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야고보서 5:1-20
오늘 본문은 야고보서의 마지막 장으로, 여러 예언적인 교훈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져야 할 비전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두 그룹의 청자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는”부자들”이며 (1-6), 다른 하나는 “형제들”입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부한 자들”이 교회의 성도들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말씀이 주저함 없이 단호하고 무서운 경고들임을 생각할 때, 이들이 혹시 교회의 성도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들을 “교회 내의 부자들”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부자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자들”과 “형제들”입니다. 부자들은 재물의 신 맘몬(Mammon)의 제사장들이며, 형제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사장들입니다. 부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반면 형제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며 잠시 세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과 땅에 두 시민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오직 땅에 속한 시민들이며 따라서 이 땅에서 천국을 찾습니다.
1-6절에서 우리는 부자들이 어떻게 땅에서 천국을 추구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금과 은을 모으고 재물을 쌓는 것입니다. 이 부를 가지고 이들은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삶을 누리며, 자신들의 마음을 살찌웁니다. 하지만 이들의 부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이들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을 착취함으로써 부를 쌓아올렸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품군들에게 정당한 액수의 삯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추수꾼들로 하여금 고통으로 울게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임금을 받으면서 밤낮으로 일합니다. 또 수입의 대부분을 집세를 내거나 빚을 갚는데 써야 합니다. 이로 인해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며,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집니다. 이런 부조리들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항상 옳습니다.” 이는 그들이 더 비싼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부유하고 유력한 친구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세상에서 재물은 많은 죄들을 정당화하고 또 그것들을 덮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부자들이 재물 뿐 아니라 “정의”도 소유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낌 없이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이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주인인 맘몬의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의 천국은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금과 은에 있지 않고 그들의 주 예수님의 오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산 소망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부자들의 사치와 향락은 그들의 재물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합니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야고보서 1:10-11절 또한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사람의 부는 바람에 날아가는 먼지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부자의 재산은 그들의 영광과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수치와 고통이 됩니다. 저자는 말씀하기를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의 재산을 통해 천국을 얻으려 할지라도 그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하늘에 있는 영원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지금 이 땅에 잠시 있다가 녹슬어버리는 반짝이는 것들을 포기하고, 대신 장차 임할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구합니다. 이 영광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간직되어 있으며 주님께서 오실 때 가져올 것입니다. 그들의 사치와 행복은 이 소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야말로 산 소망이며, 영광스러운 소망이며, 영원한 소망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권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부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에릭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기적인 기도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잘못된 것은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들의 근원이 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게 좋은 것이 아님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내가 필요한 것을 얻으며 또 필요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애굽 대신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명기 11:10-12). 큰 나일강이 있는 애굽과는 달리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물을 저장할 수 없으며, 따라서 물을 대어 농사를 짓기에 좋은 땅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하시며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돌보시며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 위에 물을 저장해둘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하늘에 있는 저수지로부터 비를 보내주십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은 땅 위에 재산을 쌓아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저자는 또 말씀합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부자들은 그들의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삶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살찌웁니다.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부유함으로부터 옵니다. 하지만 믿는 자의 행복과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이룬 것을 자랑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레미야 9:23-24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우리의 부유함은 우리가 가진 것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유함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하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며, 내가 하나님과 함께 부요하면 그것은 진정한 부요함입니다. 찬양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셔들이는 보좌입니다. 찬양으로 하나님을 우리 영혼 깊은 곳으로 초대하며, 다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신 하나님께서 찬양의 샘이 되십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욱 부유해지며 더욱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재물은 그들의 죄를 정죄하며 그들의 살이 썩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평화이시며, 우리의 의가 되시며, 우리의 영광이 되십니다. 참된 부자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며 그 입술이 찬양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믿는 자는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천국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부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형제들을 착취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사장인 믿는 자들은 맘몬의 지배 아래 고통하는 세상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사역은 치료와 용서와 축복과 구원입니다. 저자는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치료와 죄사함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한 중풍병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예수님께로 들려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2). 그리고 이어서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9:6).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죄사함과 치료는 한 사람의 몸과 영혼을 새롭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사역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섬기신 방법이며, 또 믿는 자들이 세상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믿는 자들은 또한 기도를 통해 세상을 축복합니다.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그쳤습니다. 다시 비 오기를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엘리야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영적인 복리를 위해, 곧 비를 내리시는 분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사람들이 알도록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비록 세상이 그들을 멸시하고 핍박할지라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비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들은 SpaceX 로켓을 전례 없는 인간 기술의 위대한 성과라고 시끄럽게 떠들며 환호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조용하고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임합니다. 민수기 11:9절 말씀입니다.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사람들이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달콤한 잠을 방해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이슬과 만나를 내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믿는 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축복이 세상을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밤새 내리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을 적시는 비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 같은 부자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세상은 커튼 뒤에 숨어 기도하는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사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축복하심으로 유지되고 운행되는 것입니다.
19-20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부자들은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이지만, 믿는 자들은 죄인들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합니다. 이들은 심지어 고난을 자초하면서 이 일을 합니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믿는 자들이 하늘의 집을 놔두고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바로 그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예수님 또한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는 같은 일을 위해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7절에서, 저자는 형제들을 귀한 열매를 추수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농부에 비유합니다. 잃어버린 영혼 외에 무엇이 이 “귀한 열매”가 될 수 있겠습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2:19-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님의 복음의 씨를 심고 이방인들 즉 잃어버린 영혼들을 열매로 거두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았으며 복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주고자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8).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을 동시에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두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bridge)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하늘로부터 세상으로 실어 나릅니다. 그리고 영혼들을 땅으로부터 하늘로 인도합니다. 이들은 평생을 통해 이 일을 수행합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좋은 다리가 되기 위해 무엇이 요구될까요? 첫째로, 교각과 상판을 때리는 거센 파도와 폭풍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야 합니다. 또 다리 위를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이 두려움 없이 그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견고하고 안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의 인내와 굳셈입니다. 우리가 단지 한가지 세상을 산다면 삶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세상의 조류에 자신을 맡기고 물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면 됩니다. 매우 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서로 다른 세상을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맘몬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사장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의 삶은 세상의 조류를 거스르는 싸움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시끄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강하고 굳센 다리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친절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합니다. 인내야말로 크리스천의 힘과 능력입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가 여러 다른 좋은 미덕들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내심이 없다면 그 미덕들이 보호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요한복음 1:51).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다리는 이 세상의 모든 죄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무게를 능히 감당할 만큼 강하고 견고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우리 안에 가질 때 우리 자신의 인내심이 놀랄 정도로 급격히 강해지며, 이 신적인 굳셈을 가지고 우리 또한 세상을 하늘로 이어주는 다리의 부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축복하사 오래 참으며 마음이 굳센 자가 되게 하시며, 이런 우리를 통해 세상을 축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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