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종의 집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7:1-29)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2. 10. 31. 21:17

종의 집을 축복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7:1-29

 

오늘 말씀의 주제는 (house)”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는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집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을 가리키지만 크게는 집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이 소유하고 누리는 재산, 권력, 영광 등을 함께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의 이란 나와 가족과 유무형의 소유물들을 모두 포괄하는 라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심은 거의 항상 사람과 함께 그의 집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의 집을 축복하심으로 세상을 축복하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하나님 또한 그를 섬기시는 종이 되어 그의 집을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다른 점들 중의 하나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신을 높은 자리에 앉히고 사람들이 신을 섬깁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을 섬기시고 그의 백성을 섬기십니다. 종의 집을 축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며 소망입니다. 일을 위해 없이 밤낮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일을 끝내 이루십니다.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안식이며 평화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집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집을 건축하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면서 들판의 동굴이나 이방인의 마을들을 전전하며 노숙자처럼 매우 불안하고 위태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죽고 그를 이어 왕이 그의 아들 이스보셋마저 죽임을 당하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모여 다윗을 통일 왕국의 왕으로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자 다윗은 더욱 강성해져 갔습니다. 이에 두로 지방을 다스리는 히람이 백향목과 목수들과 석수들을 보내어 다윗을 위해 왕궁을 지었습니다 (사무엘하 5:11). 백향목 궁에서 평안한 날을 즐기던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휘장 텐트 안에 있었습니다. 텐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6). 이때부터 다윗의 때까지를 계산하면 휘장은 족히 400년이 넘는 매우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아주 지은 건물이라도 400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천과 가죽을 엮어 만든 천막은 어떠하겠습니까? 헤아릴 없이 여러 접기와 펴기를 반복하고 광야의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면서 천막은 남루할 대로 남루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누워있는 천막은 다윗이 누워있는 백향목 궁에 비해 너무나 누추했습니다. 다윗이 이를 보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왕은 선지자 나단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나단은 왕의 생각을 좋게 여기고 그의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집을 건축하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짓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하십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리라하십니다. 27절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그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집과 다윗이 생각하는 집은 전혀 다른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윗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며 이상 내부의 적이 없었습니다. 주변의 나라들도 다윗을 위해 왕궁을 지어줄 만큼 평화적이었습니다. 그는 요새 같은 다윗성 안에  세워진 화려한 궁궐에서 충성스러운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의 집은 매우 견고하고 안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윗의 집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해 훨씬 크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집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그런 집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며 소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섬기시며 집을 세우시고 이루시기 위해 일하십니다.

 

6-7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말씀에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관심 언급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후로 날까지 그들과 함께 행하시며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시는 목적도 하나입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십니다.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시고, 그들과 함께 유숙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집에 거하지 않으시고 장막에 거하십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양떼들에 대해 갖고 계신 소망이 무엇일까요? 10 말씀입니다. “내가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서 갖고 계신 소망은 그들에게 자기 (home of their own)”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입니다. 집은 자기 집이며, 옮길 필요가 없는 영원한 집이며, 악한 원수가 위협하지 못하는 안전한 집입니다. 때가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양들과 함께 천막에 거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양들을 위한 집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서서 하나님 대신 그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목자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왕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없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위해서 방황하는 양들을 인도하고 먹이고 보호하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양들과 함께 움직이고,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윗이 자신의 백향목 궁을 본떠 하나님께서 거할 집을 지을 것이 아니라, 궁에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백성들 가운데 거해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축복하시고 그를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그의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그의 위를 대대에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시편 89:4).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그는 이스라엘을 나라, 백성이라고 부르며, 그들 위에 군림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들은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8) 다윗은 왕이 후에도 여호와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집에 대해 매우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집이 받은 축복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겸손한 다윗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다윗의 생각은 매우 다릅니다. 23a절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땅의 어느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다윗의 눈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매우 특별하고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특별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가셔서 그들을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위해 세상의 강한 나라들과 신들에게 크고 두려운 일들을 행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름을 높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눈으로 보기에 하나님과 백성 이스라엘은 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며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다윗은 영광스러운 집을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비록 으로 세움을 입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궁으로 들어와 그의 자녀들을 섬기라는 부르심으로 영접했습니다. 사무엘하 5:12 말씀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 그렇습니다. “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은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그는 비록 백향목 궁에 살더라도 이스라엘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400년도 남루한 휘막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양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양들이 안식할 곳에 정착할 때까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 가우디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ilia) 건축 중에 있습니다. 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 타워(Jesus Christ Tower)라는 높은 탑이 있는데, 사람들이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바르셀로나 도시를 내려다볼 있다고 합니다. 건축 책임자는 인터뷰에서 탑에 관해서 말하기를 탑은 바르셀로나 시의 모든 건축물들 가장 높으며하나님께 가까워지는 것이어떤 것일까를 느껴보고자 탑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아마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으로 생각했던 같습니다. 우리들 대부분도 아마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 구유에 누이시고 (누가복음 2:7), 머리 없는 삶을 사시다가 (마태복음 8:20),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마가복음 15:24).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우신 아들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삶을 사셨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잃고 방황하는 하나님의 양들을 향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다니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렇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양들을 섬기며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9-11).

 

다윗의 삶은 그가 왕궁에 거하기 전과 이후가 매우 다릅니다. 왕궁에 거하기 전에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빛과 능력 안에서 밝고, 지혜롭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왕궁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직접 묻고 응답 받는 일을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여러 범하였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여러가지 불행한 가정 문제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왕궁에 거하고 있었지만, 대신 어두운 그늘이 그의 삶을 덮었습니다. 왕이면서 동시에 종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같습니다. 그나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며 백성들의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달리 다윗 이후 그의 집과 그의 나라는 쇠락하고, 결국 다윗 왕가도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세우신 왕이 되십니다. 그의 위와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목자 되십니다. 왕이시지만 양들을 섬기시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십니다. 왕이시지만 종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으시는 집의 모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를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우십니다 (베드로전서 2:5). 집은 하나님께서 그의 양들을 위해 지으시는 집입니다. 집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상 방황하지 않고 영원히 거할 집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며, 주님의 영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의 왕국이며 나와 가족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집은 하나님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양들을 위한 곳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집을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집을 축복하심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양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실을 잊고 나만을 위해 산다면 우리가 왕궁에 거하더라도 그곳은 그늘지고 외롭고 서글픈 공간 불과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 그의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산다면, 비록 천막에 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왕의 위엄을 가진 자로 발견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주님과 그의 양들 사이에 세우셨습니다. 베드로가 위치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과거의 비참한 삶으로 돌아가는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양무리들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섬기는 주의 종으로 축복을 받는 길을 찾게 것입니다. 이것은 종이 됨으로써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해짐으로써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광스러운 집을 세우는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양무리를 떠나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며,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주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우리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