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진리의 파도를 타는 삶을 산 요셉 (창세기 37:2-36)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9. 13. 11:19

진리의 파도를 타는 삶을 요셉

 

창세기 37:2-36

 

오늘 설교의 제목은 진리의 파도를 타는 삶을 요셉입니다. 진실된 크리스천의 삶은 높고 깊은 파도를 타는 것으로 비유될 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에서 거대한 파도를 타는 서퍼(surfer) 이미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지만, 우리가 타는 것은 파도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혹자는 믿는 자의 삶이 심심하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실상 우리 인생의 여정은 마치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깊이 가라앉고 다시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는 서핑과 같이, 다소의 위험을 동반한 흥분의 연속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심심한 크리스천의 삶을 놀라우며 때로는 긴장감이 감도는 모험으로 바꿀 있을까요? 답은 바로 진리의 파도를 타는 입니다. 진리의 파도는 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이 어떻게 믿는 자의 삶을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바꿀 있을까요? 저는 창세기 37장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야기를 요셉으로부터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 요셉을 소개합니다.

 

(요셉의 1인칭 나레이션)

 

안녕하세요! 이름은 요셉입니다. 나의 공식 직업은 목자입니다. 나는 아버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며, 아버지의 아내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여자였던 어머니 라헬로부터 얻은 첫째 아들입니다. 내게는 명의 형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두둑한 배짱을 가진 진짜 사나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예쁘장한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나를 위해 알록달록한 채색옷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직 내게만요! 형들이 간편한 목자 옷을 입고 곁에 칼을 차고 씩씩하게 걸을 , 채색옷을 입은 나는 짧은 걸음으로 바쁘게 그들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거리에서도 쉽게 나를 구분할 있었죠. 나는 가끔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채색옷을 벗지 않았어요. 그것이 내게 대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의 징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를 사랑했으며, 나는 그의 사랑을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의 사랑의 선물인 채색옷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죠.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사치 때로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항상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아주 거리를 여행할 때도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내가 상남자들인 형들과 어울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자주 늦게 나가 이웃 마을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하려고 예쁜 채색옷을 입었죠.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과 동행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린 녀석이! 안돼, 이것은 어른들 일이야. 집에 가서 아빠에게 옛날 얘기나 해달라고 하렴!” 그렇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겨졌습니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그의 장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묻기도 전에 그는 입을 열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많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들을 대부분 기억합니다. 그가 그의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것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가로챈 것과, 베델에서 밤에 꿈을 꾸는 이상을 보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과,  우물가에서 그의 가장 사랑하는 여자 어머니 라헬을 만난 것과, 축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한 ……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께서 꿈에도 나타나실까요?” “아빠, 나도 우물가에서 예쁜 소녀를 만나게 될까요?” 그러면 아버지는 나를 그의 품에 끌어안고,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을 깊이 응시했습니다. 그가 나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 나는 문득 그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그는 안에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야곱 자신이거나, 아니면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의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의 깊은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없었지만, 최소한 내가 그의 생명의 일부라는 사실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와 같이 내가 아버지의 장막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꿈은 매우 특이했습니다. 속에서, 형제들과 나는 곡식 단을 묶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주위에 둘러서서 단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나는 심지어 곡식 낱알을 하나 하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상한 것은 양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우리 가족은 번도 농사를 짓거나 들에서 단을 묶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속의 광경은 내가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땅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꿈을 형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내가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고 것이 아닌데, 어쨌든 그들은 이야기를 듣고 분을 내며 나를 미워했습니다. 여러 , 나는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들이 내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더욱더 분개하며 나를 전보다 미워했습니다.

 

