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0:1-10)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7. 11. 27. 04:50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0:1-10

 

요한복음 10장 말씀 전체를 요약하는 key verses 14,15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자신의 양을 깊이 아시고 생명을 주시기까지 양을 사랑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을 목사(牧師)라고 하고 영어로는 “pastor”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들은 모두 양을 치는 목자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 예수님은 교회 사역자들이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됩니다. “목자는 문자적으로 양을 돌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성경에서 이 말은 자주 사람들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지도자를 의미하는 말로 쓰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목자로 부르기도 하며 (시편 23:1; 80:1), 다윗과 같은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해서도 이 타이틀이 쓰였습니다 (사무엘하 2:5).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들의 역사이며, 이를 다시 말하면 목자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역사서들을 읽어보면, 백성들을 인도하는 왕들이 어떠함에 따라서 이스라엘 나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목자를 찾으셨지만 그런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기 백성들의 목자를 예비하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5:6절에 인용된 미가서 말씀입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목자 왕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은 물론 그의 양들을 친히 돌보시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자신을 대신하여 그의 양들을 돌볼 목자들을 훈련하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시는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들을 맡기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거듭 당부하십니다 (요한복음 21:15-17). 이스라엘이 왕들의 손에 맡겨진 것처럼, 주님의 교회가 이제 목자들의 손에 맡겨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양들은 그 주인 되신 예수님께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5-7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자들곧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부르심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덩이를 가슴에 안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양을 치는이 두려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양을 섬기는 목자들을 위해 중요한 여러가지 교훈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0:1-10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으로 소개하십니다. 양의 문이란 양들이 모여있는 우리(sheep pen)를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은 양을 돌보는 목자들양의 목숨을 빼앗는 강도들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곧 양의 문으로 출입하는 자가 목자이며, 문이 아닌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이며 강도입니다. 성경에서 (gate)”이 갖고 있는 여러 상징적인 의미들 중 하나는 소유권(dominion)”입니다. 곧 문을 지키는 자는 그 문이 속한 성이나 집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자입니다. 창세기 22:17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그의 오라비 라반이 그녀를 축복하며 말합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예수님께서 그의 양들을 사단의 손에서 탈취하셔서 자신의 우리 (sheep pen) 안에 넣으시고 친히 문이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양들의 주인이 되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말합니다. 양들은 예수님의 소중한 소유입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양을 돌보는 목자는 이 사실을 뼈 속 깊이명심해야 합니다.


양의 문 되신 예수님.png


 

위 그림들 중 왼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십자가)께서 양 우리의 문이 되셔서, 그 앞에 나아오는 목자들을 확인하시고 그들을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십니다. 오른쪽은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목자가 예수님과 양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 되신 예수님과 주님의 복음을 자신의 권한 아래두고, 양들을 돌보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취합니다. 사실은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랬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으로 소개하신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나옵니다. 소경으로 태어나 평생을 어둠 속에 살던 한 불쌍한 남자를 예수님께서 치료하시고 그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그런데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를 부인하도록 강요합니다. 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합니다 (9:22). 이런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마태복음 23:15). 이러한 잘못은 교회 역사를 통해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교회가 그랬고, 또 지금의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양들에게 돈을 받고 예수님의 구원을 팔았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가 헌금 수입과 예배참석자의 머릿수를 헤아려 주보에 게시하고, 양들의 영혼보다 교회의 성장에 더 마음을 들입니다. 이것들은 양들의 주인 되신 목자장 예수님 앞에서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문은 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3:24).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들 곧 불법한 자들에게는 그 문이 닫힐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25-27).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심으로, 주님을 대신하여 양을 돌보는 목자들은 모두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문은 좁은 문이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시험을 받는 문입니다. 이 문은 오직 죽도록 겸손한 자, 온유한 자, 충성된 자, 그리고 거룩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충분히 연단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끝까지 견딜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온전한 자유와 기쁨과 생명과 평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 문을 통해서만 양들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인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수기 12:3). 그런데 그가 단 한번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그들과 싸웠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20).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의 인간적인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양들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를 통해서 예수님 자신의 얼굴 곧 예수님의 영광을 양들에게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양을 섬기는 목자들은 그의 마음과 얼굴이 예수님처럼 온전히 변화되기까지 주님의 십자가로 연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또 목자가 양들을 어떻게 인도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또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압니다. 14,15a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양과 목자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말해줍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고 섬기기 위해서, 그 양을 개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교구 목사인 Richard Baxter는 그의 책 “The Reformed Pastor”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돌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후 그는 각 목회자가 양들을 맡되 자신이 충분히 섬길 수 있을 만큼만 맡으라고 합니다. 양들의 수가 늘어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다른 목회자를 세워서 맡기라고 합니다. 이는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수입이 아니라, “양들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알고 그들 각자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4,5절 말씀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 말씀에 따르면, 목자는 앞서 감으로 양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곧 목자는 본을 보임으로양들을 인도합니다. Baxter 목사는 목회자의 감독(oversight)의 대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하나는 물론 양무리이며, 다른 하나는 목회자 자신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감독의 대상은 바로 목회자 자신입니다. 그는 복음 설교자는 복음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한다(preachers of the gospel must be judged by the gospel)”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양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자는 먼저그 복음의 말씀을 자신에게 설교하고, 이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목회자는 가장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공격이 목자에게 집중되며, 또 양들의 시선이 목자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가 더욱 위험한 것은 목자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양들은 매일 밥을 먹듯이 연약하고, 물을 마시듯이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목자의 한번의 사소한 잘못은 핵폭탄과 같이 강력한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영향은 아무리 많은 좋은 말로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늘 자신을 살펴서 양들이 따를만한 본이 되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keep watch)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주님의 양들이 이 문으로 들어가 구원을 얻으며, 또 이 문을 들며 날며 꼴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시며 더욱 풍성이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0). 주님께서 우리를 교회의 사역자로 부르신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목자로 연단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양들을 인도할만한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엄중한 부르심을 감당할만한 우리 각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