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태초에 (창세기 1:1-2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25. 5. 23. 22:03

태초에

 

창세기 1:1-25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입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여러 책들 가장 중요하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만물의 기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구원 단순히 죄를 용서받고 죽음의 형벌을 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회복이며 화해입니다. 이것은 미래 완성될 일이지만 사실 뿌리는 과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원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의 의미도 없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창세기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튜링 테스트 (Turing Test)”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알란 튜링(Alan Turing)이라는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가 제안한 것으로, 이는 컴퓨터가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이것은 1950년에 컴퓨터 기계가 등장할 제안되었지만,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이 보편화된 오늘날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튜링 테스트에서는 기계에 어떤 질문을 하고 그것이 얼마나 사람처럼대답을 하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릴 사건은 무엇이며 그것은 당신의 오늘날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What is your most memorable childhood event and how has that impacted you today)?"라고 묻거나 혹은 만일 당신 자신을 추상화로 표현한다면 당신은 어떤 색상과 모양을 사용하겠으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If you were to draw yourself as an abstract painting, what colors and shapes would you use and why)?"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흔히 있을 있는 질문이지만 컴퓨터 기계가 이런 질문을 인간이 이해하듯 이해하고   인간이 대답하듯 대답한다면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컴퓨터가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 자의식, 도덕성, 미적 감수성, 논리적 사고력, 다양한 감정들과 가치들 등은 결코 기계적인 처리 대상이 없습니다. 컴퓨터 기계가 아무리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고성능 결과입니다. 컴퓨터 기계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자의식, 창의성, 감정들과 가치들을 가질 없습니다. 컴퓨터가 가질 있는 유일한 미덕은 0 1 구성된 데이터를 처리할 있는 성능입니다. 그리고 오직 저성능그리고 고성능 컴퓨터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과 같은컴퓨터는 없습니다.

 

우리는 컴퓨터가 인간처럼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두렵게도 반대 있습니다. 사람을 기계처럼 오직 그의 성능으로만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감독하고 주연한 Modern Times라는 무성영화에서 The Tramp(찰리 채플린 )라는 공장 노동자는 과도하게 빨리 움직이는 조립라인에서 일하다가 그의 저성능으로 인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장면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계화된 사람들의 삶을 풍자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성능혹은 생산성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빨리 일하며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영화는 90 전에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오늘날 세상의 모습과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Trump 대통령이 꿈꾸는 위대한 미국 모든 사람들을 경제적 성능과 생산성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척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책으로 인해 미국에 밝은 미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과연 이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요? Bertrand Russell이라는 영국의 무신론자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가 (Why I Am Not a Christian)?”라는 수필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들을 썼습니다. 그는 수필의 말미를 이렇게 끝냅니다.

 

좋은 세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지식과 친절함과 용기입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후회하거나, 옛날 무지한 사람들이 했던 말들에 우리의 자유로운 지성을 얽맬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두려움 없는 기대와 자유로운 지성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죽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소망입니다.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있는 미래는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과거보다 훨씬 좋아질 것임을 믿습니다."

(A good world needs knowledge, kindliness, and courage; it does not need a regretful hankering after the past, or a fettering of the free intelligence by the words uttered long ago by ignorant men. It needs a fearless outlook and a free intelligence. It needs hope for the future, not looking back all the time towards a past that is dead, which we trust will be far surpassed by the future that our intelligence can create).

