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히브리서 11:24-29
히브리서 11장은 성경 속 위인들의 믿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모세의 믿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선택된” 그리고 “축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운명처럼 주어진 “세상의 복”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선택했습니다. 모세의 삶을 보면,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믿음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삶은 “세상과의 싸움”이며, 모세의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서 “세상을 이기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요?
첫째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24,25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장성하여 사리를 분별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공주의 아들로서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26절에 보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모세의 눈에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능욕이 훨씬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얻을 상은 당장 그에게 주어진 것도 당장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당장 주어진 것은 “고난”과 “수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비록 멀리 보였지만, 믿음으로 그것을 보고 또 믿음으로 그것을 누렸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 영원한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영광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보배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누릴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영원한 나라와, 그 안에서 누릴 영생과 복락입니다. 이에 비하면 “애굽의 보화”는, 곧 “세상의 보화와 부귀영화”는 정말 “잠깐 졸면서 꾸는 꿈”과 같습니다. 모세는 장성하여 이 영원한 세계, 하나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고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세상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모세가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소망을 선택했다고 해도, 세상은 모세가 그것을 갖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선 애굽에는 애굽을 다스리는 임금 바로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고자 했을 때, 바로는 심히 노하였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이런 세상 임금을 이겼습니까? 27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참았으며.” 모세는 보이는 바로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 무서운 바로를 무시하고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버렸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한 가운데 있었으며, 모세가 한 일은 바로 왕의 극심한 분노를 일으키는 짓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는, 아무리 그 권세가 크고 그 분노가 거세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사단은 “세상의 권세들”의 분노한 얼굴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위협하고 굴복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이것을 극복하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한편, 모세에게는 분노한 바로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습니다. 28절에 보면 “장자를 멸하는 자”가 나옵니다. 이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큰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것은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앙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며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그 심판을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장자를 멸하는 자”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늘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죄인이며 심지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본성”까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나의 죄가 드러날 때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가 두렵고 또 그 진노하심이 나를 칠까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의 모든 죄를 속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월절 어린 양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허락하시고, 그의 피를 우리 가운데 뿌리셨습니다. 이 피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심지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피입니다. 이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한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하나님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홍해 바다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다”고 합니다. 어느 누구도 홍해 바다를 건널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빠져 죽기 때문입니다. 그 바다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넜습니다. 그 죽음의 바다가 그들을 삼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홍해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의 바다”이었습니다. 이는 애굽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홍해 바다”는 죽음을 상징하며, 또 세례를 의미합니다. 모세는 이 죽음의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가며, 생명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부활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믿음으로 홍해 바다에 발을 내디딜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빛을 보고 그 빛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보여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다시 말하면 “완전히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믿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 하나가 치열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싸움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복을 얻고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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