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독수리 훈련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59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오늘 아빠가 말할 주제는
제목에서와 같이 "독수리(eagle)"다.
에스더와 만나서 여러가지로 한 얘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다음은 신명기 (Deuteronomy) 32:10-12절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가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독수리가 그 새끼를 키우듯이
키우시고 훈련하셨다.

어떻게 훈련하시지?

먼저 "보금자리를 어지럽힌다."
독수리 새끼는 어릴 때
보금자리(nest)에서 자란다.
보금자리는 높고 안전한 곳에 있으며
어미 독수리는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해다가
새끼를 먹이겠지.

하지만 새끼가 항상 보금자리에서 살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엄마 독수리처럼
새끼도 자신의 날개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냥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미는
새끼가 보금자리에서 나오도록
그 자리를 어지럽힌다 (stir up).

새끼 입장에서 보면 처음엔 아주 힘들겠지?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엄마가 그 보금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니 말이다.
혹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며
짜증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뿐이 아니다.
위에 말씀에 보면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spreads its wings to catch them)"라고 되어 있다.

어미 독수리는 아직 잘 날지 못하는 새끼를 높은 하늘에서 던진 후
새끼가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떨어지는 동안 주위를 맴돌다가 (hovering)
새끼가 땅에 닿기 전에
그 날개로 안전하게 받아낸다. 휴우 ~~

아마도 새끼는 굉장히 두렵겠지?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는 허공(empty space)에서
전속력으로 땅으로 떨어질 때
얼마나 무서울까?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훈련들은 모두
새끼를 훌륭한 독수리로 만들기 위한
엄마 독수리의 "사랑"이란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서
새끼는 자신에게 훌륭한 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또 넓고 푸른 하늘이 무서운 허공이 아니라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자신의 "집"이며
아주 exciting한 곳임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보금자리에의 편안한 삶(comfortable life)을 원하지 않는다.
높은 하늘, 넓은 들판 위를 신나게 날아다니며
세상을 commanding하며 살게 된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장하는 것이
이와 같이 독수리 새끼가 위엄있는 독수리가 되는 것과 똑같다.
1 feet 남짓한 작은 둥지에서 벗어나
광대한 (vast)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안전함("security")이다.
독수리 둥지(nest)를 생각해 보렴.
세상에 이것보다 더 안전한 것이 없을 것 같다.

높은 낭떠러지 위에 있어서
어떤 짐승들도 가까이 할 수 없다.
더구나 눈이 매우 날카로운 어미 독수리가
항상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더할 수 없이 안전하다.
우리도 만일 세상에서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참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엄마 독수리는 (하나님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엄마 독수리는 그 새끼가
"둥지"의 "좁은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하늘"의 "넓은 세계"로 나아가서
훨훨 날아다니기를 원한다.

새끼 독수리가 영영 날지 못한다면
토끼나 다람쥐만도 못하겠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떻게 하면 새끼를 날게 할 수 있을까?

새끼가 딛고 서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remove)하는 것이다.
새끼는 뭔가 두 발로 디딜 것들을 찾아서 붙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칠 것이다.
그러면 엄마 독수리는 그것을 없애버린다.

결국 새끼는 아무 것도 없는 공중에 떠 있게 된다.
그 발로 붙잡을 것이 전혀 없다.
밑으로 마구 떨어진다.
그제서야 비로소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다.
(믿음으로 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잘 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 무서운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날개가 있음과
그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소망은 갖게 된다.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혹시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이
자신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니?
하늘을 날아본 적은 없겠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전에 에스더와 얘기했던 것처럼
너희들이 어렸을 때
아빠한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너희들은 자전거 위에 타고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가 앞으로 달린다.

자전거가 달리는 동안
아빠는 잡았던 손을 살짝 놓는다.
여전히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잘 나아간다.
이미 너희들은 자전거를 혼자서도 잘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손을 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너희들은 "아빠!" 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곧 옆으로 넘어진다.
하지만 아빠의 도움 없이
많은 거리를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점점 혼자서도 자전거를 잘 타게 된다.
너희가 혼자서도 잘 타게 된 후에는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너희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신나게 달린다.

성경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지.
(성경에는 없는 얘기가 없단다.)

마태복음 14장 22-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밤에 호수 위를 걸어서
호수 가운데 배를 젓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신다.
예수님을 본 제자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고 허락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간다.
하지만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며 물에 빠진다.
예수님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는
베드로의 손을 즉시 잡아 주신다.
그리고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신다.
베드로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너희들이 처음 자전거를 타는 것,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
그리고 새끼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은
모두 획기적인 (radical) 변화들이다.

