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1
오늘 말씀인 마가복음 1:1절은 마가복음 전체에 대한 짧고 명료한 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복음서 전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소개합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어두운 화면이 밝아지면서 그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여 화면을 채웁니다. 이를 보는 관객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면서 이제 영화의 이야기들이 한 올 한 올 풀려나옵니다. 오늘 말씀 또한 마가복음 전체에 대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하늘이 열리고, 천군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구름 가운데 임하셔서 지축을 흔드는 엄위한 음성으로 세상 가운데 선포하셔야 마땅합니다. 비록 우리 가운데 겸손하고 평화롭게 임하신 말씀이지만, 우리가 경외함과 놀라움과 감격 가운데 이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복음이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바로 “복음의 내용”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공부할 때 항상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심지어 구약의 말씀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5:39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경”이란 유대인들이 공부하는 율법들과 선지자들 곧 구약의 말씀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며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1서 1:1절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며, 히브리서 1:2절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 자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시며, 구원의 복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이 예수님을 심고, 자라게 하며, 살아계신 나의 주님으로 형상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목표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비록 성경 말씀을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1절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이 두 타이틀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할 때 가장 자주 사용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베드로(반석)”라 부르시며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마음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한 질문은 아마도“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일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어떤 젊은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중역들 사이에 앉아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의 아들들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회사의 부사장 직을 맡고 있었으며 얼마 후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실질적인 소유주였습니다. 또한 그를 통해 회사는 현대 그룹의 모든 다른 계열사들 및 협력사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그 회사의 존립 기반이었습니다. 그가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과 회사의 “부사장”이라는 것으로 인해 회사는 많은 이익을 누렸습니다. 제가 회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도 빠짐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회사는 정주영 회장의 아들 OOO이 소유하고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말하자면 회사의 “견실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칭하는 바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는 바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저는 자신을 소개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서 “OOO씨의 아들”이라고 해 본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청첩장과 같은 중요한 문서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대고 이 두 분의 아들 OOO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OOO의 아들”이 바로 저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심으로 자신이 누구신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시고 (마태복음 3:17; 17:5), 여러 귀신들 또한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며 그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마가복음 5:7; 누가복음 8:28).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진리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 그 권세에 놀라거나 또는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며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가리키시며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5). 이 말씀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가지신 “절대적인 권세”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권세에 순복하고 그의 말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앞서 언급한 정주영 회장의 아들은 회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권세는 그보다 직위가 높은 사장의 권세를 훨씬 능가했습니다. 이는 그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외아들”의 권세가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또한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리스도란 예수님의 직분 또는 직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본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어떤 중요한 일을 맡기실 때 그에게 기름을 부으심으로써 그 부르심을 공식화하셨습니다. 기름 부음은 주로 제사장들을 세울 때 행해졌습니다. 출애굽기 40:13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기름 부음을 통해 왕을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심으로 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 직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이며 또한 사람들을 의로 다스리시는 “왕”입니다. 자신의 직분에 대해 예수님께서 친히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위해 하신 일들의 전부를 요약하는 타이틀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 세상의 직분들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것을 통해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은 그런 세상의 타이틀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직분을 오직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심지어 십자가의 고난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참으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제가 다니던 회사의 존립 기반은 그룹 회장의 아들이며 회사의 부사장이던 그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맥락으로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들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시며, 교회의 반석이 되시며, 우리 각자에게 임한 구원과 영생과 행복의 근본이 되십니다. 골로새서 1:16절은 “만물이 예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또 예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생명의 말씀이며 진리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신앙하는 삶이란 다름이 아니고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그리스도가 되시는구나!”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고백하고,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며 결국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하여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베드로(반석)”라 부르시며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된 것은 그가 바위처럼 듬직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발견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께서 그에게 참으로 믿을만한 반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쓴 서신인 베드로전서 2:2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하며, 또 2:3절에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구원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는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해 드러난 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증거들을 잘 듣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우리는 복음서를 단순히 “예수님의 생애를 서술한 전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바 “예수님의 복음”이란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그리고 각 사람에게 새롭게 임하여 영원히 계속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소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시작”이란 말은 구약의 창세기 1:1절에 나오는 “태초”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곧 창세기 1:1절의 “태초”가 세상 만물의 시작이듯이, 마가복음 1:1절의 “시작”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그것은 “빛과 생명” 그리고 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좋은 것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이 복음의 시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누가복음 1:78b-79). 참으로 마음 깊은 곳까지 밝아지고 따뜻해지는 말씀입니다. 해가 돋으면 어둠이 물러가고 또 땅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생명들이 살아납니다. 사가랴는 이 빛이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한다고 노래합니다. 어렵고 문제 많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늘 “새로운 시작”을 원합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굳은 결심을 하기도 하고, 좋은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숙고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로도 이미 굳어진 삶의 방향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세상은 그 전체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깊이 잠겨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소망의 빛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 빛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언제든지, 그리고 어떤 상태에 있든지 이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예수님께서 그의 “새로운 시작”이 되십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시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쇠약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더욱 새로워지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 옆에 같이 못박혀 죽어가는 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긍휼을 구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있으리라” (누가복음 23:42-43). 이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행악자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또그의 상황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생명의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매일은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축복된 일을 시작하셨지만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어둠 가운데 고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예수님께서 누구신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잘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빛으로 내 인생에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