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경배 받으실 왕 하나님 (사사기 2:6-2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0. 6. 20:09

경배 받으실 왕 하나님

 

사사기 2:6-23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의 초기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곧 정복 전쟁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울이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약 300년간 동안의 역사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절인 21:25절은 이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 때 사람들은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사사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임시로 세우신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왕이 아니었고, 따라서 왕과 같은 통치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문제는 왕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리고 10절은 다시 말씀합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까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다 보았으며,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 뜻에 순종하도록 지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여호수아와 및 그와 함께 했던 세대가 죽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길 잃은 양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는 왕이 없다는 점에서 오늘 날과 매우 흡사합니다. 오늘날은 대통령이 의 역할을 하지만, 대통령은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이기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수행하는 공무원에 더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왕입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오늘날 사람들은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게 되는 모든 문제들의 근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모르는 것이 곧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생명의 줄기와 같습니다. 이 줄기를 타고 수분과 영양분들이 공급됩니다. 또 생명이 유지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줄기에 따라서 가지가 맺는 열매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줄기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그 줄기를 떠나면 근본도 뿌리도 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며 부끄러운 열매들만을 맺은 채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하신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근본부터 지으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주이시며,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무덤에 누일 때까지 내 길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며, 또 내 영혼이 돌아가 안식할 나의 영원한 본향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며, 이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이 전부 소유한 자입니다. 심지어 생명을 잃더라도 우리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참 생명이시며 우리를 열 번이고 백 번이라도 다시 살리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 일을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하시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재앙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이들이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았다고 합니다. 곧 간음을 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음행 하는 죄를 매우 중대하게 다룹니다. 고린도전서 6: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에서와 같이 음행의 죄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인 육체를 더럽히는 죄이며 따라서, 다른 죄들과 구별되는 더욱 중대한 죄입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는 더욱 더 중대합니다. 이는 그 성전에 성령님 대신 다른 것들을 모셔 놓고 그 앞에서 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체를 더럽히는 것보다 더 한 것이며,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은 늘 하나님을 향해야 하며, 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시편 42:1). 물론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고, 원하는 것도 많고, 계획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있으며, 그 성전에서는 항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하며, 또 이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으며, 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함으로써 많은 고난들을 자초하였습니다. 그들이 괴로움이 심하여 하나님께 슬피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이 백성들은 정말 단 한 번도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하여, 하나님이 보고 싶어서, 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예배 드리기 위해 그 앞에 나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는 늘 자기들의 죄로 인해 심한 괴로움을 당할 때뿐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 속에는 기쁨의 찬양은 거의 없고 늘 슬픈 부르짖음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86:15).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과, 구원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악해져 갔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와 하나님 앞에서의 패역함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은 참된 평안과 행복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대적하는 이방 민족들을 내어쫓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남겨두셨습니다. 22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열조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을 쫓아 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오직 하나님 한 분을 모시고 이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축복된 삶인 것을 잘 알지만, 우리의 죄의 본성 때문에 이것이 어렵습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우리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진정한 사사이시며, 왕이시며, 목자 되신 예수님을 세우셨습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알고 체험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드리는 기도가 괴로움에 슬피 우는 기도보다, 더 자주 기쁨과 찬양과 감사의 기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