나는 꿈들이 매우 기이하다는 것과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형들이 꿈들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할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이전에 나를 어린 취급하며 말을 무시했던 것처럼 꿈들도 그렇게 무시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꿈이 훗날 실제로 일어날 것으로 믿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후에 이에 대해 형들 하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내게 말하기를 형들이 이야기를 들었을 모두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왜요?”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항상 진실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말을 듣자, 나는 그들이 나를 그렇게 따돌렸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나는 그들을 사랑했으며,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피했으며, 내가 가까이 가면 대화를 멈추고 내가 떠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형들의 이런 태도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동생 벤자민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했으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해야 일들이 많았습니다. 형들은 나를 꾸는 라고 불렀지만, 나는 꾸는 자이기보다는 부지런한 일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무엇인가를 하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그것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던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사실 내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원은 너무 것이어서 내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왕국인 애굽을 여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왕국에 대해서 많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광대한 , 바다 같이 넓은 , 거대한 건축물들, 나라들로부터 실려오는 온갖 종류의 진기한 산물들과 상품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엄한 궁성에 산다는 애굽 바로 정말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 이곳을 여행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하지만 이것은 내게 불가능한 소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거리를 여행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형들이 양떼를 몰고 다른 지방으로 때도, 아버지는 나를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소원을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마음으로 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 아버지 야곱이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요셉아, 세겜으로 가서 형들과 양떼들이 있는지를 보고 오너라!” 나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어요 아버지?” 그러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너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세겜으로 보내는 것이 내키지 않는구나!” 세겜 ! 가족은 마을과 관련하여 아주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10 , 가족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 우리는 마을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지역의 추장인 세겜이 누이 디나를 강간하여 욕을 보였습니다. 이에 몹시 분노한 형들은 거짓 언약으로 마을의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가 마을의 모든 남자들을 칼로 죽이고 형들이 들어가 마을을 약탈했습니다. 자기의 아들들이 그곳에서 일들로 인해 놀란 아버지 야곱은 그곳을 떠나서 베델로 갔다가 다시 우리의 현재 거처인 헤브론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아버지는 형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아시다시피 그들은 모두 용사들이잖아요. 그리고 내가 얼른 가서 그들이 있는지 보고 올께요.”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무슨 다른 걱정이 있나요?” 그는 말했습니다. “네가 걱정이 되는구나.” “아버지, 나는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이제 어떤 들짐승이라도 잡을 만큼 강합니다!” 아버지는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지만, 웃음은 그늘진 근심으로 변했습니다.”

 

집을 떠나 나는 세겜으로 발을 재촉했습니다. 세겜까지의 거리는 북쪽으로 60마일(111km) 되었습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 그들이 이미 14마일(22.5km) 위에 있는 도단이라는 곳으로 옮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려 멀리 그들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요셉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높여 형들을 불렀습니다. 나는 형들이 나를 알아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멀리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까이 갔을 , 그들의 얼굴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황스럽고 화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껴안는 대신 옷을 벗기고, 끌어다가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나를 던져 넣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의 근심 어린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그는 들짐승들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걱정한 것은 형들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은 오랜 논쟁 끝에 마침 그곳을 지나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나를 팔아버렸습니다. 상인들은 나를 애굽으로 데려가서 바로의 신하이며 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도중, 나는 몹시 떨며 조용히 울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며 나는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몹시 어두웠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줄기의 빛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있을까? 그렇게 아름다운 채색옷을 다시 입을 있을까? 아버지가 내게 것처럼 왕자 같은 대접을 다시 받을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나를 심히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밤에 나는 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아버지가 심히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거룩한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주님은 어디 계신가요?” 잠시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느니라.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으며, 앞으로도 항상 너와 함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애굽으로 보내는 이는 바로 나이니라. 내가 전에 네게 보였던 꿈을 잊지 말거라!” 이제 밤이 이상 어둡지 않았습니다. 나는 비로소 숨을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찬양했습니다.

 

(요셉의 1인칭 나레이션 )

 

창세기 37장에 따르면, 요셉의 형들은 수염소 마리를 죽이고 피로 요셉의 옷을 적셨습니다. 그리고는 묻는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그들은 거짓 증거를 만들어 자신들의 죄를 덮고, 아버지에게 거짓을 말했습니다. 결과 야곱은 견딜 없는 절망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을 그토록 사랑한 야곱에게 형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고하였다면, 아버지의 맹렬한 노여움을 직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죄와, 죄에 대한 아버지의 맹렬한 노여움은 이제 그들이 타고 견뎌야 진리의 파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위험한 일을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진실을 직면하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고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22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안하게 시간을 살았습니다.

 

형들과는 대조적으로, 요셉은 진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을 , 그는 사랑을 공공연하게 드러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장래 일에 대한 환상을 보았을 , 그는 환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이런 요셉을 믿고, 야곱은 그에게 형들과 양떼들을 보고 오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요셉은 그의 진실함과 성실함이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불러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형들과의 평화로운 위해서 진실을 덮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를 드러내고 이로 인해 생기는 생애의 파도들을 견뎌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과 씨름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보이시기 위해서 그의 사람들을 세상 깊은 곳으로 쑤셔 넣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과 진리를 기쁘게 받지만,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외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차갑게 거절합니다. 이런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끼여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씨름으로 인해 생기는 거친 파도들을 견뎌내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진리의 파도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과 같습니다. 파도가 높거나 낮거나, 상황이 좋거나 나쁘거나, 심지어 죽음 같이 거대한 파도를 불러올지라도 타협하지 않고 진리에 순종하며 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절대 잊거나 부인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형들에게 드러냈습니다. 미움을 받아 팔리기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증거하신 예수님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