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0:35-4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1. 30. 11:10

섬기러 오신 예수님

 

마가복음 10:35-45

 

현재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2000년도에 전임 대통령인 옐친(Yeltsin) 이어 러시아의 2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정치 신인이었던 푸틴이 갑작스럽게 부상하여 대통령까지 되자, TIME 기자가 과거 소련 연방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Gorbachev)에게 푸틴이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푸틴이 얼마나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는가는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제도화한 (Institutionalized) 것들 중에서 그가 임기를 마친 후에도 계속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있습니다. 말이 제게 참으로 지혜롭게 들렸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통령은 권력자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이용하여 많은 부조리(不條理) 도리나 이치에 어긋나는 일들을 행하며 그런 제도들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부조리들을 업적으로 미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놓은 어리석은 제도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없애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불쾌한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가 재임 중에 누렸던 권력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더라도 그는 실패한 대통령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다스림이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했으며, 아무도 그가 통치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그가 재위하는 동안 백성들을 위해서 한글을 발명했습니다. 언젠가 성탄절에 여러 교회들이 모여서 출신 나라에서 어떻게 성탄을 축하하는지, 나라의 성탄절 전통에 관해서 나누는 프로그램을 가졌었습니다. 한국의 성탄절에 대한 발표를 제가 맡아서 준비했는데, 제가 준비한 내용은 성탄절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어떻게 한국이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사람들 가운데 널리 퍼지고, 사람의 영혼 속에 구원으로 임하는 것이야말로 성탄의 참된 의미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언급한 성경 말씀이 한국에서 널리 읽히도록 기여한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선교사들의 순교자적 헌신,” 하나는 한국인들의 겸손한 배움,” 그리고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나라를 연구하면서, 작은 나라에 고유의 문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급히 성경의 복음서들을

글로 번역하여 작은 책자들을 만들고 이것들을 무역상들을 통해 한국에 반입시켰다고 합니다. 이를 쪽복음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복음은 오직 한자를 아는 소수의 지식인들에게만 전해질 있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쓰는 말이 중국 글자와 전혀 달라서 심하게 불편한 것을 보시고, 백성들을 위해 문제 해결하시고자 새로운 글자를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일부 권력자들은 중국의 문자를 버리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오랑캐나 이라고 하며 이를 심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불편함을 마음 아파하시고 한글을 창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한글로 한국은 기독교 부흥을 이루었으며, 요즈음은 한글이 컴퓨터 시대에 맞는 가장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참된 지도자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친히 본을 보이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와서 간청하기를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하였습니다.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 분히 여겼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크냐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고 경쟁했습니다 (마가복음 9:34, 누가복음 22:24).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어떤 자가 참으로 자인지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42 말씀입니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 이방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방인이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입니다. 위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왕으로 군림하면서 아랫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립니다. “권력(power)” 사전적으로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대로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이 하도록 시킬 있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최소한 마음대로 있는 능력 관해서는 어느 정도 권력자라고 있습니다. 나아가 높은 지위의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 권력을 갖게 되면서 아래 임의로 부릴 있는 종들 두게 됩니다. 부하가 명인지, 직원이 명인지, 교인이 명인지는 중요한 성공의 척도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하십니다.

 

