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예수님의 때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55

마리아, 에스더야,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이
기록되어 있지.

가나라는 마을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는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거야.
이를 알게 된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서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신다.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하신 것처럼 들리지?
그런데도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또 "맹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갖다 준다.

우리 전마리아가 궁금해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하셨음에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한 것이
예수님의 뜻을 어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

언뜻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청을 거절한 것도
마리아가 예수님의 뜻을 어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정해진 때"에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무엇인가를 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듯이
결국은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물을 아주 좋은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통해서
혼인 잔치를 축복하신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왔을 때 즉시 일하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셨을까?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내 때(my time)"란 어떤 때일까?

요한복음 2: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이적을 행하신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보여준다.
하나는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아마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때"란
이 중요한 두 목적과 아주 긴밀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든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방식으로 하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도우신다.

만약에
마리아가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했을 때
예수님께서 즉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말을 잘 들으시는구나.
그러면 마리아에게 부탁을 해야지!"

그러면 마리아가 영광을 받을 것이고
또 사람들은 예수님께 기도하기보다
마리아에게 기도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오직 한 가지는 말씀 그대로다.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리고 이를 위해 때를 기다리신다.

이런 예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오라비 나자로가 병들어서 곧 죽게 되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말한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곧 가지 않으시고
결국 나사로는 죽게 된다.
그리고 요한복음 11: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또 11:40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예수님의 말씀은 almost
나사로가 죽은 것을 기뻐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며
또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항상 이렇게 일하신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그래서 우리가 오직 예수님만을 믿고 예수님께로만 가도록
"그 때"를 기다리신다.

하지만 사람의 편에서 보면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믿으며 기다리는 것!"
이것이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하시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아! 그렇군요!" 하고 포기하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지금 당장 포도주를 만들어 주세요!" 하고 졸라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편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겠지.

그런 점에서 보면
마리아의 태도는 바람직한 것이다.
여전히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실 것을 믿지만
"예수님의 때"에 순종하는 것이다.
자신이 순종할 뿐 아니라
하인들까지 예수님께 순종하도록 준비한다.

예수님은 "주(Lord)"이시고
마리아와 하인들은 "종들(servants)"이다.

예수님은
주님에 때에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종들을 쓰셔서
주님의 일을 하신다.

항상 그렇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할 수 없어서"
어떤 일을 하시는 법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심도 그렇단다.
요한복음 10:17,18절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목숨을 "빼앗기신 것"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다시 찾으신다.

그러니 마리아는 참으로 현명한 여자다.
예수님을 "주"로 높이고
자신과 모든 이들을 그 앞에 "종"으로 낮춘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이든 하소서! 저희가 듣겠나이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때"가
우리와 전혀 상관 없이 정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우리 때문에"
때가 늦추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항상 일하실 준비가 되어 있지만
"종"인 우리는 대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자애로우신 주님"이시다.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항상 "the best service"를 베푸신다.

마리아는 단지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했다.
"포도주를 만들어 주세요"라고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이미
"최고의 포도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줘야지!"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나사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다만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늘 일하시며
또 늘 일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그 영광을 드러내시길 원하신다.

이런 점에서
"종"으로서 준비된 마리아와 하인들은
"예수님의 때"를 앞당겼다고 볼 수 있겠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말을 기억하니?
마태복음 3:3절 가운데 있는 말씀이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make his paths straight)!"

왕이 다니는 길은 "평탄한 길"이다.
우리가 그 길을 깔아드리면
왕이신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그 길을 걸어가신다.

마리아와 그 하인들이 한 일이 바로
"make his paths straight"라고 할 수 있다.

2:9절 앞부분에는 예수님께 순종한 하인들에 관한
중요한 말씀이 쓰여져 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 채
다만 물로 된 포도주를 마셨다.
하지만 예수님께 순종한 하인들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았다."

이것은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란다.
연회장은 맛난 포도주를 즐기고
혼인 잔치를 무사히 끝내게 되어 기뻤겠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하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그 분이 누구신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들 속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마리아의 질문에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말씀은 너무 깊은데
아빠의 설명은 참으로 부족하구나.

마리아, 에스더야,

아빠가 오늘 읽은 책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If you don't have fine manchet bread, then give the people barley bread."

Martin Brucer라는 종교개혁(Reformation) 지도자가
John Bradford라는 영국 사람에게 설교자가 되라고 권하면서 한 말이다.

아빠의 설명이
"fine manchet bread"(사전에 찾아보니 고급 프랑스 빵이란다)가 되지 못하더라도
"barley bread (보리빵)"이라도 열심히 먹여야겠다.

사랑한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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