 

러셀은 과거 가치를 부인하면서, 우리가 지식과 친절함과 용기가 있다면 현재의 문제들을 이겨내고 이전보다 훨씬 좋은 미래를 만들 있다고 말합니다. 말은 컴퓨터 관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상상할 없이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를 사용하며 여러 면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 대해서도 이를 적용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옛날에 비해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래서 많은 지식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대부분 좋은 경제적 성능과 생산성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했어요. 하지만 노력하면 지금보다 있어요라고 말할 만큼 친절할 있고, 계속해서 생산적인 도전할 만큼 용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식과 친절과 용기가 그들을 기계화된 존재로부터 구원할 없습니다. 컴퓨터가 기껏해야 높은 성능의 컴퓨터가 있는 것처럼, 기계화된 사람도 기껏해야 높은 성능과 생산성을 가진 기계화된 사람으로 발전할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제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 컴퓨터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 것입니다. 이런 미래를 전망하면서, 우리가 두려움 없는 기대와 자유로운 지성 가질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과거 러셀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발목을 붙들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사슬이나 장애물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과거 우리의 기원이며 시작입니다. 그리고 기원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과거 우리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주며 그곳에서 세상을 조망할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오직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으며 어떤 것도 놀라지 않는 두려움 없는 기대와 자유로운 지성 가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기 말씀을 주신 것은 결코 우리를 과거에 얽매이도록 하심이 아닙니다.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현재 거짓되고 왜곡된 세상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하나님의 진리를 보며, 진리 안에서 진정한 있도록 인도하는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 말씀을 주의 깊게 공부함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창세기 1:1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시간 시작된 시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시간은 예수님께서 땅에 다시 오실 끝나며, 하늘과 땅이 임하게 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시간 동안 존재하는 유한한 공간을 지으셨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계절이 있고, 농부는 계절을 따라 땅에 일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은 마지막 때의 추수를 바라보면서 진행됩니다. 따라서, 태초에 있던 천지 창조는 단순히 세상의 기원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일의 시작입니다. 일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와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세상에 여러 다른 역사관들이 있을 있으나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짧은 기간, 특정한 가치, 혹은 특정한 지역이나 민족의 시각에서 역사를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도 아니고, 고대 중동의 역사도 아닙니다.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끝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간도 빠짐이 없이 항상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숨결 느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영혼이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3-16).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가 따로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실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본문의 2-3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그리고 성령으로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2 말씀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깊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역사 통해서 어둠을 밝히는 빛을 만드시고, 질서를 세우시며, 공간들을 생명들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들의 시작이 되시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좋은 것들이 생길 수도 없으며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며,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해결자이시며 공급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것은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이 창조 역사 이전의 모습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운 세상의 상태를 집어서 설명하고 있음은 흥미롭습니다. 저는 말씀이야말로 우리에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있는 용기 영광스러운 미래를 기대하는 소망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며 좋은 것들의 공급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은 있는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합니다 (로마서 4:17b).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은 같은 몸과 아내 사라의 죽은 태를 용기 있기 직면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대상이 되심은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어둠 가운데서 아름답고 조화롭고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 절망 아니라 소망입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4a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그리고 성령으로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 것이며, 말씀으로 드러난 뜻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대로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루어진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1장의 본문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과 (3, 6, 9, 11, 14, 20, 22, 24, 26, 29), “그대로 되니라라는 말씀과 (7, 9, 15, 24, 30),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4, 10, 12, 18, 21, 25, 31)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대로이루어지며,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됩니다. 이것은 단지 창조 역사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하나님 역사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창조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가라사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말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자주 성경을 시대에 뒤진 책으로 치부합니다. 심지어 러셀과 같은 지식인들은 성경 말씀이 창조적인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문명을 앞세우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창의력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 매우 짧은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십년 동안 우리는 지구의 환경, 사람들과 나라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말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성령의 능력이 항상 말씀과 함께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 무엇을 말하든, 무엇을 행하든 우리는 항상 그것을 말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할 , 성령께서 일하시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됩니다. 모든 좋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새롭게 되는 길은 오늘을 열심히 일하면서 보내거나 내일을 위해 세심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새롭게 되는 길은 먼저 나의 창조주 하나님께, 그리고 나의 구주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게 그가 나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그리고 그가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시고 (create) 재창조하신 (recreate) 그가 바로 진정한 입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이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처음의 창조보다 훨씬 영광스럽습니다. 영혼에 그리고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처럼 넘쳐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야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