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3:1-1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7. 17. 05:14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3:1-13

 

사관(史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관점을 말합니다. 역사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겠지만, 이것들은 대부분 인류의 역사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진보적 사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 의학 등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 사회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보다 성숙한 수준으로 향상되어가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도 우리에게 어떤 사관 제시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제시하는 사관은 이중적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인간 나라(Human World)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둘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 견고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분리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로 기독교 신앙이 로마 제국에 전파된 결국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5세기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앙이 로마 제국과 함께 쇠락할 것으로 생각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에 어거스틴은 그의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에서 우리에게 세상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성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의 도성(City of Man)”입니다.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의 사랑 기초한 나라이며, 사람의 도성은 인간들의 자기 사랑 기초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도성은 결국 멸망하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계속 새로워지며 (renewed)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궁극적인 공의와 평화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공부할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성경적 역사관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사관은 말세지말(末世之末)”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비추는 등대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나가실 제자들 하나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돌들이 어떠하며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차례에 걸쳐 세워졌는데, 처음 솔로몬 왕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기원전 957) .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제국의 침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기원전 586),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총독의 지도 하에 두번째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516). 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작은 규모로 매우 초라하게 지어졌는데, 이전 솔로몬 성전에 대한 기억이 있던 노인들은 성전의 기초가 놓이는 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에스라 3:12-13). 하지만 성전이 완성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를 통해 백성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殿) 이전 영광을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학개 2:3).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영광으로 전에 충만케 하리라,” “ (殿)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7b, 9).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초라해 보이는 스룹바벨 성전을 축복하셨습니다. 세번째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헤롯(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베들레헴 지경의 사내 아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기원전 20년에 착공하여 80여년의 공사를 거쳐 서기 63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의 내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에돔 사람으로 이방인이었던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이 가히 압도적이어서 보는 사람들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매우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건물들을 보느냐 하나도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 장대하고 화려한 헤롯 성전에 대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을 축복하시고 백성들을 위로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헤롯 성전은 완공된 불과 수년 후에 (서기 70)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헤롯 성전은 껍데기 남은 유대인들의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대학원 근처에 “Wingaersheek Beach”라는 해변이 있는데, 해변에 가면 손바닥만한 조개를 잡을 있습니다. 이따금 아내와 함께 이곳에 조개를 잡으러 갔었는데 번은 썰물때를 놓쳐서 조개를 잡을 없게 되었습니다. 허젓한 마음에 모래 바닥을 발로 쑤시고 다니는데 커다란 조개 하나가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꺼내보니 이제까지 적이 없는 크고 묵직한 조개였습니다. 해변을 걷는 동안 내내 잡은 조개를 소중하게 들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됐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조개를 자세히 보니 죽은 조개였습니다. 껍데기를 열어보니 시커먼 모래가 안에 가득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깜짝 놀라서 조개를 버렸습니다.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조개가 결코 있을 없는 얕은 바닷가에서 그렇게 조개를 잡고도 이를 의심하지 않고 소중하게 들고 다닌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크고 화려한 헤롯 성전을 보실 , 크고 묵직한 죽은 조개 보고 계신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서 악취가 납니다. 성전은 하나님 아버지의 입니다 (누가복음 2:49; 요한복음 2:1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집에 거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도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지어집니다. 에베소서 2:20-22 말씀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히 파괴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모든 일이 이루려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세상의 끝과 연관지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단순히 유대인들의 껍데기 뿐인 신앙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인류 문명 상징한다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에 화려하고 장대한 인간 세상 어떤 환란들을 당할 것인지, 그리고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고난을 겪을 것인지, 나아가 이들이 고난 중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것인지, 그리고 이들이 가진 소망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인간 세상이 겪는 환란들은 참으로 두려운 것들입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로라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케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로라하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니라혹은내가 구원자이니라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13:22). 이렇게 속이는 자들과 함께, 많은 두려운 일들 민족들과 민족들이, 나라들과 나라들이 대적하여 싸우는 전쟁들이 일어나고 도처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말세의 인간 세상은 우리를 속이는 것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가득합니다. 마디로 세상은 깊은 어두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세상이 어두움의 사단 권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경건의 모양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모양일 뿐입니다. 