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야곱과 에서 (창세기 25:27-3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9. 5. 20:21

야곱과 에서

 

창세기 25:27-34

 

성경에는 많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옛날 얘기들에서 보는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옛날 얘기들에서는 보통 주인공이 좋은 사람이고 또 그 주인공을 대적하는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주인공은 좋은 사람이기보다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우리와 비슷한 보통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특별함이, 보통 사람의 평범함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의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가 늦은 나이에 얻은 두 아들입니다. 이 둘은 같은 태에서 나온 쌍둥이 형제입니다. 그런데도 둘은 서로 매우 달랐습니다. 에서는 매우 솜씨가 좋은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로 들판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주로 집에서 즉 장막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더 사랑했는데 이는 그가 사냥해온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야곱에 대한 리브가의 사랑에 대해서는 왜 사랑했는지에 관한 이유가 없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장막에 거하면서 어머니 리브가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서로 얘기도 많이 나누었을 것입니다. 리브가의 사랑은 아마도 사냥한 고기와 같은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야곱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하루는 야곱이 장막에서 죽을 쑤고 있는 동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왔습니다. 심히 배가 고팠던 에서는 야곱이 무엇인가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배가 고픈 나머지 에서는 야곱이 무엇을 끓이고 있는지조차 물어볼 틈이 없었습니다. 그저 무엇인가 붉은 것이 눈에 들어오자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 붉은 것을 자기한테 주어 먹게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급했습니다. 무엇이든 뱃속에 넣어야 했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를 붉은 그것이 그에게 생명과 같이 보였습니다.

 

형 에서의 급한 요청을 들은 야곱은 급히 그 붉은 것을 퍼서 형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으레 하듯 그 조용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이 말을 들은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하며 야곱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야곱은 이에서 멈추지 않고 형에게 맹세하라요구했습니다. 이에 에서는 또 맹세했습니다.” 그제서야 야곱은 떡과 그 붉은 것곧 팥죽을 형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사들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곱을 비난합니다. 교활한 술책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을 헐값에 사들였기 때문입니다. 뒤에 보면 그는 다시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가 받을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는 정말 나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형 에서가 순진하고 마음도 넓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론 부분인 34절에서는 야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형 에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야곱과 에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야곱은 미래를 살고 에서는 현재를 산 것입니다. 야곱은 그것이 불확실해 보일지라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지만,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미래를 포기했습니다. 야곱은 명분을 위해 살았지만, 에서는 육체를 위해 살았습니다. 이것이 야곱과 에서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이며 매우 다른 삶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은 우리를 야곱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재의 순간의 만족을 희생하여, 더 영광스러운 미래를 추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불확실한 미래의 약속보다는, 확실할 현재의 만족을 더 선호합니다. 이런 삶이 우리에게 만족을 줄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농부는 소중히 간직해 놓았던 씨를 꺼내 들판에 뿌립니다. 언뜻 생각하면 소중한 씨를 땅에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씨를 뿌림으로써 가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그 씨를 당장 먹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몇 끼의 양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당장 배가 고프더라도 씨가 될 양식을 먹지 않고 밭에 뿌립니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서 농사를 망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뜨거운 여름 내내 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가을이 되기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그 때가 되어서만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고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소망 가운데 씨를 심습니다. 아까운 씨를 땅에 뿌립니다. 미래의 약속을 위해 현재를 포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단 한번도 자신의 현재의 만족을 위해 사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40일을 금식하신 후에도 한 조각 떡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아들로 사시고, 또 장차 자신의 몸을 드려 이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에서가 죽도록 배가 고팠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늘 절박하게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포기하고 믿음으로 사는 대신 육체를 따라 살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우리의 현재에 있지 않고, 우리의 미래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앞 날에 있고 더 멀리는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있습니다.

 

또 한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미래를 위해 팥죽을 포기하고 장자의 명분을 사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날만을 생각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지만 매우 성실하게 일하는 일꾼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1,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곱은 특히 형에 대해서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고 단정했습니다. 이는 그가 교활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가정을 세우고, 열심히 일을 해서 열두 자녀를 키우고, 열심히 일을 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일으켰습니다. 야곱처럼, 농부처럼, 예수님처럼 먼 앞날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오늘 열심히 일을 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힘들어도 힘이 나고, 슬퍼도 기쁘고, 아파도 즐겁습니다. 이것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신자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특별한 삶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