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불리한 싸움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53

마리아, 에스더야!

가는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천천히 걸어서 Harvard Square까지 왔다.
물에 젖은 깨끗한 보도 블록을 디딜때마다
마치 하늘을 걷는 듯 마음이 가볍다.

마태복음 5:4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perfect)하기를 원하신다.

무엇에 대해서 온전하라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앞서 하신 말씀들
특히 마태복음 5:38-47절 말씀을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조금 길지만 천천히 읽어보렴!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 말씀들을 "온전한 사랑"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온전하라" 하신 것은
곧 "온전한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온전한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해가 세상을 비추듯이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빛을 비추시고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비를 내리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하시며 친절하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주신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 대라.
속옷을 빼앗으려고 고소하는 자에게 겉옷도 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어라.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참 좋은 말씀들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터무니없이 들린다.
마치 권투선수의 손을 뒤로 묶어놓고
싸우라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심지어 상대방이 잘 때리도록 도와주라고 하신다.

"불리한 싸움"이다.

세상은 험하고
나쁜 사람들도 많은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매일 얻어맞고 손해보고
고생을 많이 할 것 같다.

마리아, 에스더야!

예수님의 제자들이 싸워야 하는
이 "불리한 싸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무엇이냐 하면
세상은 "법없이" 싸우고
우리는 "법대로" 싸우는 것이다.

경기를 하는데 규칙이 있지?
세상 사람들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규칙을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볼까?

사무엘상 24장에는
다윗과 그를 쫓는 사울왕 사이에 일어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시기심으로 다윗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녔단다.
어느날 다윗을 쫓던 사울이
들에서 잠시 쉬기 위해서
한 굴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그런데 그 굴 깊은 곳에는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사울이 "호랑이 굴"에
제발로 들어온거야.

이를 본 다윗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라고 하며
사울을 죽이라고 권한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을 죽이는 대신
그의 겉옷자락을 조금 베었다.
그리고 이 작은 일에 마음이 찔려서 괴로워한다.

다윗은 스스로 사울왕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사람들이 사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사울을 보호해 준다.
만일 다윗의 사람들 중 누군가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면
그는 필시 다윗의 칼에 죽었을 것이다.

다윗이 왜 이렇게 했을까?
사무엘상 24:6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을 넘지 않았다.
아주 살짝 넘으려다가 (옷자락에 칼을 댐으로)
몹시 마음이 찔려서 급히 물러섰다.

다윗은 혹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은 금하셨지만
다른 사람의 손으로 죽이는 것은 괜찮겠지?"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좋아라 하고 사울을 죽일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되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순종한다.
사울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사람들에게 칼을 겨눈다.
이것은 "원수를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다윗에 비하면 사울은 참 "자유롭다!"
그는 수천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온 나라를 활보하면서
마치 힘없는 짐승을 사냥하듯 다윗을 쫓아다닌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이나 규칙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다윗이 눈 앞에 보이기만 하면
주저없이 창으로 그 몸을 꿰뚫을 기세다 (사무엘상 18:10,11).

다윗은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던 날 밤에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아가셔셔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 하자 "내로라" 하시며 순순히 붙잡히신다 (요한복음 18:4,5).

그러자 베드로가 칼을 빼어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린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급히 그의 귀를 치료해 주시고
오히려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칼을 집에 꽂으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당장이라도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해서
이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무리들을 벌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신다.

불법한 무리들은 온유하신 예수님께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칼 한 번 쓴 것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대로" 사신다.
거기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시는 법이 없다.

다윗이나 예수님의 예를 보면
이 "불리한 싸움"을 이기는 것은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이나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벤 것이나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거의 규칙을 어길 뻔한 것이다.
싸움에서 질 뻔한 것이다.

그럼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들이 무엇일까?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법들"이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 대라.
속옷을 빼앗으려고 고소하는 자에게 겉옷도 주어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어라.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의 규칙들을
달리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이 규칙들을 모두 그리고 끝까지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싸우는 "불리한 싸움"이다.

모두들 자유롭게 규칙을 어기면서 경기를 하는데
나 혼자만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다.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고
의미 없는 헛고생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편 73편을 기억하지?
악인의 형통함을 시기하다가
실족할 뻔한 의인의 노래다.

그 중 12-14절 말씀이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악인들은 규칙들을 어기며 살지만
오히려 평안하고 더 잘 산다.
그런데 이 의인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죄를 멀리하려고 노력하는데
매일 재앙을 당하고 징계를 당한다.

다윗이 매일 쫓겨다닌 것처럼
예수님께서 늘 정죄당하시며
마침내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불리하고 어려운 싸움을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잘 싸울 수 있을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무엘상 24:15절에서
사울을 살려준 다윗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경기장에서의 "심판"과 같은 분이시다.

곧 하나님께서
이 싸움이 언제 끝날 것인지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이긴 자에게 주실 상
그리고 진 자에게 내릴 벌을 정하신다.

다윗은 악인을 시기하는 대신
그리고 함께 악을 행하는 대신
"재판장" 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을 충실히 따른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지 않고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나의 사정을 살피시고 불쌍히 여기사
부디 저를 왕의 손에서 건지소서!"
사울과 싸우지 않고 그 대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호소(appeal)하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사울과 다윗 중 정말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쪽은 누구일까?

사울이다.
그는 "불리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진"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규칙을 어긴 마라톤 선수와 같다.
아무리 열심히 뛰더라도
소망이 없는 것이다.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더 높아지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규칙들"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마리아, 에스더야!

이기는 싸움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사랑의 규칙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지키는 것이다.
이것을 끝까지 잘 지키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다.

디모데후서 2:5절에서
바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단다.
세상이 아무리 불법하더라도
세상이 너희를 삼키더라도
아무리 두렵더라도
너희들은 반드시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
면류관(victor's crown)을 얻지 못한다.

디모데후서 4:7,8절은
바울 선생님이 죽음을 앞두고
곧 경기를 마치면서 하신 말씀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승자(victor)"의 감격이 느껴진다.
참으로 우리가 사모하고 배워야 할 모델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사랑의 규칙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거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너희 평생에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이 법들을 잘 지켜서
싸움에서 승리하고
"의의 면류관"을 얻기를 기도한다.

사랑한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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