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고난의 맛을 즐기거라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57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에스더는 새로운 곳에서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고
마리아는 다시 새 학년을 맞이하고
아빠도 이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니
우리 모두가 축복을 많이 받은 것 같구나.

하지만 새로운 생활에는
늘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오늘 통화를 하면서 에스더가 그랬지.
수업이 시작되고 바빠지면
좋아질 것이라고 ...

아직은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
에스더 혼자 남아 있으니
마음이 쓸쓸하고 또 조금 무섭기도 하겠지?

아빠도 비슷한 경험들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집을 떠나 하숙(homestay)을 할 때
군대에 입대했을 때
처음 뉴질랜드로 이민 갔을 때
그리고 어제 에스더를 코넬에 남겨두고
혼자서 차를 몰고 보스턴으로 돌아오면서 ...

우리는 이런 어려움에 처하면
그 어려움을 잊기 위해 애를 쓴다.
에스더가 말한 것처럼
바쁘게 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지.
어떤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아볼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잠을 많이 자기도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좋은 방법은 "어려움을 즐기는 것"이다.
"즐긴다"는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렇게 쓰고 싶다.

성경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어려움(고난)을 겪으신다.
그 중에 가장 큰 고난은 물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생긴 일이 아니라
옛날 옛적부터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다.
예수님 또한 처음부터 자신이 장차
십자가를 지실 것을 잘 아셨다.

이런 어려움을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매우 힘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늘 마음 속에 그것을 생각하셨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셨고
그리고 십자가를 "기꺼이 (willingly)" 지셨단다.
심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즐기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를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단다.
제자들도 이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response)"가 사뭇 흥미롭다.


마태복음 16:21,22절 말씀이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받을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거의 본능적으로 (instinctively)
이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했다.
KJV에 보면 "Be it far from thee"라고 외친다.
그는 예수님께서 고난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벗어나기를 원한다.

또 다른 말씀으로
마태복음 17:22,23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자
"제자들이 심히 근심했다 (filled with grief)."

마가복음 9:31,3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겪게 되면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며
심지어 그것에 대해 말을 하는 것조차 무서워한다.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영접하고
심지어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정말 어렵겠지?

그 어려운 것을
아빠가 마리아, 에스더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기억할 것이다.
아빠가 이 말을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문처럼 반복하는 말들 중 하나라는 것을...

뻘쭘한 것을 잘 참아야 한다.
고난을 사랑해라.
어려움을 즐겨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워라.
여러 말로 표현했지만 다 비슷한 말들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제자들은 고난을 싫어하고
그것으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치려 했지만
사실은 "고난"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이유(the only reason)란다.

마가복음 10:45 말씀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단지 "십자가"만이 아니란다.
마굿간 구유에 태어나신 것으로 시작으로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모든 종류의 고난들"을 다 겪으셨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들을 겪으셔야 했을까?
고난이 왜 좋은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 즐기만한 것일까?

히브리서 5:8,9절 말씀이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고난 (suffering) - 순종 (obedience) - 온전함 (perfection)

고난을 통해 - 순종을 배우고 - 온전하게 된다.
이 길에 외에 "온전"하게 되는 다른 길은 없단다.

마리아, 에스더가 훌륭한 사람 곧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quality)은 바로 "고난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을 "가장 사랑하신 분"이다.
그래서 "가장 훌륭하신 분" 곧 "가장 온전하신 (perfect) 분"이 되셨다.

고난 - 순종 - 온전함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하자.

하여튼 오늘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사랑하라고 즐기라는 것이다.

에스더가 지금 어려움의 시간이라면
이는 곧 "순종"을 배우는 시간이며
더욱 성장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에스더야!

네 마음이 힘들면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렴.
똑바로 쳐다보거라.
그 맛을 보거라.

아하! 외롭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쓸쓸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혼자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느꼈겠지?
이것을 느끼며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노래도 지었겠지?

예수님은 어떠셨을까?
혼자 외롭게 십자가를 지셔야 했을 때
무엇을 하셨을까?
어떻게 참으셨을까?
무엇이라고 기도하셨을까?

마리아, 에스더야!
너희들이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배우고 닮아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란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 "고난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란다.

마태복음 16:24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리아, 에스더야!

아빠도 안다 고난이 어렵다는 것을.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앞에서 심히 근심하셨단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른 길이 없단다.
"십자가"만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길이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고, 능력이 있다.

그러니
다른 길로 가지 말거라.
십자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거라.
고난을 사랑하거라.
즐기거라.

마리아, 에스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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