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사단의 궤계 (창세기 3:1-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1. 28. 12:08

사단의 궤계

 

창세기 3:1-7

 

창세기 3장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내용 자체는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사단의 정체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6:11절에서 사도 바울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권면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적하되, (능력, 권세)으로 하지 않습니다. 바로 궤계(scheme) 곧 꾀로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사단을 상징하는 뱀을 가리켜 가장 간교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사단은 참으로 우리가 싸우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구약 성경의 욥기에 보면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서서 의인 욥을 고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서 욥에게 여러 가지 시련들을 안깁니다. 이 때 사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욥을 가난하게 만들거나, 그의 집을 파괴하거나, 그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런 여러 가지 시련들을 통해서 욥을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께 욕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독자들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화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불행한 사건들과 은혜의 하나님을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곧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단의 궤계에 속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사단의 궤계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욥에 대해 사단은 실상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욥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속여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단의 정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복음 8:44). 이 말씀에 따르면, 사단은 거짓말쟁이이며 살인한 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그리고 그 사랑으로부터 떨어뜨리고 죽이기 위해 교묘한 거짓말로 역사합니다.

 

창세기 3장의 시작 부분인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런 사단의 전략들을 얼마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는 여자에게 접근한 뱀은 그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은 우선 거짓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 하셨습니다 (창세기 2:16).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는 사람이 마음껏 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넘치는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사단은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은 것처럼 질문했습니다. 여자는 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네 말은 사실이 아니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어!” 이렇게 분명하게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니야! 하지만 네 말이 전혀 틀리지는 않아!” 하고 은근히 맞장구를 치는 것입니다. 이제 그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실과만 먹을 수 있다면 정말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인데, 저것 때문에 마치 자신이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여자를 향해 뱀은 거짓 확신을 심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거짓 확신과 함께 뱀은 여자를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실과를 금하신 것이 자신들의 지혜롭게 될 것을 경계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짓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뱀이 그녀에게 거짓 확신, 교만, 의심 등을 심음으로써, 여자는 사단이 쳐놓은 덫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이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니 그것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보였습니다. 전에 이 나무를 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며 경배하였는데 이제 이 나무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상으로 보였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그 실과를 따서 먹고 또 남편에게도 주어 그로 먹게 했습니다.

 

사단의 책략은 근본적으로 여자의 눈을 하나님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바꾼 것입니다. 에덴 동산 한가운데 서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하나님 중심으로 세상을 보도록 도와 준 파수꾼과 같았습니다. 이들은 이 나무를 보면서, 자신들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뱀은 여자로 하여금 이 나무를 자기 중심적인 시각으로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금지하신 하나님의 계명이 여자에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금지하셨을까? 이것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을까 아니면 뱀의 말이 맞을까? 내가 하나님처럼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선악을 알게 된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이제 그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행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금지하신 하나님께서 정말 야속하게느껴졌습니다. 이런 좋은 얘기를 해준 뱀이 고마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먹기도 전에 나무가 너무 맛있고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들을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이것만 먹을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사단은 매우 간교합니다. 그는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도록 힘을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겨우 몇 마디 말로 그녀의 눈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스스로 그 실과를 따서 먹도록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한1 2:15-17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말씀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단을 궤계를 이기는 길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그가 절대화(absolutize)”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상대화(relativize)”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절대화하는 사람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사단의 궤계는 이것입니다. 곧 나를 절대화하고 하나님을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절묘한 바꿔치기라서 자신조차 알아채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무서운 죄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나머지가 나의 목숨이라도 하나님의 뜻앞에서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곧 주님의 뜻이라면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22:42). 이것이 에스더가 위험을 무릅쓰고 왕의 앞에 나아가며 한 결단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4:16). 이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에 절하기를 거부하면서 한 선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 3:18).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아브라함의 순종입니다 (창세기 22:3).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 사단의 궤계를 이기고 굳건히 서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