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믿는 자의 온전함(integrity)에 관하여
야고보서 1:1-21
“Integrity”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정직함, 진실함, 일관됨 등으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가장 적절한 번역은 “온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integrity라는 단어의 정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한 도덕적 원칙을 지키며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때에도 일관되게 옳은 일을 하는 개인적 성품 (personality trait that means having strong moral principles and consistently doing the right thing, even when no one is watching,” “온전하며 나뉘지 않은 상태 (the state of being whole and undivided).” 이 정의들에 따르면 온전함(integrity)라는 말은 도덕성, 일관성, 정직함, 완전함 등 여러가지 의미를 그 안에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보다 실감할 수 있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전에 한 품질관리에 관한 기사에서 읽은 것입니다. 한 바이어가 물건을 사기 위해 그 물건을 만드는 회사를 찾았습니다. 그 생산 회사의 사장은 자신의 회사가 얼마나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는지를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만든 제품 하나 하나를 철저히 검사해서 불량품이 절대로 납품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자 이 바이어는 말했습니다. “검사를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들은 생산회사 사장은 의아해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검사를 하지 않으면 불량품을 어떻게 골라낼 수 있습니까?” 그러자 바이어가 말했습니다. “불량품이 나올 가능성이 아예 없도록 귀사의 생산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세요.” 생산회사 사장은 검사를 철저히 해서 불량품을 골라낸다고 하지만, 사실 한번의 검사만으로 불량품을 확인하고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적절한 재료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 숨어있는 결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결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도 최고의 물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신 오직 “검사를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적당히 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을 생각하면 완제품을 아무리 철저히 검사한다고 하더라도 바이어가 원하는 양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이 바이어가 요구하는 바와 같이, 들어가는 재료, 생산 과정, 그리고 작업자들의 숙련도와 성실성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의 모든 면에서 품질 관리가 필요합니다. 물건의 품질은 그 물건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들, 그것을 만드는 모든 공정들,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품의 품질에 관련된 모든 요소들이 다 “품질 관리”의 측면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함(integrity)”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믿는 자의 온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대표하는 중요한 성경 구절들이 있는데 그것들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야고보서 2:17절 말씀입니다. 저자는 말씀하기를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3:2절에서는 말씀하기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말로 실수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믿는 자의 온전함”을 위해서 우리가 살피고 조심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의 온전함은 도덕책의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의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들이 있으며,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왜 우리가 온전함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열매”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거두시는 열매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최상품의 열매”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5:4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전함을 위해 모든 좋은 일들을 다 하시며 모든 좋은 것들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좋은 포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믿는 자를 “첫 열매”라고 합니다. 여기서 “처음”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arche (αρχή)”인데 이것은 단순히 시간적인 순서의 “처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뛰어남, 높음, 권세 등에서의 “최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가장 뛰어나고, 존귀하고, 권세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속에 가지신 “유일한 목적”입니다. 여기 물건을 생산하는 회사가 있다고 합시다. 당연히 그 회사의 목적은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 포도원이 있습니다. 그 포도원 주인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당연히 “최상품의 포도”를 수확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열매를 거두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이 온전함에 이르러야 하는 이유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목적입니다. 공장의 제품이 마지막 검사를 통과했을 때 비로소 완성품으로 인정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날 천국 문에서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는 것을 우리 온전함의 목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표로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 온전함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첫 열매, 극상품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가 아니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바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는 소원입니다. 현재의 내가 많은 점에서 부족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온전한 열매”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나는 이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첫 열매”인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 속에 이 소원이 없다면, 우리가 말과 행실을 조심하고 여러 도덕 규칙들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결코 진정한 온전함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온전함에 이르는 길의 시작과 끝은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18b절은 말씀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또 21절은 말씀하기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온전함”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 예수님을 따름으로써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예수님의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합니다. 진정한 겸손과 온유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겸손과 온유함입니다. 나의 뜻, 나의 이익, 나의 의, 나의 지식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온전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계도”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지식을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온전함을 이룬다면 그것은 마치 바이어의 주문과 상관이 없이 내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나 만의 설계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이야말로 모든 사람들 속에 깊이 새겨진 DNA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저자는 “욕심”을 매우 경계합니다. 욕심은 사람을 끊임없이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13-14). 우리가 숨은 욕심을 드러내고 내어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욕심은 우리를 그르치고 멸망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이룰 때 그것을 “성공,” “만족,” “행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욕심의 결국은 죄와 사망입니다. 욕심은 이미 죽음을 잉태한 “불행의 설계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새로운 DNA로 말씀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도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사나운 욕심”을 죽이고, 겸손함으로 온유함으로 이 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도야말로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함에 이르게 하며 내 안에 생명을 창조하는 “행복의 설계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보고 받은 것보다 더 큰 행운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에 말씀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다른 모든 좋은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17절 말씀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는 때로 고난 중에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거운 짐과 어려운 일을 맡기시고 세상에서 고아처럼 살게 하신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서신을 받는 신자들에 대해 저자는 그들을 “흩어져 있는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1절), 또 그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2, 12절). 사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는 악한 세상에서 믿는 자들은 늘 고아와 같이 소외된 소수이며 또 여러 시험들에 노출되어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렇듯 세상으로의 문은 닫히지만, 새로운 문이 열립니다. 그것은 하늘의 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며, 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하늘로부터 내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5:16).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온전함”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증거합니다. 온전함이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삶을 배우고 연습하고 즐기는 것입니다. 오직 그렇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좋은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경고하기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합니다 (6-8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기웃거립니다. 이렇게 나뉘어진 마음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믿고 구하면 주십니다 (5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 곧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심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보증”입니다. 그리고 오직 이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사는 것이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서 필요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입니다. 2-4절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저자는 말하기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올바른 번역은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끝내도록 하라 (Let patience have her perfect work)”입니다. 우리는 자주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절망과 무력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자는 말씀합니다.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끝내도록 하라.” 이 말은 우리가 고난을 견디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인내”가 우리의 성장과 온전케 됨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5:8-9).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에베소서 2: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친히 그 손으로 빚으신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만드실까요? 그것은 우리의 인내를 통해서입니다. 인내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가 원하시는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오랫동안” 참는 것입니다. 인내란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완전히 끝마치실 수 있도록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짧은 유튜브 비디오가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한 뉴질랜드 치즈 회사의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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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만드는 사람은 기다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치즈를 만들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품질의 치즈를 얻기 위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시간이 그 일을 끝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망스럽고 무력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은 바로 이 때가 우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성숙해지며 온전해져가는 바로 그 시간인 것입니다.
믿는 자의 온전함은 우리의 전 인생을 통해 우리가 맺게 되는 궁극적인 열매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 되신 예수님과 하나님의 선물 되신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온전함”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는 일을 다 하시며, 이 일이 끝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온전함을 갖춘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공부를 통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로 성장하는 좋은 길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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