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13:24-30, 36-4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1. 10. 11:36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복음 13:24-30, 36-43

 

마태복음 17장에는 7가지의 천국 비유들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 13:3-23), 알곡과 가라지 비유 (13:24-30, 36-43), 겨자씨 비유 (13:31-32), 누룩의 비유 (13:33),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13:44), 값진 진주의 비유 (13:45), 그리고 그물의 비유 (13:47-50)입니다. 이 비유들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특히 제자들에게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 비유들 중 두 번째 곧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습니다. 곡식이 싹이 나고 결실할 때가 되자 가라지들도 그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를 본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여쭈었습니다. “주인님! 분명히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이 가라지들은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주인은 이것이 원수가 한 짓임을 알았습니다. 하인들은 이 가라지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십니까?” 하지만 주인은 그렇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주인은 말했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하리라.”

 

36-43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십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좋은 씨를 뿌린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며,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입니다. 추수 때란 곧 세상의 끝을 말하며,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가라지들 곧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시고 그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으십니다. 또한 알곡들 곧 의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불의한 일들과 불의한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밭에는 예수님께서 심으신 의인들뿐 아니라 원수 마귀가 뿌려놓은 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뽑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라지는 우리나라의 논에서 나는 라는 잡초와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잡초는 뿌리가 깊고 강하다고 합니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땅속을 들여다보면 식물들은 사방으로 뿌리를 뻗어 서로 엉켜있습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다 보면 곡식 또한 같이 뽑힐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염려하신 예수님께서는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하십니다. 세상의 불의한 일이나 불의한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자주 그것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골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그것들을 당장 없애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봅니다. 불의를 없애겠다고 붙들고 싸우다 보면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들까지 어려움에 처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가 뿌린 불법한 자들과 뒤엉켜 싸우기를 원합니다. 또 세상의 여러 문제들에 휘말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열매 맺는 삶의 비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와서 하신 일은 가라지를 뽑는 일이 아니라 좋은 씨를 심고 키우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으시고 겨우 싹을 낸 첫 교회는 세상이라는 험한 밭에서 자라기에 너무 미약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씨는 좋은 씨이고 강한 씨였습니다. 불의한 자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잘 자랐습니다.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좋은 씨들을 흩어 뿌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욱 커져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종말에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기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하십니다. 어떻게 들으면 세상의 불의를 방관하라는 무책임한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일본에 기무라 아키노리(Kimura Akinori)라는 사과 농부가 있습니다. 그는 사과 농사를 짓는데 농약을 쓰지 않습니다. 또 그의 사과 밭에는 풀들이 무릎을 덮을 만큼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농약도 쓰지 않고 잡초도 제거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과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들은 맛이 아주 좋아서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합니다. 어떻게 농약도 주지 않고 잡초도 뽑아주지 않는데 이렇게 질 좋은 사과가 맺히는 것일까요? 이는 사과 나무 자체가 갖고 있는 높은 면역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사과나무들은 병에도 걸리지 않고, 혹 걸리더라도 그 병을 퇴치할 수 능력이 있어서 잠깐 앓고 만다고 합니다. 또 마음껏 자란 잡초들은 사과나무에 끊임없이 질 좋은 거름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무라씨의 사과나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건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다른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농약도 쓰고 잡초도 말끔하게 제거해주었었습니다. 아내가 농약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사과 재배를 시도했었는데 처음에는 나무에 벌레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그 벌레들 때문에 가지가 휘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1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시간 동안 나무들은 천천히 그들 깊은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능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건강한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여 농부에게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기무라씨가 농약도 쓰지 않고 잡초도 제거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그를 게으르고 무심한 농부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한 일들과 불의한 사람들을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을 보고도 우리가 비슷한 원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하십니다. 사과나무가 약했을 때는 우거진 잡초들 사이에서 또 벌레들에 덮여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련들도 사실은 사과나무가 강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시련을 통해서 나무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마귀와 불의한 자들을 심판의 날이 이르기까지 내버려두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 사람이 없어져야 내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어!” 또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아무 일도 못하겠어!”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나 일에 골몰하여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됩니다. 세상의 불의한 사람들이나 불의한 일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더욱 강하고 순결하게 연단시키는 도구들입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기무라씨의 사과나무와 같이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천국을 이루셨지만, 그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불의가 없는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농약을 쓰지 않을 때 벌레들이 나무를 덮은 것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오히려 세상은 더욱 적나라하게 그 본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강하고 순결하며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의가 없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의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자신과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지킬 때, 장차 주님의 때가 되어 주님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불의한 세상을 이길 믿음과 천국의 소망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장차 주님의 곳간에 수확될 알곡들로 자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