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누가복음 11:1-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8. 20. 22:56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누가복음 11:1-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복음서의 여러 군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특이하게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고 하지 않고 어떤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기 위해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놓고 그 시간 그곳에서 기도에 전념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평소에 하나님도 말씀도 또 교회 일도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써, 자신이 기도를 하고 있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기도는 이렇게 오가며 하는 생각들이 아닙니다. 기도는 한 때를 정하여 한 곳에 머물며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통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한 특별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곳에서 기도해야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꼭 새벽 시간에 이곳에 와서 기도하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주님께 기도할 때, 그냥 시간 나는 대로 아무데서는 하지 말고, 내가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과 가장 좋은 장소를 정하여, 그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마치시자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을 그저 구경하지 않고 이를 배우고 따라 하기를 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3:1절에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아예 하루 중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이 되면 특정 장소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그 시간이 제 구시라고 합니다. 이는 오늘날로 보면 오후 3입니다. “오후 3는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 아닙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시간을 매일의 기도 시간으로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기도를 잘 하기를 원했습니다. 올바로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하고 겸손히 부탁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기도를 잘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합니다. 하지만 기도도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영혼에 참 능력이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올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삶을 연습하는 것처럼, 기도도 연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시작은 아버지여입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를 부르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엇인가 하면 아버지” “아빠입니다. “아버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르기 쉽지 않은 이름입니다. 전 처음 예수님을 믿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참 어색했습니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 좀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십니다. 자 한번 내 이름을 불러봐! “아빠!” 해 봐. “아빠?” “아빠?” 이게 우리의 신앙의 첫걸음이고 또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마지막 날까지 불러야 하는 이름입니다. “신앙의 무게또는 믿음의 무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무게는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를 때,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 아버지하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에 담긴 내 마음의 무게가 곧 내 믿음의 무게입니다.

 

실제로 기도의 잘하고 못하고는 아버지이 한 마디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 이 말씀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아버지이 말씀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그 동안 있어왔던 모든 일들을 다 담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하고 부를 때, 우리는 온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천지의 주재 하나님을 내가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그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분 안에 있는 그 분을 부르는 것입니다.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은, 없는 분을 찾는 것이 아니고, 멀리 계신 분을 호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뭉클하게 만져지는 그 깊고 말할 수 없이 든든한 아버지의 신실하시고 인자하신 얼굴을 더듬어 만지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을 부르는 것이 바로 기도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기도가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데서, 그 이름을 느끼고, 체험하고, 더 깊이 아는 데서, 그래서 모든 일 가운데 그 이름을 부르고, 모든 일로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을 부르라고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시고, 또 그 영을 주셔서 담대해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