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천국의 비유 –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마태복음 13:44-4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10. 17. 11:51

천국의 비유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마태복음 13:44-46

 

저는 자신의 직업을 전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 직업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 “성공하는 길,” 또는 행복한 삶의 비결등을 가르치는 것도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들에는 한 가지 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나 성공이나 행복의 가치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며, 모두가 다 추구하는 것입니다. 굳이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구구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는가?”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하지만 전도자는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합니다. 먼저 천국의 측량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지극히 값진천국을 얻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둘 다 매우 어렵습니다. 때로는 이것이 마치 허공에다 집을 짓는 것처럼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어려움은 아마도 모든 전도자들이 다 겪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천국을 전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환영하고 기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 많은 갈등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갈등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종교 지도자들과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심각한 갈등은 사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과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원인들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을 얻는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35). 사도 바울 또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며, 경건 자체가 곧 큰 이익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6:5,6).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 그리고 극히 값진 진주로 비유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묻혀 있는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를 숨겨두고 돌아와서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또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있는데, 그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고는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이 두 비유들은 모두 천국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의 소유를 남김 없이 다 팔아서 그것을 샀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산 사람은 기뻐하며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발견한 보화가 자신의 소유물 전부의 값어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가 있음을 말합니다.

 

오늘 비유에서처럼 천국은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을 다 팔아서라도 살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값어치를 깨달아 알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길까요? 요한일서 2:16절에는 세상에 속한 가치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 말씀은 세상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선은 우리의 육체에 당장 유익한 것들 곧 먹고 마시는 것들입니다. 또 눈에 보이는 것들이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만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여겨지며, 또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은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들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이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며, 또 우리의 육체의 필요에 당장 쓸모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들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천국의 가치를 올바로 깨닫고 얻기란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돼지가 진주의 값어치를 깨닫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의 가치를 깨닫고 좇는 것은 가장 고상한 일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이, 천국은 오직 가장 고상한 것을 찾는 이들에게 발견되며 또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빌립보서 3:7,8a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여기서 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이 이제는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의 인생의 목적이 고상하게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된 것입니다. 그의 눈이 바뀌자 그 동안 그가 세상에서 좇던 것들이 천박하게,” 심지어 해롭게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그런 것들을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지극히 값진 진주를 찾은 사람은 그것들을 얻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모두팔았습니다. 혹자는 이 비유들을 들어 천국을 무엇인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이 결코 살 수 없는 것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소유를 모두 팔았다는 것은 이들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들의 마음이 소유에서 보화로 완전히 옮겨졌습니다.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뻐하며 자기의 모든 소유를 처분합니다. “보화를 얻은 이상, 다른 것들은 있든지 없든지 이제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잃는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코 살 수 없는 것,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지극히 값진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뿌리는 결국 나의 마음에 있습니다. 어떤 것의 가치는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만큼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 하십니다. 우리가 천국을 보화로 발견할 때, 우리 마음도 거기에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면서 이에 대한 값으로 받기를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주신 천국에서 우리 마음이 떠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우리 마음이 천국에 머물며,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 한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잘생기고, 명랑한데다, 똑똑하기까지 하여서 늘 사람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그를 칭찬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마음이 높아졌습니다. 교만해진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그를 도울 목적으로 그에게 겸손이라는 별명을 주시고, 사람들이 그를 겸손이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그를 겸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이라고 부르자,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생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잘생기고 똑똑한데다가 이제 겸손하기까지 하여, 그는 더욱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심지어 겸손까지도 높아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이는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습니다 (잠언 26:11).

 

디모데전서 6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변화되지 못한 마음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합니다. 부하려고 하며 돈을 사랑하는 자들은 경건이익의 재료로 생각합니다 (디모데전서 6:5). 마치 겸손 자체를 보화로 여기지 않고, 이를 더 높아지기 수단이나 디딤돌 정도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경계와 함께, 바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힘주어 열거합니다. 이것들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한 수단들이 아닙니다. 이것들 자체가 우리가 간절히 원하며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얻어야 하는 천국의 보화들입니다.

 

천국의 보화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또 당장 세상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히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하십니다 (마태복음 6:20). 또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3:2).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을 향해 앞으로 행진하는 것과 같이,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바다를 건너서 천국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 “성공하는 길,” 또는 행복한 삶의 비결에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 저편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의 소망을 죽여야 합니다. 돌아갈 다리를 부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귀한 보화들을 좇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천국을 향한 고상한 소망으로 설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감추인 보화를 산 사람, 그리고 극히 값진 진주를 산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아마도 남모르게 그 값진 보화들을 꺼내서 보고, 만지고, 느끼며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보화는 마치 월드컵 축구의 결승전 마지막 1분 전에 넣은 결승골이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9회 말에 나온 역전 홈런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만 명의 관중들이 함께 목이 터져라 환호하며 열광하는 그 순간의 감격은 아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돌아가면, 텅 빈 경기장에 남는 것은 바람에 구르는 쓰레기들뿐이며, 또 텅 빈 우리 가슴에 남는 것은 적막한 허무함뿐입니다. 감사하게도 천국의 보화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혼자 있는 나의 가슴을 벅차게 채워서 견딜 수 없이 행복하게 만듭니다. 또 나를 고상하게 높여서 세상을 덮은 먹구름을 뚫고 햇볕 가득한 창공으로 오르게 합니다. 이렇게 늘 충만하며 늘 만족합니다. 우리 각자가 이렇게 은밀한 천국의 보화들을 찾고, 취하며,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