예언서들 하나인 다니엘서의 7장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다니엘에게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이상으로 보여주십니다. 다니엘이 밤에 이상에는 마리의 짐승들이 나오는데 첫째는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요, 둘째는 곰이요, 셋째는 개의 날개와 머리를 가진 표범이며, 마지막은 크고 강한 이빨과 개의 뿔을 가진 짐승입니다. 다니엘 7:17절에는 짐승은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 라고 합니다. 짐승들은 모두 세상의 역사 속에 흥하고 쇠하는 권세들(powers)” 가리킵니다. 이들은 각각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넓은 땅을 정복하고 호령했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제국들이며 영웅들입니다. 나름대로 자랑스런 문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권세들은 근본적으로 짐승입니다. 이들은 모두 무섭고, 사나우며, 파괴적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서 서로 싸우고, 먹고 먹히며, 흥하고 쇠합니다. 이것은 다니엘서가 쓰여진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들간, 기업들간, 개인들 사이에 높아지기 위한,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과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를 위해 전쟁도 불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짐승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그냥 인간 세상 아니라 사나운 짐승들이 들끓는 정글입니다. “누가 크냐?” 놓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짐승처럼싸우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9:34절에도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누가 크냐?” 문제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모으시고 친절하게 타이르셨습니다.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사람의 끝이 되며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마가복음 9:35). 하지만 귀에 경읽기였습니다. 이는 아직도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들의 마음이 동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서서평(본명은 Eliz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이라는 분이 있는데, 미국 남장로교에서 한국에 파송한 간호 선교사입니다. 분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간호사로, 전도자로, 교육자로, 빈민과 고아들과 문둥병자들의 어머니로 헌신했다고 합니다. 분이 세상에 남긴 재산은 동전 닙과 담요 그리고 약간의 옥수수 가루였습니다. 분의 장례식에 참석한 1천여 명의 사람들이 통곡하며 우는 소리가 비행기 소리와 같았다고 합니다. 분의 침대 머리맡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아마도 분이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았던 신조였던 같습니다. 간호사이며 선교사로서 섬김(service)”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Service Is Success!” 정도일 것입니다. “나는 간호사이며 선교사이니 많은 섬김을 통해 성공할 것이야!” 하며 다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의 마음 속에는 성공이라는 목표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그냥 섬김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분은 유명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진짜 돈도 명예도 없이섬기는 일에 자신을 완전히 쏟아붓고 묻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오해해서 섬김 자가 되는 길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자가 되기 위해서 섬겨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냥 끝까지 남을 섬기고, 끝까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자가 되며 비로소 으뜸이 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말입니다. 살아서는 성공,” “ ,” “으뜸이런 말들은 꿈도 꾸지 말고 입에 담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섬기지 말고, 섬김 자체를 성공으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자가 되기 위해서 섬기지 말고 섬기는 자를 자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으뜸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을 그냥 그것을 으뜸이 것으로 여기고 계속 그렇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말씀의 본을 보이신 이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45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는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 (Son of Man)”라고 부르십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가장 공통적인 의견은 예수님께서 사람(true man)” 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 선지자 다니엘이 이상 중에 세상의 권세들이 모두 짐승 형상을 것과 대조가 되는 이름입니다. 나아가 사람 예수님은 사람 아담과 대조가 됩니다. 세상에는 크게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인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입니다. 하나는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5:17-19 말씀입니다. “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같이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같이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사람은 불순종한 죄인이며 다른 사람은 순종한 의인입니다. 불순종한 죄인에게는 사망 왕노릇을 합니다. 하지만 순종한 의인은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합니다.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불순종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 되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죽음의 노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사람은 그것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며, 의인이 되며, 생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 사람 되신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님을 따르는 우리를 왕노릇 하게 하시며, 의롭게 하시며, 생명을 주십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권세(authority)” 이렇게 정의합니다. “권세란 왕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명분(cause) 위해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의향이 있는 견고하고 의식적인 결단이다 (Authority does not mean to be a king but by a firm and conscious resolution to be willing to sacrifice everything, one’s very life, for a cause).” 세종대왕은 글자가 없어 불편을 겪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한글을 창제하셨습니다. 그의 명분(cause) 백성입니다. 그의 권세는 그의 왕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권세는 백성들의 불편을 어떻게든 해결해주어야 하겠다는 그의 결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많은 신하들이 왕을 가로막았지만, 심지어 일로 왕을 오랑캐취급을 했지만 그가 하는 일을 막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명분 백성들의 행복이 자신의 왕위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백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명분은 많은 사람입니다. 명분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요한복음 10:10b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말씀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주님의 헌신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헌신입니다. 예수님의 헌신과 권세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깊이 이해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지도자이시며 왕이시지만 권세는 오직 양들을 위해, 그들의 생명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주님의 선하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오직 양들을 향한 주님의 선하심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떤 다른 권력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따르던 제자들이 흩어지고 홀로 남으셨어도,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게 마당에도 권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명분에만 충실하셨습니다. 끝까지 양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여 사람들의 언어적 불편 영구히 해소하셨습니다. 이젠 보통 사람들도 한글을 이용해서 진리와 지식을 배우고 나눌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문제 영원히 해소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11-12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0: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드리신 제물은 없는 자신의 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드려 하나님께 올린 제사는 영원한 속죄 이루는 온전한 제사이며, 우리를 거룩함으로 덮어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의 가치를 달리 표현할 없습니다. 그것은 나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만드신 (Recreate)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의 되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섬기심에서 제외된 영혼은 세상에 명도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실 홀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영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섬기심도 그랬습니다. 아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홀로종이 되셔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섬기신 것입니다. 죽으실 때까지 그랬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홀로 외롭게 일을 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 말의 참된 의미입니다.

 

이사야 53:11절에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영원히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생명을 드려 수고한 열매들을 보시면서 만족해 하십니다. 참으로 영광은 지극히 높고 아름답고 영원합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 죽음 너머에 있습니다. 오직 그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열매를 헤아리게 것입니다. 푸틴처럼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며 세상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권세자라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가 종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섬긴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낮은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 각자가 세상에서 섬기는 자로 삼아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낮은 자로 멸시 받고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며 묵묵히 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며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섬김이 행복이고 성공이고 삶의 의미인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