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의로움의 창조자 예수님 (이사야 53:1-12)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3. 10. 11. 21:39

의로움의 창조자 예수님

 

이사야 53:1-12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안에 있는 동식물들을 지으시고,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창조 (bara)”라는 말이 오직   사용되는데 (1:1, 21, 27), 이것들은 각각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창조,” “생명체들의 창조,”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창조 나타내고 있습니다.이러한 창조의 역사는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된 세상과,  안을 채우고 있는 동식물들과,  그것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과 아름다우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자신 창조의 근원이며, 창조의 능력이며,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하거나기여한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순수하게 피조물 뿐입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천지 창조에 이어,  한번의 창조가 있습니다. 우리를 이를 재창조(re-cre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됨을 입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말씀입니다. “그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은 죄인  우리를 위해 의로움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히셨습니다. 이것이 재창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로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시고 홀로 의로움 창조하셨습니다. 로마서 5:6-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에도 의로운 사람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로마서 말씀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그리고 선인을위하여 용감히 죽는 라고 표현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이 도달할  있는 가장높은 경지의 의로움 것입니다. 이런 경지의 의로움을 보인 사람들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기억하고 기념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은 의인 (righteous man)” 또는 선인 (good man)” 위한 것입니다. 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훌륭한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물론 요리사의 솜씨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맛있는 요리는 좋은 재료와 요리사의 훌륭한 솜씨가 만났을  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리사가 맛있는 요리를 창조했다고   없습니다. 사실은 많은 부분이 좋은 재료 덕택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인 또는 선인 위한 희생은 의롭지만,  의로움의 일부는  의인 또는 선인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의인을 위해서 또는 선인을 위해서  사람의 희생에 대한 정당한 이유 되며 이로 인해 그의 희생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의로움 창조할  없습니다.다만, 대의(good cause) 위해 의로운 일을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운 희생은 다릅니다. 6절은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하며, 8절은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건치 않으며,  죄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위하여 죽으실 정당한이유 전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로운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홀로 의롭게되신 것입니다. 심지어,  의로움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선인으로 새롭게 만드십니다. 이는 우리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없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아무도   일을  자도, 하나님과 함께 일한 자도 없습니다.하나님께서 홀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의로움을 창조하실  아무도  일을  자도, 예수님과함께 일한 자도, 도운 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의로움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53장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땅에 오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의로움을 창조하셨는지,  어떻게 그가 스스로 의롭게 되셨으며  사람들을의롭게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증거합니다.

 

앞에서 인용한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나 선인 의로운 희생의 재료(ingredient)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의로움의 재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생명 또는 영혼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며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본문에는 영혼이라는 단어가 (“생명이라고 번역되기도 ) 자주 나옵니다. 10절에는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렸다 하며, 11절에는 그가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하며,  12절에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은 정욕적인 사랑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예수님께는 그들의 정욕을 만족시켜줄 자산들이 전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2 말씀입니다. “그는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아름다운  전혀 없습니다.  말은 예수님께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은 우리가 흠모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경제력, 학력, 외모, 가정 환경, 사회적 지위 등을 흠모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예수님께는 오직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충만한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하지만 정욕적인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눈은  예수님의 아름다운 영혼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 살은 참된 양식이요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십니다 (요한복음 6:55).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떡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기적을 보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하고 흩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얻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주심으로 그들을 붙들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정욕적인 사랑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영혼을 드려 의로운 사랑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멸시하고 싫어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4, 5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실  사람들은 그가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때부터 소경  사람 나오는데, 이를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랍비여  사람이 소경으로  것이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부모오니이까?” 이렇게 사람들은 고난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상식입니다.  어떤 사람이죄를 지었을 ,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형벌로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난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 아니라, “남의 죄를 지고 가는 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의로운 일이 있을  있을까요? 참으로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하신 일은 찬양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상 사람들  아무도,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이런 예수님의 의로운 일을 알아주지도 칭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을까요? 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의인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 위해 죄를 지고 가셨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 세리나 문둥병자나 이방인이나 창기들  진짜 죄인들  예수님의 의로운 사랑 받아들였습니다. 자기의(self-righteousness) 따라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시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세상의 종교들은 모두 나의 의로움 추구합니다.  내가 의로운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나의 의로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추구합니다. 디도서3:4-7 말씀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 의한 것이 아니고 오직하나님의 긍휼하심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우리 기독교신앙에서 자기의(self-righteousness)”  자리는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의 긍휼을구할  우리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것은  자체로 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의롭다 하심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의는 완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의로 눈이 멀어 있을  예수님의 의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춥니다. 우리의 자기의가 빛을 잃을  비로소 예수님의 의의 영광이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우리 자신이 완전히 부패한 죄인임으로 발견할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의의 완전함을 깨달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형벌을 받으셨음을 인정할   영혼 속에 예수님의 의로부터 오는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내가 자기의에 대해서 죽을 , 안에 예수님의 의로부터 오는 생명이 살아나게 됩니다.  신앙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도전들을 이겨내며  길을 가야합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홀로 십자가에서 의로움을 창조하실 ,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육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을 , “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창세기 1:31). 그의 지으신 피조물들의 좋음 만족하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빛과 생명으로가득합니다. 이들은 이제 스스로 번성하며 하늘과 바다와 땅의 모든 공간들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의로움을 창조하신 역사에서도 같은 만족과 번영을   있습니다. 11,12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의로움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단번에 (once for all)”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리서9:26).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희생 제사로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만족하시며  이상 어떤 제사도 원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오직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없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는 죄와죽음이 물러가고 의와 생명이 승리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버려 고난 당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영혼을 드려 창조하신 의로움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있을 모든 죄를  덮고도 남을 만큼 충분합니다.

 

우리는 혹시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완전한 의로움 우리의 죄를  덮어주니 우리는  이상 의롭지 않아도 되며, 그냥죄인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제 죄인  우리도 의롭게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예수님의 의로운 사랑의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타락한 죄인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은 우리의 죄를 덮기도 하지만, 먼저 그 죄를 밝히 드러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치료받도록 합니다. 이것이 참된 의미에서 죄를 덮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인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참된 의로움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움 우리가 진정으로 의로운 삶을   있는 기초(foundation) 되며, 우리를 참된 의로움으로 인도하는 (way) 되며, 우리가 장차 주님께로부터 받을 면류관  의의 면류관(디모데후서4:8) 됩니다. 앞에서 인용한 로마서 말씀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있다 합니다. 사람들이 의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대의(great cause)”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의라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숭고해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여전히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로움은모두 상대적입니다.  눈에 숭고하게 보이는 것을, 어떤 다른 사람들은 몹시 싫어하고 심지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목숨을 바쳐 훼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위하여 죽을  있는 유일한 대의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시며, 예수님만이 완전한 의로움 되시며, 예수님만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위해서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아들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십니다 (누가복음 9:35). 성경의 기록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하나님 자신 외에 누구의 말을 들으라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우리의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0,21). 사도 바울의 인생의 목표는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존귀하게 되는 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의로움입니다. 그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는  결코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의롭게 살며  하나님의 의로움에 이르도록 열어놓으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의로움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을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예수님의 의로움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길이되며, 빛이 되며, 능력이 되며,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하나님의 구원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으며  선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너무나 겸손하셔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않으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너무나 놀라워서 사람들이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났지만 그것은여전히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믿을  우리는  구원을 보고 누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 믿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의 눈을 끄는, 믿을 만한 위대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오직 우리의 겸손하신 구주 예수님께서 창조하시며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의로움으로 인해 우리의 몸과 영혼이경이로움과 찬양과 감사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