그냥 껍데기일 뿐입니다.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안은 오직 자기 사랑 이로 인해 생기는 온갖 냄새나는 욕심들이 가득할 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오직 어두움 뿐인 세상을 살아갈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뿌리 깊은 자기 사랑 본성과 욕심들을 이겨내고 구원에 이를 있을까요? 오직 길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다 것입니다. 복음을 붙드는 것이 바로 속이는 자들로부터, 그리고 우리 자신의 세상 욕심으로부터 우리는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고린도후서 4:3-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중에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빛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입니다. 그리고 빛이 예수님을 통해서 땅에 임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빛이 세상에 임하고, 빛을 보고 아는 자들의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고 합니다. 세상이 컴컴하여 빛이 전혀 없다면, 컴컴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성품들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미혹하는 자들과 배후에 있는 사단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해서, 그리스도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여러 가지 세상의 거짓된 빛으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거짓된 빛에 쉽게 속는 자들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 사랑 깊이 목말라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통해 땅을 비추는 하나님의 영광의 오히려 두렵고 무서운 어두움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기적인 욕심들을 채워줄 같은 많은 선생들 그리스도들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국은 생명과 행복이 아닙니다. 이들의 결국은 세상과 함께 멸망하는 것입니다. 두렵고 어두운 말세에 우리가 의지할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우리는 매일 새롭게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비추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직 이것만이 우리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일들이 많은 말세를 사는데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것은 우리 자신이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말세에 많은 전쟁과 전생의 소문이 있으며, 나라들과 민족들이 일어나 서로 대적하며 싸웁니다. 그리고 각처에 지진과 기근이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수님으로 인해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하며,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세웁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많은 사람들 앞에, 그리고 높은 사람들 앞에 서게 것입니다. 말씀은 마태복음 5:14-17절에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는 것처럼, 세상은 오직 예수님께서 밝혀 놓으신 등불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만 빛을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제자들이 세상에 비추는 빛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들의 착한 행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사랑 자기 영광 좇는 이기적인 삶을 삽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의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합니다. 이는 마치 등불이 자신을 태워 빛을 내면서 주위 사람들의 눈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두려운 일이 많은 세상을 살면서 우리들은 위축됩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에 숨어 지내면서 나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을 비추는 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속에 세상의 되시는 예수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바로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증거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마치 죄인 것처럼 다룹니다. 이들을 잡아 가두고, 매질하며, 재판정에 세우고, 심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렇게 죄인으로 정죄할까요?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사랑 자기 영광 좇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만, 제자들은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을 사랑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죄인으로 발견되며 핍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제자들에게는 오히려 죄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증거할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랑의 빛이 어둠과 부딪혀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운 세상 이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요한1 4:18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온전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께로부터 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의 복음으로 두렵고 어두운 세상을 비추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것이니라하십니다. 말씀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이미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부르며 멸시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복음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들을 압제하는 이방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옛날 다윗 왕국의 영광과 위엄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모인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때니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6-8) 제자들의 질문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아직 회복해야 것들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로마의 압제 아래 있으며, 여전히 악한 지도자들에게 시달리며, 여전히 가난하며, 여전히 불학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그들에게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변했으며,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성령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권능으로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켜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4:7). 그는 자신을 질그릇으로 비유했습니다. 약하고, 천하고, 깨어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질그릇 같은 자신을 강한 철그릇이나 귀한 금그릇으로 만들어 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약하고 천한 그대로 나아가 그의 안에 임한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먼저만국에 전파되어야 하리라 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제쳐두고 먼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증인이 되리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성령 충만외에 다른 필요한 것들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님께서 계시면 이미 우리는 말세의 세상을 견디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땅에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입니다. 복음의 빛으로 우리는 혼란한 세상에서 길을 찾을 있으며, 복음의 빛으로 우리는 두려움 많은 세상을 사랑으로 이겨낼 있으며, 복음의 빛으로 우리는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원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말세를 살아갈 모든 필요한 것들이 완벽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겉만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처럼, 껍데기만 남은 죽은 조개처럼 그렇게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가득한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어둡고 두려운 말세의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빛나게 살아 주님의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