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마태복음 7:24-29)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6. 19. 05:48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마태복음 7:24-29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현실 세계 (real world) 시뮬레이션한 3차원의 환경으로, 사용자는 헬멧이나 고글 같은 특수 장치를 이용하여 가상의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마치 현실 세계에서와 비슷한 경험들을 있습니다. 가상현실은 본래 비행기 조종사나 의료 전문가 위험이 따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또는 복잡한 기계 장치나 생산 공정을 시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상현실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현실 세계와 보다 가까운 환경을 구현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상 현실의 기초(foundation) 현실 세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상현실은 현실 세계보다 현실적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가상현실의 목적은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 세계보다 현실적인 세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창조된 가상현실은 현실 세계를 능가합니다. 현실 세계보다 멋있고, 흥미롭고, 환상적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지하 세계를 탐험하거나 우주 공간을 비행할 수도 있으며, 아름다운 공주나 무적의 용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상 현실은 우리가 현실 세계를 사는데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현실 세계의 어려움을 피해 숨는 도피처가 되기도 합니다. 진짜와 가짜가 뒤바뀐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유일한 절대적 실제는 오직 하나님 분이십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증거하는 영광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은 그림자의 가장 밝게 빛나는 부분이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DNA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우리가 하나님을 닮도록 권고하십니다. 레위기 11:45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하시고,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누가복음 6:36)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와 삶의 기초(foundation) 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따르며, 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단 마귀는 사람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라 헛된 욕심을 심었습니다. 마귀의 유혹은 하나님을 닮으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제가 되며 자신이 스스로 존재와 삶의 기초가 되라는 것입니다. 또한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보훈(마태복음 5-7) 마무리하는 결론 부분입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관한 여러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니라.” 더하여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에 따르면, “나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산상보훈의 말씀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반석(rock)” 되며, 그래서 우리 인생의 집을 지을만한 기초(foundation)” 됩니다. 그리고 반석을 기초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기초(foundation)” 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10-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닦아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자가 없으니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foundation)” 되시며, 예수님 외에 다른 터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리고 하신 일들로 우리에게 천국의 복음을 증거하시고, 친히 우리 인생의 집을 세울 기초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마태복음 7:13-1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좁은 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좁은 걷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요? 이는 우리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기초위에 인생의 집을 짓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가상현실 실존하는 영원한 세상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허황된 꾸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보훈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잘못된 기초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초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계심을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초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인생의 기초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보훈 말씀에서 찾을 있는 우리가 바꾸어야 인생의 기초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의 본질은 제사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5:23-2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 형제 사랑 대신할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일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행하라고 하십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3-44).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하심으로, 우리가 가진 사랑할 없는 이유들 모두 빼앗아 버리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없으며,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항상 모든 사람에게 선대하며, 항상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 디디고 서야 가장 중요한 인생의 기초는 바로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 5: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유대인들에게 할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자신들을 이방인들로부터 구별해주고 높여주는 여러 중요한 종교적 표징들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할례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시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갖고 있는 믿음의 본질이 사랑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이 형제 사랑, 원수 사랑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요소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사랑으로 깊이 물들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사랑이 아닌 것들 미음, 시기, 질투, 자기 자랑, 교만, 이기심, 욕심과 같이 불의한 것들은 어떤 것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고 행하신 순수한 사랑을 우리도 배우고 행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 앞에서 행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6:1).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상이 없다고 하십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며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행하는 그것이 비록 선한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외식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일이며, 열매가 없는 헛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은밀하게 하라 하십니다. 그렇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실 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속에는 자기 영광 구하는 뿌리 깊은 본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그들의 칭찬을 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며,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이런 예수님을 답답하게 생각하며 설득했습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요한복음 7:4). 하지만 예수님의 인생의 목표는 세상에서 드러나는 성공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순간까지도 주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끝까지 묻혀서일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직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시며,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이렇게 오직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랄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 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주님 앞에 때까지 자기 영광 구할 것은 꿈에라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을 바라며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해야 합니다.

 

셋째, 사람의 교훈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십니다 (5:20).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가장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유대인들의 스승들이며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마도 이들의 가르침과 행실을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해도 되고 해서는 안되는지를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훨씬 높은 하나님의 표준 가르치십니다.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는 사람의 대신,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모독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형제를 보고 미련하다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십니다 (5:21-22). 간음하지 말라하는 사람의 대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하십니다 (5:27-28).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금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반박하기 위해서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9:5-9).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도, 심지어 모세의 그것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대신, 사람들의 교훈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는 욕심 회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악한 욕심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대신, 자신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줄 인간 스승들을 많이 두고 그들의 허탄한 가르침으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며 깊은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이루리라하시며, “누구든지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버리고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하십니다 (5:18-19). 그렇습니다. 가장 위대한 목사님의 가르침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고 행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명과 행복은 돈으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24).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줄을 아시느니라” (6:31-32). 혹자는 인간을 가리켜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모든 일에서 저비용, 고수익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요양 시설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동안 일을 해오다가 얼마 그만두었습니다. 그만두게 되었냐고 물으니 프로그램을 지원하던 기금이 떨어졌다 했습니다. 그는 노인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그의 선한 행실 뒤에  숨어서 그의 삶을 다스리는 진짜 주인은 하나님 아니라 재물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이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돈의 힘을 인정하고, 앞에 무릎을 꿇으며,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물을 하나님과 비견이 되는 주인으로 표현하신 것은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돈은 사람들에 영혼에 신적인 권력 행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일한 주인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오직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으시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고 참된 복락을 누릴 있습니다. “돈을 경히 여길 있는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고상한 하나님 나라의 자유인이 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롭고 거룩하고 강건한 존재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십니다 (6:33). 우리가 잘못된 기초 위에 있다면, 사랑이 아닌 종교 행사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거나,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 앞에서 행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대신 사람의 교훈을 따르거나, 하나님을 믿는 대신 돈을 믿을 , 우리는 말씀에 전혀 순종할 없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가장 완전한 모델이 되십니다. 사실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1:14a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말씀이 육신이 되며 우리 가운데 거하는 것은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야 일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가난할 ,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 심령을 다스릴 , 또한 우리의 몸과 모든 지체들을 지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5:29-30). 우리 인생의 집을 짓기 위해 오직 하나의 거룩한 기초가 있을 뿐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우리 삶의 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도우사 거룩한 위에 견고히 서게 하시고, 예수님과 말씀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짓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