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오병이어의 기적 –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누가복음 9:10-17)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6. 10. 31. 03:42

오병이어의 기적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누가복음 9:10-17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삶은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삶과 다른 눈에 띄는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책을 들고 있지 않아도, 찬양을 부르지 않아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특징들로는 온유한 얼굴, 겸손한 태도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이들이 용서하는 자들(forgivers)이며 또 주는 자들(givers)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용서하는 자들이며, 주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신 삶이며, 또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며 또 모두 굶주린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또 이들에게 생명의 떡과 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오늘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앞부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시고, 그들을 마을들로 보내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모두 예수님께 보고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만을 따로 데리고 벳새다라고 하는 마을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우다 지친 제자들에게 쉼을 주시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알고 예수님 일행을 따라왔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거대한 무리였습니다. 오랜만에 조용히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지며, 전도여행에서 경험했던 신기하고 놀라운 무용담들을 나누고자 했던 제자들의 기대는 산산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수많은 불청객들을 영접하셨습니다. NIV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들을 환영(welcome)’했다고 번역합니다. 주님께서는 늘 하듯이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또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선한 목자이십니다. 양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늘 활짝 열려있으며, 변함 없이 따뜻합니다. 시냇가에 넓게 펼쳐진 푸른 초장처럼, 오천 명이라도 능히 그 안에서 마음껏 뒹굴고 쉬며 먹고 마시기에 충분하게 주님의 마음은 그렇게 넓고 편안합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시간을 잊으시고 양들을 섬기셨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끝날 때를 기다리던 제자들은 이제 배가 고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주님, 우리도 이제 먹고 쉬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만 보내시죠!” 이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내심의 끝에 서 있는 제자들에게, 어서 빨리 일이 끝나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오직 배고프고 피곤한 자신들밖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십니다. 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먹이려면 먹을 것을 사야 하는데 돈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는 제자들한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일고의 가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 주어라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궁핍한 상황은 아마도 예수님 자신이 더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하다고 여기며 한 번도 의심치 않았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덮고 있는 불신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 영적 세계, 주님의 세계를 여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원문에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는 명령문에서 너희(you)”라는 주어가 생략되지만, 이 말씀에서는 너희가라고 꼭 집어서 말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강조점이 너희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리들을 보내어 그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찾게 하거나, 이 일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너희곧 제자들이 먹을 것을 준비하여 이들을 먹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제자들이 무리들의 배고픈 문제를 걱정하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무리들의 문제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에서 한 발 벗어나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무리들의 배고픔 문제 속으로 끌어들이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는 돈도 없고 먹을 것이 없어요!” 하고 버티는데도, 주님은 고집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무리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참으로 대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섬기셨지만, 제자들은 무리들을 보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도록 하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의 마음 속에 무엇인가를 심고자 하셨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오직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만이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효력이란 어떤 일을 이루어지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이 효력또는 능력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지 않고는무리들을 먹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더 구체적으로 각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한복음 6:7)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돈이 없으니 무리들을 먹일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이러한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오직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 모든 일의 시작이며, 과정이며, 끝입니다. 사랑을 두 단어로 분해하면 용서하는 것(forgiving)’주는 것(giv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망쳐버린 이 염치없는 불청객들을 용서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환영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남김없이 쏟아 부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함이 없이 계속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이십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이 사랑의 샘물이 가난한 죄인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늘 나 자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배고프고 무례한 무리들은 사랑을 솟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내 마음을 닫고 쪼그라들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한번도 자신을 향한 적이 없습니다. 40일을 굶으시고도 자신을 위해 떡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그 사랑이 당신의 살을 찢고 피를 쏟게 하는 것도 모르시고, 주님은 계속 사랑하셨습니다 계속 용서하시고, 계속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은 나의 필요들에 대해서 눈을 감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 눈을 뜨고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기적이고 무정한 본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은 거의 죽는 것과 같은 고통과 두려움이 따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참된 제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이 자신들의 돈주머니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능력입니다. 돈이 있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는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참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믿음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믿음이 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모든 문제들 앞에서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고 누리는 자들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부자가 되는 길은 더 큰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진 자는 더 많이 받으며, 더 좋은 것을 누리며,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욕심 내는 만큼,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 큰 믿음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져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사하시고 이를 떼어 그 많은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고린도전서 3:9).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cannot).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하시지 않는다 (will not).”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축복하시기 위한 통로 (channel)”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또 세상의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능력으로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진 자는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산 떡이라고 하십니다. “산 떡이란 생명을 주는 떡이기도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있는 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님은 항상 거기 계시며, 자신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자기 문제에 갇혀 있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세상은 그렇게 버려지는 것입니다. 영혼들은 굶주리며 광야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많은 문제들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지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믿음과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능력이 충만한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굶주려 허덕이는 양들에게, 주님 안에서 배불리 먹고 만족하는 천국 잔치를 선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3/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