요? 그것은 그렇게 높이 쌓인 업적 위에 자기 자신을 올려놓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자신을 보고, 이를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바벨론의 시민이며, 마둑 신의 숭배자

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하는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날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설계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건축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Basilica of the Sagrada Família)” 있습니다. 대성당에는 18개의 탑들이 있는데 그것들 가장 높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Tower of Jesus Christ)”으로 이것이 완성되면 높이가 566 피트(172.5m) 이르러, 바르셀로나 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것이라고 합니다. 기사에 탑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the tallest, which is in the center, will be 172.5 metres high, symbolizing Jesus Christ!” (가운데 있는 가장 높은 탑은 172.5m 높이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가장 높은 탑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높이로만 따지면, 오히려 바벨탑이나 바벨론 마둑의 신전과 비슷하다고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거나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맞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맞추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더욱 가까워지시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고운 밀가루보다 곱게 빻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상대로 우리를 빚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은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신다 합니다. 3절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주시고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예레미야 43:10절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을 가리켜 바벨론 느부갓네살이라고 부르십니다. 신적 권세를 가진 세계 최강대국의 왕이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막대기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쓰시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은 자신을 위해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앞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다니엘 3). 또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억압하고, 학대하며, 강포하게 행하였습니다. 스가랴 1:14-15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살짝 아프게 훈육하려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백성들을 온유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왕은 힘을 다해 인정사정 없이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질투하셨지만, 바벨론에 대해서는 진노하셨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긍휼을 베푸셨지만, 바벨론은 음부 구덩이의 밑에 빠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15).

 

오늘 본문 말씀 24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26-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손이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손을 펴셨은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말씀은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업적을 이룰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룰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폐하거나, 훼방하거나, 돌이킬 없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룰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계획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마디로 요약하면 겸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겸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겸손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입니다. 마가복음 14:36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고통과 외로움과 죽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루었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19:30).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업적(achievement)”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겸손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인생을 통해 어떤 업적 쌓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업적 쌓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빛날 뿐입니다. 누가복음 17:7-1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무익한 종의 비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앉아서 먹으라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일을 뿐이라 할지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게다가 주인이 먹는 동안 옆에 띠를 띠고 서서 수종을 들어야 합니다. 후에야 겨우 먹고 마실 있습니다. 일을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일을 했을 뿐입니다이렇게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자랑할 것도,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있으며, “주인의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쌓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있을 곳은 항상 무익한 자리입니다. 나를 높여줄 아무런 업적 없으며 갖지도 않는 것입니다. 사실은 이곳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자리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과 비기며 가장 높은 구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높이 올라간 만큼 깊이 낮아지게 됩니다. 음부 구덩이의 밑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의 무덤에서조차 쫓겨납니다 (19). 이름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며, 그의 땅이 망하며,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의 영광이 그의 수치가 됩니다.

 

오늘날 인간이 쌓은 문명의 탑은 가히 바벨론을 능가합니다. 말하자면,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도 높은 탑을 쌓았다고 있습니다. 그리고 탑은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2:2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때에 너희가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시대 정신은 불순종의 정신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며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으로 높아지며 하늘과 가까워질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늘로 통하는 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낮추셨을 , 성전의 휘장이 둘로 쪼개지고, 무덤문이 열렸습니다 (마태복음 27:51-52). 하늘이 갈라지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믿는 자들 위에 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이야말로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의 (Gate of God)”입니다. 기도하옵기는,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돌덩어리 같은 교만의 탑에서 이제 내려와 우리 자신을 가장 고운 가루처럼 하나님께 쏟아부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 안으로 사라져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홀로 찬양받으시길 기도합니다: “대저 주는 광대하사 기사를 행하시오니 오직 주만 하나님이시니이다! 아멘!!!” (시편 8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