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4. 9. 25. 12:08

간음하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14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 일곱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간음하지 말라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간음에 대한 협의적 정의는 레위기 20:10절과 신명기 22:22절에서 찾아볼 있습니다. 레위기 20:10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하십니다. 신명기 22:22절에서는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통간한 남자와 여자를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하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이란 남자가 이미 결혼하여 남편이 있는 여자와 통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간음의 의미를 더욱 확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7-28). 예수님께서는 정당한 이유가 없이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10:11-12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성경은 여러 부적절하고 음란한 성적 행위들을 통칭하여 행음이라고 칭하여 정죄합니다.   간음 행음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4:15, 역대하 21:11).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시대 사람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6:4).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말로 음란하다 단어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지니라하신 계명은 물론 우리가 협의적인 의미에서 마땅히 지키고 순종해야 하지만, 그것의 보다 깊고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대 사람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통칭하신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것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하시자 제자들이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하며 불평했습니다 (마태복음 19:9-10). 이혼을 금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그들의 말은 아내를 마음대로 바꿀 없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말을 하고 있는 이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불평은 이혼이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오늘날의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당시 남자들은 마치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다니며 옷으로 갈아입듯 그렇게 음란한 눈과 마음으로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으면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증서 써주어 내보내고 (마태복음 19:7)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던 같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간음하지 말지니라하시는 하나님의 일곱 계명을 범하고 있다

있습니다. 니콜슨(Jack Nicholson)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남자 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 노년이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혈기왕성한 젊은 배우로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상 드러내놓고 여자들에게 작업을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나이에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Because you know, down deep in my heart, when all is said and done, I still live under the illusion that basically people think of me as an up-and-coming young actor. I can't hit on women in public anymore. I didn't decide this; it just doesn't feel right at my age. Almost everybody's happy to be a fool for love.) 배우의 말을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사랑을 위해 바보 같아 보이는 짓도 기꺼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당신이 젊다는 증거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젊음이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타고 있는 에너지나 열정을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은 사랑이며, “이성에게 작업을 거는 패기입니다. 말을 듣고 사람들은 아마도 니콜슨이 이제 진짜로 노인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늙기 전에 사랑을 위해 많은 바보 짓을 해야겠다는 격려도 받을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간음하지 말라하신 계명이 곳은 세상에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예수님도 사랑을 위해 바보 같은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거리에서 여자들에게 작업을 거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랑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문자 그대로 바보 같은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불타는 열정으로 일을 행복하게감당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과 세상의 젊은이들과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여기 하늘을 나는 열기구(air balloon) 있습니다. 열기구는 천으로 만든 거대한 공기 주머니입니다. 주머니 안에 뜨거운 공기를 주입하면 주머니가 공기로 채워져 빵빵하게 되고 나아가 하늘로 오르게 됩니다. 저는 열기구의 모습이 마치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2:7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껍데기를 준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마치 천으로 열기구의 주머니를 만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 코에 불어넣으셨을 사람이 비로소 생령 살아있는 존재(living soul)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공기 주머니를 뜨거운 공기로 가득 채운 것과 같습니다. 주머니 안에 공기가 주입되면 주머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기가 가득 차면 제작자가 본래 마음 속으로 의도했던 모습의 아름다운 열기구가 하늘을 향해 힘있게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모습을 유지하고 하늘을 나르기 위해서 계속해서 뜨거운 공기를 안에 불어넣어야 합니다. 주머니 안에 있는 공기가 식거나 밖으로 새나가면 열기구는 볼품없이 찌그러지고 땅으로 추락하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설계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7).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은 오직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모습을 드러냅니다. 육체는 영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영으로 채워져 있지 않은 육체는 마치 바람이 빠진 열기구의 주머니처럼 형체도 없고 능력도 없고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오직 육체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그가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그런 거룩한 사랑을 하실 있었던 것은 안에 하나님의 영이 뜨거운 불로 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주의 전을 사모하는 불타는 열심하십니다 (요한복음 2:17). 열심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죄인들의 그리스도로 세상에 드러내며 높이 올린 뜨거운 공기입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안을 채우고 있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하나님의 신이 사람의 육체를 떠나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6:1-3a 말씀입니다. “사람이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육체 되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 육체가 사람들 속에 이상 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사람은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채우고 있는 뜨거운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자들에 대한 열정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입니다. 니콜슨이 말하는 젊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젊고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창세기 6:3절의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을 어떤 영어 성경들에서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다투지 (contend with 또는 strive with) 아니하리라 번역합니다. 사람의 속에 하나님의 영을 밀어내는 다른 기운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특정하여 말씀하기를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는다 합니다. 결국 사람의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밀어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여자 혹은 남자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 대해서 혹은 바보 같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대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고 지켜주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성에 대한 열정 내가 아직 살아있으며 젊다는 증거 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마치 열기구에 구멍을 내는 날카로운 송곳과 같습니다. 간음죄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다윗 왕입니다. 다윗은 모든 면에서 잡을 데가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충직한 신하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죽였음을 생각하면 간음죄야말로 다윗의 삶을 무너뜨린 가장 중대한 죄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1:2 말씀입니다. “저녁 때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의 눈으로 보기에 목욕하는 여인이 심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동안 다윗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의 복으로 채워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주인의 처들을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주었으리라” (사무엘하 12:7-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부족하다고 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다윗이 절대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몰래 자기 눈에 아름다운 , 자기 눈에 좋은 것을 탐하고 이를 취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낮에는 경건한 하나님의 복을, 밤에는 다른 구멍을 통해 육신의 쾌락의 복을 누리고자 했던 같습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의 복을 담아온 그의 삶의 주머니를 찌르고, 메우기 어려운 구멍을 내고 말았습니다. 구멍을 통해 하나님의 복들은 빠져나가버리고 많은 시련들이 그의 삶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채워졌던 그의 아름다운 삶에 여러 일그러진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다윗이 남편 있는 여자를 심히 아름답게 것입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말은 창세기 6:2절에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라는 표현과 정확히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뜻에 따라 행하는 대신 스스로 아름다움(선함)” 판단하고, 자신을 위해 그것을 취하였습니다. 이것이 간음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령입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4:13-14). 오직 하나님만 무엇이 복이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를 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주머니를 하나님의 복으로 채우십니다. 주머니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채우실 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만 채워지며, 오직 우리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만 채워집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에 아름다운 것을 주머니에 넣는다면 그것은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찢고 구멍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멍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복들이 새어나가버릴 것입니다. 열기구에 바람을 넣는 구멍이 오직 하나이듯, 우리 영혼도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열려 있어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다른 구멍을 만드는 것은 음란입니다. 구멍을 통해서 많은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우리는 추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간음하지 말지니라하십니다. 우리는 계명을 배우자에 대해서 지켜야 하지만, 그보다 더욱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우리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게 하시고 그것을 마음으로 구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예수님과 성령님 안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자들로 발견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낮이나 밤이나 항상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