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물 세례와 성령 세례 (마가복음 1:4-13)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1. 8. 2. 00:59

세례와 성령 세례

 

마가복음 1:4-13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나아와 죄를 자복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또한 그의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나아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성령이 그에게 임하심을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세례는 근본적으로 갱생(regeneration, renewal)” 의미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사람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가지 세례가 있습니다. 8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말씀에 따르면 세례 성령 세례 있습니다. 물론 세례 모두 사람이 새롭게 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으뜸인 선수들이 나와서 겨루는 시합들은 흥미진진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아마도 경기에 나온 선수들은 오랜 세월 동안 날을 위해 준비해왔을 것입니다.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기록을 위해서 매일 자신의 몸을 훈련시켰을 것입니다. 선수들에게 가장 기쁨은 자신의 몸이 연단되고 이에 따라 기록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상의 목표를 향하여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모두 금메달 세계 정상을 꿈꿀 것입니다. 종목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것입니다. 우리 관중들은 시상대 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선수를 보고 환호하며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하지만 자리에 서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인내하며 모진 수고를 감내한 선수 자신과 그를 훈련한 코치와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의 감회는 아마도 전혀 다를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웃음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애써 감추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일 것입니다. 이런 운동 선수들의 삶을 마디로 요약하자면 목표를 향한 매일의 갱생이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자주 신자의 삶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race)” 비유합니다. 디모데후서 4:7-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체를 가리켜 선한 싸움 (good fight)” 그리고 달려갈 (race)”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마치 레슬링 선수가 경기를 하듯, 마라톤 선수가 경주를 하듯 매우 치열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경기에는 지켜야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경기를 감독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분은 의로우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경주를 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경기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경주를 끝냈을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앞에서 세례의 의미를 갱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은 아마도 그의 것입니다. 훈련을 감당하고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강한 마음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입니다. 운동 선수에게 있어서 갱생의 대상은 그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 갱생의 대상은 그의 마음입니다. 그의 속사람, 그의 영혼, 또는 사람 자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매일 그의 몸을 단련하듯이, 신자는 매일 그의 사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6b-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사람은 후패하나 (perish)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여기서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을 가리키겠지만 보다 넓게는 우리가 세상에서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포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후패하도록 버려두시면서까지 우리의 사람 시험하시고 연단하십니다. 우리는 지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인도하셨는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인용했던 신명기 8:2 말씀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 동안 너희로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음이 어떠한지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관심이 무엇인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갱생 우리가 새롭게 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우리의 마음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심히 부패하였으며 그것을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말씀은 사람의 마음과 관련하여 가지 슬픈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나는 그것이 매우 거짓되고 부패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그것이 심하게 거짓되고 부패하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싸워오신 가지 문제는 바로 사람들의 부패하고 완악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더러운 마음 모든 문제의 근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18-20a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입에는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사람들의 부패하고 악한 마음은 심지어 전능하신 하나님 조차도 다루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사야 48:4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목의 힘줄은 무쇠요 이마는 놋이라.” 하나님께서는 세계 최강의 애굽 군대를 상한 갈대 지팡이 하시고 (이사야 36:6), 영광이 하늘을 찌르던 바벨론을 온전한 황무지 낮추십니다 (예레미야 50:13).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마저도 사람들의 완악한 마음에는 발을 드시고 혀를 내두르십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사람 마음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다른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우리 마음을 보시며, 하나님의 눈은 우리 깊은 곳의 진심을 꿰뚫어보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2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heart) 감찰하시느니라.” 예레미야 17:10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에 속으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환한 불빛 아래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의 심장과 폐부, 우리 깊은 마음의 생각이 바로 우리의 행위이며 행실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생각하면,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데, 우리 마음은 세상 무엇보다도 부패하고 악합니다. 그리고 부패하고 악함이 무쇠와 같이 완고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자신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제와 관련하여 세례 이해할 있습니다. “세례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4절에서는 세례를 가리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죄를 자복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복한다 것은 함께 선언하다,” “OO 동의한다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걸음은 다름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이 악하고 부패하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과거에 죄의 욕심 인생의 목표이며 자랑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들도 쉽게 해치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을 인정하며,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며,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의 욕심 버릴 많은 것을 잃어버릴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의 욕심 버리는 것은 결코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거운 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운동 선수가 불필요한 살을 빼고 간편한 옷차림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합니다. 그는 그의 경주를 위해 최소한 필요한 것들만 소유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마음 속은 죄의 욕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있습니다. 커다란 방에 쓰지도 않을 온갖 물건들을 빼곡하게 쌓아 놓아서 누울 자리조차 없을 만큼 비좁고 숨이 막힙니다. 이것이 죄와 욕심으로 병든 우리 마음의 실상입니다. “ 세례 마음 속에 찌든 때를 드러내고 씻어 없애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를 얻는 축복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는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갖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2:10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올림픽 경기를 준비하는 운동선수들에게 완벽한 모델 있어서 그의 지도를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지도자를 마음 속에 그리며, 그로부터 날마다 배운다면 결국 완벽한 모델에 이르는 날이 것입니다. 잘못된 점들을 발견하여 고칠 있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힘들 용기와 격려가 되며, 외로울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11 말씀입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독생자 되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되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예수님은 완전하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을 찾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에 우리의 모델이 되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시며, 우리의 동반자가 되십니다. 하지만 일은 오직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눈을 가졌을 때만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모델이기는 커녕 반대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싫어하고 멀리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주님의 길을 따르기를 심히 주저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과 눈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없는 보배 보이도록 이를 바꾸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모하고, 배우고, 따르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의 길을 끝까지 따르는 일은 오직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든 경주를 마치고 끝에 받게 되는 상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의의 면류관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맞으시면서 하였다 하시며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마친 주자를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올림픽 시합에서 금메달을 선수라면 아마도 최소한 종목에 대해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의 면류관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최종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상입니다. 우리가 받는 상은 바로 새롭게 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와 성령 세례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람이 새로워지는 갱생의 삶을 통해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