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영적인 사람 (I) (마가복음 9:38-4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2. 10. 10. 14:11

영적인 사람 (I)

 마가복음 9:38-41

기독교인들은 영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특히 사람을 가리켜 “OO 영적인 사람이다또는 “OO 영적이지 못하다라고 합니다. “사람이 영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어떤 사람이 영적인가 보여주는 가장 일차적인 척도는 하나님(예수님) 말씀에 대한 사람의 태도와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을 말씀의 뜻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으며,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증거하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이해력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듣고 깨닫는 것이 없다면, 믿고 순종하는 것도 있을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8:15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셨습니다. 이를 들은 제자들은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하며 서로 수근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지 못하느냐 ……” 예수님께서 말로 제자들을 책망하심은 그들의 영적이지 못한 이해력 깊이 염려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신 말씀을 가리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 6:63). 말씀인즉, 영적인 이해가 없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고린도전서 2:13-14절에서 점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직 영적인 사람만이 듣고 이해하고, 배우며, 따를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어떤 사람은 영적(spiritual)이며, 어떤 사람은 육적(flesh)일까요? 이는 가치관(value)”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사람이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치관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입니다.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모일 모임은 활력이 있습니다. 이는 모임의 방향과 목표 확실하고, 이런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 동호회, 등산이나 낚시 같은 레저 동호회는 그들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가 있습니다. 축구,” “야구,” “등산,” “낚시 그것입니다. 그리고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며, 이와 함께 여러 다른 부수적인 가치들 누립니다. 신체와 마음의 건강,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제 같은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역시 입니다. 그리고 건강과 아름다움입니다. 거기다 가지를 더한다면 즐거움 (쾌락, fun)”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의가 이런 가치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돈과 건강() 즐거움은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들입니다. 우리는 굳이 이것들이 가치있는 것인지, 이것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은 거의 DNA 같은 본능입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심지어 꿈속에서도 이런 가치들을 생각하고 찾으며, 이것들에 살아서 반응하며, 이것들로 인해 울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의 가치들에 대한 욕구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깊은 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입니다. “자기 사랑 (self-love)”입니다. “자기의 (self-righteousness)”입니다. “자기 영광(self-glory)”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매우 다르십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것들과 정반대가 되는 쪽에 계십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은 가난하셨으며,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은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셨으며 (이사야 53:2), 멸시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영적 가치 근본적으로 세상의 육적 가치들 뒤섞일 없이 전혀 이질적입니다. 만일 가치들이 함께 한다면 이것은 마치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매일 산으로 것인지 바다로 것인지를 놓고 논쟁을 하다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뿌리는 자의 비유 가르치셨습니다. 비유에는 가지 종류의 밭들이 나오는데 그것들 하나로 가시 떨기가 함께 자라는 있습니다. “(뿌린 씨가)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 (8:7).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8:14).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가치와 육적인 가치의 갈등또는 충돌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에 여러 생활의 염려, 돈에 대한 욕심, 즐거움(fun) 대한 욕구가 왕성할 , 이것들이 마치 무성히 자란 가시덤불과 엉겅퀴처럼 씨를 가로막고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이며 예수님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오직 예수님과 분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 삼으며, 오직 가치에만 헌신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영적인 사람 모습을 설명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영적인 사람들이며 가장 천국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라는 말을 자주 쓰십니다. 이는 다른 모든 육적인 조건들 배제하시고, 오직 이런 사람이어야만영적인 사람이며, 저런 사람이라면 결코 영적인 사람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 하나인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허락도 받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같습니다. 제자들은 그가 우리중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리 말씀하셨습니다. “금하지 말라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을 우리를 위하는 인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능을 알고 믿었으며, 권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인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 의지하여 능력으로 삽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사람의 능력의 유일한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능력의 원천은 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돈이 돈을 번다 합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에게 돈을 있는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수단 되며 동시에 목적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부자가 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수단 되시며 우리의 목적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 아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있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3:6절에 베드로가 성전 앞에 앉아 구걸을 하는 앉은뱅이 걸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여기서 베드로는 내게 있는 그에게 준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갖고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은 능력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모르고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영적인 사람 없습니다. 이는 부자”라고 하면서 돈이 푼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20).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능력 세상의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참고 비방을 당한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10-13). 그렇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들을 잃고 얻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름 안에 있는 권능입니다. 그는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죄사함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예수님을 가진, 그리고 오직 능력을 의지한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 이름으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1). 한글 번역에는 빠져 있지만 원문과 다른 번역들에는 인용문에서와 같이 이름으로 (in My Name)”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사람 다른 면을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영적인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 관련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말씀은 어떤 사람이 영적인 사람인지에 대해서 예수님의 이름의 영광 관련하여 생각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07개의 질문-대답으로 구성된 문답서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교리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요리문답의 첫번째 질문과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말씀을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우리 존재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삶이며 따라서 이것이 최고의 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가치관은 이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대신 넣으면 됩니다. 나를 영화롭게 하며 나를 즐거워하는 세상 사람들의 선이며 행복이며 영광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작은 선행 베풉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베푸는 선행의 동기와 목적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동기는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입니다. 그리고 목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 그릇 주는 아주 하찮은 친절이라도 그것이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이를 받으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며, 주님의 상주심을 바라는 자입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도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6:1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사람들의 예로, 구제할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부는 , 기도할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 금식할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는 등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에 대해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하십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했으며, 하나님의 상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의 칭찬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거울이라도 햇볕을 반사하면, 거울이 비추는 빛이 햇볕과 일반입니다. 손바닥만큼 작은 거울도 하늘의 태양과 같은 빛을 비출 있는 것입니다. 삶의 동기와 목적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햇볕을 반사하는 작은 거울과 같습니다. 그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에 대한 감사로 충만합니다.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보면 빚진 자의 마음이 되어 주님을 섬기듯 그를 섬깁니다. 그리고는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자기 영광으로 교만해지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은혜로 살며,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을 싸우 자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이름의 영광 위해서 선을 행하 자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기에 그는 연약하고, 비천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사단 마귀를 이기는 자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예수님 하나님 자신의 형상 봅니다. 그래서 그를 아들로 딸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영적인 사람의 유일한 가치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능력이 되시며, 삶의 동기와 목적이 되시며, 그의 즐거움이 되십니다. 우리 각자가 영적인 사람으로 자라기를, 그리고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