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상

성역 (聖域)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5. 7. 24. 03:40

"성역(聖域)"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성한 지역" 또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흔히 "성역 없는 수사"라고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관련된 자들을 다 조사하겠다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성역"으로 간주되어 보호받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성역"을 갖고 있다.

곧 자신이 매우 "성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는 명절날 성묘 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다.

특히 당신의 어머니 곧 내 할머니 산소 찾는 것을 "성역"으로 삼으셨다.

다른 일로는 자식들의 삶에 별로 간섭을 안 하시지만

할머니 산소에 성묘 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내 기억에 아무도 이 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만큼 "절대적인 성역"이었기 때문이리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는

전공 분야가 "성역"일 수 있다.

비싼 학비를 들이고 오랫동안 고생을 하여 치과 의사가 되었다면

"치의학"이 그 사람의 성역이 될 수 있다.

그 사람 앞에서 누군가가 치아 관리의 상식을 말하기라도 한다면

이 치과 의사는 마치 자신의 "성역"이 침범당한 듯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받았던 아픈 상처의 기억 또한 "성역"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성역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하며

그것을 논해서도 안 되고 치료한답시고 덤벼들어서도 안 된다.

그 기억이 연상되는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성역"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성역은 역시 "하나님의 이름"과 그 이름을 모신 "성전"이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 "장로들의 유전," "안식일 규례" 등

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역"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성역을 침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들의 "성역"은 예수님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심지어 하나님이시라도 

감히 범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성역"이란 "하나님"이나 "율법"이나 "성전"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성역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이들은 성역을 지킨다고 열심을 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율법을 범하며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성역"을 수단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억누른 것이다.


이와 같이 "성역"의 이면에는 "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할머니 산소 성묘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의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치과 의사가 "치의학"을 성역으로 붙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성역"으로 붙드는 것은 이와 같이 "나"와 관계되어 있다.

곧 보이지 않게 숨겨진 성역은 "나" 또는 "나의 욕심"인 것이다.


예수님께도 성역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성역은 "진리"와 "사랑"이다.

예수님 안에는 거짓이 없고, 예수님 안에는 미움이 없다.

주님은 온전히 진리이시고 사랑이시다.


예수님의 성역이 사람들의 성역과 다른 점은

예수님 자신이 진리와 사랑에 헌신하셨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진리와 사랑을 성역으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기까지 진리와 사랑을 지키는 삶을 사신 것이다.

곧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으로 사신 것이다.


진리와 사랑이 아닌 "성역"은

참으로 불편하고 부자유하고 억압적인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진리와 사랑 대신

이러한 "성역"들을 강요하고 또 사람들을 그 속에 가두기도 한다.

종교란 참으로 "powerful"한 것이라서

한번 "성역"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뿌리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개 그런 성역이 있으면 평생을 그 그늘 아래 살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 추구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이다.

아무 불학무식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그것이 "진리"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학문이 높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진리" 앞에 성역이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삶의 목표는 늘 "사랑"이어야 한다.

"성역"을 지킨답시고 사람들을 억누르는 짓은 옳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니라!"

무슨 일이든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지켜야 할 성역은 "진리"와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 다른 "성역"이 우리 안에 생기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나 자신"이라도 "성역"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삶이었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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