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창세기 2:4-2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1. 8. 13:59

행복한 삶을 위해서

 

창세기 2:4-25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역사 중 인간 창조 부분을 더 자세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흔히 낙원이라고 부르는 에덴 동산을 소개합니다. “낙원이라 함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 없는 완전히 행복한 곳 또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후 그를 이 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을 공부하면, 하나님께 본래 지으신, 완전히 행복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진정으로 낙원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는지를 설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말씀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우선 사람은 으로 빚어진 육체를 가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 (spirit)”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영으로 그리고 육신으로 온전할 때 그가 생령 곧 살아있는 존재 (being)” 또는 살아있는 영혼 (soul)”이 됩니다. 사람이 동물들과 다른 점은 바로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회복시키시는 모습이 여러 군데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 35:5절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마른 뼈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신약의 요한복음 20:22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말씀하십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쓰시고자 하시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그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을 가졌을 때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진정으로 산 자이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요한복음 4:24). 그래서 오직 영적으로 산 자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아무리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없으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마른 뼈와 같습니다. 전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동산 한가운데 특이한 나무 둘이 있었는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금하셨는데 이는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였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의 한 가운데 있었으니, 아마도 이 사람은 매일 그 나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나무 밑에서 쉬기도 하고, 또 그 열매를 자세히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나무의 실과를 금하신 명령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나무의 열매에 손을 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매일 그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 사람은 늘 하나님을 기억하며, 경외하며, 예배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괴롭히고 시험하시려고 두신 덫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그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늘 잊지 않고 경외하도록 고안된 아주 신기한 장치입니다. 사람은 이 나무를 보면서 자연히 그 계명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함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사람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혼자 사는 존재”로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혼자 노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친구들을 찾아 집을 나가면, 잠시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를 뿐, 거의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리다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서 놀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니 혼자 노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 하십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게 된 것은 그녀가 혼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 죄가 팽배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이유들 중 하나 또한 무너진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절에 하나님께서는 지으실 여자를 가리켜 돕는 배필이라고 하십니다. NIV 영어 성경에는 “suitable helper” 곧 돕는 자라고 되어 있으며, KJV에는 아예 “help” 도움이라고 번역합니다. 쉽게 말하면 여자는 돕는 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남자는 여자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며, 혼자로는 좋지 못하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에게 인도하시자, 이를 본 남자는 여자를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부릅니다. 또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리라 합니다. 25절에 남자와 그 아내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서로 간에 막힘이 없는 완전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두 독립적인 개인들이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시각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의 관계는 항상 이와 같은 연합(unity)”을 그 목표로 합니다. 부부간의 연합뿐 아니라, 삼위 하나님과의 연합,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의 연합이 모두 이와 같은 완전한 일체를 바라며 사모합니다. 이렇게 온전한 사랑의 연합을 이룰 때 우리가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에덴 동산의 축복은 이 뿐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강물들의 근원이 있어서 맑은 물이 한없이 솟아나 온 대지를 적십니다. 또 정금과 온갖 진귀한 보석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늘로부터 임한 새 예루살렘 성을 여러 말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 18절에 따르면,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합니다. 22: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님께서 최초에 지으신 에덴 동산의 모습은, 장차 임할 천국인 예루살렘 성과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사람을 위하여 같은 마음으로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지극히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주셨으며, 또한 예수님을 통해 그 잃어버린 낙원과 행복을 회복하십니다. 우리는 낙원의 행복을 소망으로 가질 뿐 아니라 또한 오늘 지금 이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배필과 그리고 형제 자매들과 사랑의 연합을 이루며, 또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 행복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누리는 기쁨을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