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세기 12:1-9)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1. 26. 15:25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창세기 12:1-9

 

아브라함은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훌륭한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일을 아주 간명하고 포인트 있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실제로 죽은 자와 같았으며 없는 자와 같았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모든 인류가 흠모하는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가 한 것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나머지는 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곧 아브라함의 능력이고 그가 일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 특히 2,3절에 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 아브라함뿐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들을 보면 그 복의 내용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며,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 있어서 진정한 복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2절 말씀은 내가 너로 ……”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일대일로, 인격 대 인격으로 상대하고 계심을 나타냅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동행하시며 그의 친구가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복 주실 때, 아브라함과 같은 한 촌부가 얼마나 위대하게 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약속들을 하시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네가 OOO 하면 내가 OOO 하겠다는 그런 계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약속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6:13-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그 하신 약속을 지키심은 아브라함의 신실함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심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한 것은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오래 참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마침내 그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build up” 이기보다는 “break dow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매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아브라함은 이제 세상에 정착한 안정된 삶을 버리고, 움직이는 순례자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그에게 갈 곳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나갔습니다. 오늘 본문의 6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갔을 때 가나안 사람들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합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이 정착할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막(텐트)을 치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믿을 것이라고는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떠나는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얼마나 복 받는 삶인가를 보여주실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늘 의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움직이기보다는, 그냥 그것에 나를 붙들어 매고 끝까지 살고 싶은 무엇입니다. 좋은 집, 많은 재물, 가족들과 친구들, 든든한 직장, 건강한 신체 등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정말 많은 것들로 세상에 붙들려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것들을 잘 보전하고, 번성케 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된 삶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는 결코 본토 친척 아비 집에 앉아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떠나야 합니다. “매일떠나야 합니다. 주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복들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으로 주신 약속들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이 말씀은 곧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기준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받아들이고 축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또 아브라함을 거부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이는 좀 과장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세상에서 거의 하나님수준으로 높이신 것입니다. 이 일은 실제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가뭄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일어났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속아서그의 아내 사라를 취했다가, 그와 그의 집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큰 재앙을 당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여 그의 아내 사라를 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지만 사실은 바로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할 “Prince of God”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Prince of God”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여전히 그냥 나그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지만, 막상 애굽에 내려가자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아내 사라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호의를 얻고자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세상의 저주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 점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축복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들 중 반은 나를 축복하고, 반은 나를 저주하는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나그네처럼 보이는 Prince of God”으로서 그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히브리서 2:6-8절 말씀입니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두신 산 돌심판의 기준이 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보배이시며 그 인생을 든든히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거치는 돌, 부딪히는 돌, 무너뜨리는 돌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역할을 하시는데 조금치도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항상 “Prince of God”으로 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그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축복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은 세상의 저주를 떠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 안정된 삶을 버리고 나그네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멸망의 자식“Prince of God”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치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과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복되고 안정되고 영원한 삶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