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0. 23. 23:55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5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하십니다. 여기서 비판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에 대해 그 사람 전체를 정죄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 말씀과 모순되게 들리는 다른 교훈들도 있습니다.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5:14절은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말씀합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21,22절에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분별력 있는 제자가 되면서 또한 예수님의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합당한 지침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우리 또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비판한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판하십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할 때는, 먼저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들을 꿰뚫어보시고, 판단하시며, 심판하시는 심판장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의식할 때, 함부로 남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불려 나온 피고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라도 이 하나님 앞에서는 남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법정에 선 피고인이, 판사님을 앞에 두고 있으면서, 옆에 있는 다른 피고인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더 무거운 형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죄인 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였을 뿐 아니라, 판사의 고유 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거룩하신 심판장 앞에 선 피고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날 일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재판이 유예된 피고인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늘 자신을 살피고 경건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남을 비판하는데 있어서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비판과 헤아림이 똑같이 내게도 적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비판하고 헤아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친절하십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는 앞 장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 포함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마태복음 6:12). 이것도 모자라 예수님께서는 14,15절에 부연하여 설명하십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긍휼과 자비는 하나님의 여러 아름다운 성품들 중 지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이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대적하시며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과 자비를 거두어가십니다.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그 비판의 말로 자신을 비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판의 말이 가져오는 고통을 몸소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비판을 대신 홀로 받으시고 그 고통을 다 감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판보다 용서에 능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깨닫고 먼저 그 들보를 빼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내 눈 속에 있는 들보와 대조시키십니다. 우리 속담에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눈에 들보가 들어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의 문제는 자기의 잘못은 매우 명백한데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작은 허물들만을 들추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거나, 길을 지나다가 밭에 익은 이삭을 한 줌 훑어 입에 넣었다고 해서 이들을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욕심과 살인심, 무정함과 무자비함, 거짓과 불의를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더 큰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 대해 외식하는 자여!”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명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들보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외식또는 자기 의가 아닐까 합니다. 이 들보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인 됨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립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있는 티는 예리하게 찾아내면서, 바로 내 눈 앞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있는 자신의 잘못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의 티를 빼겠다고 함부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밝히 보라하십니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통회하는 마음이 생기고, 또 눈에 티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 보는 눈, 특히 자신의 들보를 볼 수 있는 용기 있는 눈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밝히 볼 때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비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티를 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곧 우리가 분별력과 지혜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 이유는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줌으로써 형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눈은 매우 민감한 부분입니다. 아주 살짝 건드려도 매우 쓰리고 아픕니다. 그런 눈이 다치지 않게 티를 빼는 일은 극도의 신중함을 요구합니다. 죄와 관련된 우리 영혼의 반응도 눈처럼 극도로 예민합니다. 눈이 아프면 감듯이, 사람들도 자신이 정죄를 받는다 싶으면 바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정말 완전하신 의사이셨습니다. 심지어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성경 원문에는, 여기서의 정죄한다는 말과 오늘 본문의 비판한다는 말에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 그래서 심지어 세리와 죄인들까지도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19). 세리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 예수님을 설명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인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마태복음 12:16-18). 예수님은 정말 신기하신 의사이십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흔적도 없이 가져가시되, 전혀 상처를 남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상한 갈대가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되고, 꺼져가는 심지가 세상을 태우는 불덩어리가 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눈을 활짝 열어 주님의 돌보심에 맡기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고 온유할 때, 세상에서 상처받고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료할 수 있는 영혼의 의사들로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비판한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잘못하면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심지어 상대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내 눈을 가리고 있는 들보를 먼저 깨닫고 이를 들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절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