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1:9-1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1. 8. 9. 00:41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

 

마가복음 1:9-1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일종의 취임식이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이 왕이나 대통령과 같이 중요한 직책을 시작할 그에 걸맞는 즉위식 또는 취임식을 거행합니다. 이런 행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직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력 부여하고, 사람이 권력을 선하고 정의롭게 것을 맹세하는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우고, 그에게 통치권을 부여하고, 왕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왕이 부여된 권력을 악하고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선하고 정의롭게 쓰기를 간절하게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왕들은 오직 높은 지위와 권력만을 탐하며, 그것을 옳게 사용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왕들 아래서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사실 이것은 높은 자리에 있는 왕이나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책무를 지고 있으며, 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심지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그의 아버지 이새의 여덟 아들 말째였습니다. 막내인 그에게 맡겨진 일은 들에서 양을 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들판에 혼자 남아 말도 통하지 않는 짐승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의 일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으며,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천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불평할 있습니다. 그는 좀더 나는 일을 원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귀찮아하고 소홀히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들의 선한 목자 그들의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과 마음을 들여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사무엘상 17:34-35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수염을 잡고 그것을 죽였었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나은 위해서는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양처럼 순하게 순종하며 들에 나가 아버지의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양떼가 위험에 처할 때면 돌변하여 사자나 곰을 죽이는 사나운 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백성의 목자로 높이셨습니다. 누가복음 19:17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메시아 그리스도 왕으로서의 직무를 시작하시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왕이 되시는가를 유추해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각자의 삶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우리 각자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능력과 재능을 사용하여, 선한 일들을 수행하는 사역자(minister)” 또는 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믿는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 다음 성령께서 위에 임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가리켜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시며 그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나가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사람들에 전하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과정은 세상의 왕들이나 대통령들이 권세를 잡는 과정과는 사뭇 다릅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사람들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의 취임식에서 주인공은 높은 자리에 앉아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예수님의 취임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 대신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천사들이 수종을 들며, 들짐승들이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야 취임식은 참으로 우주적이며 영적입니다. 우리는 사건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지난 설교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세례란 갱생(renewal)” 의미합니다. 죄인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세례는 우리 죄인들이 받는 세례와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위해 오시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말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터인데 당신이 내게 오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마태복음 3:13-15).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시는 세례를 가리켜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심으로 아들을 화목 제물로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9:3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으실 십자가 고난을 가리켜 내가 받는 세례라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10:38). 예수님께 있어서 세례란 헌신입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의 물과 피를 쏟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받는 세례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헌신하시고,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헌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위해 아무 것도 아끼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부으셨습니다. 정말 물을 붓듯이 자신의 몸과 물과 피와 생명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쏟아붓는 헌신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내려오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신 자들에게 주시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서 다윗을 찾아가 기름을 부음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했을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6:14).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일을 맡기시면서 주신 유일한 능력 또한 성령님이십니다. 그들은 모두 가난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시골의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최소한 신학교 졸업증서와 소정의 생활비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은 달랑성령님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남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하실 일에 관하여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4:18-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오직 성령의 능력 통해서만 있습니다. 우리는 목회자가 교회 일을 때만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래 전체를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도록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서 회복된 우리의 새로운 삶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예수님께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비둘기 평화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그리고 성령과의 평화에서 비롯된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하며 (데살로니가전서 5:19),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합니다 (에베소서 4:30). 오직 성령님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성령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신 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구신가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사시는가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대통령은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을 국민의 봉사자라고 생각하며 그가 사람들이 기뻐하는 일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정치적 이해를 좇아서 정치인들은 자주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말도 바꾸고, 정책도 바꿉니다. 이들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처가 없이 떠도는 바람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반석 같은 정처 되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아버지 앞에서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은 너무나 확고하고 분명해서 심지어 주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버림을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5:39). “너는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 각자의 영혼 속에 새겨놓은 일종의 천국 신분증(ID)”이라고 있습니다. 신분증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서 항상 유효하며, 따라서 효력은 우주적이며 영원합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영광스럽고 의미 있는 신분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자녀로서 자신을 보며,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살아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요동치는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안정되고 평안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끝까지 마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내시고, 예수님은 그곳에서40일을 계시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일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들의 본질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그리스도로서 하실 일들의 본질은 영적 전쟁이며, 전쟁에서의 적은 사단 마귀입니다. 사단은 속이는 이며 미혹하는 입니다. 요한1 5:19절에 따르면 세상이 악한 안에 처해있으며, 요한계시록 3:10절은 장차 세상에 시험의 때가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한다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사단의 거짓을 깨닫게 하시고, 죄의 으로부터 우리를 깨우셔서 하나님의 진리의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는 일을 간단히 말하면 어둠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둠이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시험 아래 있는 세상은 온갖 반짝이는 좋은 것들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두가 들떠서 좇아 달려갑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세계, 영적 세계는 어둠입니다. 실상은 빛과 생명으로 가득한 그곳이지만, 사람들은 빛을 보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의 눈이 세상의 거짓된 빛에 속아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들짐승과 함께 계셨으며 천사들이 나아와 예수님을 수종들었습니다. 이것은 천국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시고 사단 마귀를 물리치셨을 , “광야라도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해하는 것도 상하는 것도 없으며, 하나님의 극진한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평안과 기쁨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멸시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그들과 싸우시는 대신 사단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손아귀에서 빼앗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우리 각자가 싸워야 싸움인 것입니다.

 

광야 시험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고향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가셔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복음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사역은 거의 대부분 전도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모을 있는 놀라운 능력들을 갖고 계셨습니다.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다섯 조각의 빵과 마리 물고기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이런 일들을 하셨다면 아마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몰래 하시거나 아주 잠깐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정말 원하셨던 것은 그들이 귀를 기울여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를 마음에 두고 생각하고 이해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주위에는 듣는 자들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에 따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매우 절박한 상황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자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어떤 자들은 이를 믿지 않음으로 여전히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급하게 다가오는 영생과 영벌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우리가 해야 일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이를 믿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전도 가르침 사용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일은 능력이 부족한 우리도 쉽게 있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과 우리에게 급히 임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로 인한 절박함입니다. 우리는 입에 전도의 말을 물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잽싸게 내뱉어야 합니다. 항상 전도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어떻게 시작하셨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서 기쁘신 뜻에 순종하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자신을 쏟아 헌신하셨습니다. 일을 위해서 성령으로 무장하시고, 악한 영들과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낮아지셔서 전도와 가르침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 또한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세우신 왕들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이 있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라 살아야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훗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우리 각자의 삶에 은혜의 복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