이런 변화들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두려운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고 잡고 있던 "secure"한 것들을 놓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두 발을 "땅"에서 떼어야 한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기 위해서 "배"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 "둥지"를 떠나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란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과 같지.
너희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듯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빠지듯
또 새끼 독수리가 공중에서 떨어지듯 여러번 실수를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여전히 아빠가 넘어지는 너희들을 붙잡아주고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고
또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를
엄마의 넓고 푹신한 날개로 안전하게 받아내기 때문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어지럽히시고
우리가 security를 위해 붙잡는 것들을 없애신다.
왜냐면 우리가 땅에 사는 토끼가 아니고
멋있는 날개를 가진 하늘의 "독수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라고!!!

세상에서 "secure"한 것을 잃었을 때
(예를 들어, 에스더처럼 가족들을 떠나 홀로 먼 곳으로 갔을 때,
또는 내가 굉장히 아끼는 것을 잃었거나 아주 필요한 것이 없을 때,
또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마구 일어나서 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마치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두려움으로 무엇인가 붙잡을 것을 찾는 대신
"날개"를 이용해서 날아야 한다.
날개가 작더라도
그래서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그 날개를 쳐야 (flutter)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는 "날개"는 무엇일까?
요한계시록(Revelation) 12:1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하나님께서 "그 여자"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주셨다.
"그 여자"는 "교회"를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뭘까?
아빠가 여러 참고서들을 찾아보았는데
여러 다른 의미들로 설명해 놓았다.

그 중 아빠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두 날개"의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도"다.
또 하나는 "말씀과 성령님"이시다.

아빠의 경험을 볼 때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다음의 말씀들을 볼 때
이 의견이 진리인 것으로 믿는다.

전에 너희들이 아빠와 함께 공부했던 말씀들인데 기억할지 모르겠다.
데살로니가 전서 (1Thessalonians) 5:16-18절 말씀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빠의 눈에 이 말씀들을
"하늘을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상상이 되니?

흠...

독수리는 한 마디로 말해서 "기쁜 영혼"이란다.
에스더에게 "마음을 가볍게" 하라고
아빠가 여러 번 말했던 것을 기억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여러 가지 욕심들과 근심들로 인해
그들의 영혼이 "땅에 매여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세상에 묶여 있다면
그 마음의 무게가 지구의 무게만큼 무겁겠지!
이런 사람은 "슬픈 영혼" 또는 "무거운 영혼"이다.

디모데후서 3:6b절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는 꽤 동떨어진 모습이잖니?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사야서 40:31a절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hope in the Lord)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노래한다.

이 사람이 바라는 (hope) 것은
세상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세상에 묶인 것이 없다.
가볍고 자유롭다.
그래서 독수리와 같이 날개치며 힘차게 올라갈 수 있다.
정말 멋있지 않니?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가볍고 기쁜 영혼"을 가질 수 있을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위의 말씀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고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마리아, 에스더야!

이 두 날개(감사와 기도)를
항상 그리고 모든 일에 써야 한다.

사단은 "독수리"와 같이 사는 우리가
땅에 있는 것들에 욕심을 내고
그래서 하늘을 나는 대신
땅에 내려 앉기를 기다리며
일단 땅에 내려 앉으면 붙잡아서
줄로 꽁꽁 묶어 다시는 날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다.

"기도"와 "감사"는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하도록
다시 말해서 "하늘을 날도록" 지켜주는 "날개"다.
쉬지 말고 이 날개를 쳐야 (flutter) 한다.

또 다른 두 날개는 "말씀과 성령님"이다.

앞에서 말한 말씀 바로 뒤에 나오는
데살로니가 전서 (1Thessalonians) 5:19-22절이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성령님을 늘 마음 속에 지킬 것과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앞의 "감사와 기도"는
우리가 "날개를 치는(flutter)" 모양인데

여기 "말씀과 성령님"에서는
우리가 "날개에 붙들린" 모양이다.
너희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은
이 땅에 속하시지 않고 하늘에 속하셨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이 두 날개 곧 "말씀과 성령님"께 붙들리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님께서 충만히 거하시면
너희들은 더 이상 땅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된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은
너희들을 높은 하늘로 인도하며
넓은 세상을 내려보게 하시며
또한 독수리의 눈과 같은
예리한 통찰력(sharp insight)을 주신다.

그래서 말씀과 같이
범사에 헤아려 (test everything)
좋은 것을 취하고 (hold on to the good)
모든 나쁜 것을 버릴 수 있게 된다 (avoid every kind of evil).

그러므로 너희들의 영혼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께
"붙들려" 있어야 한다.
반드시 명심해야 하고 지켜야 한다.

마리아, 에스더야!

너희들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되어야 한다.
너희들은 이미 "독수리"란다.
아빠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날개를 이용해서 날아라" 하는 뜻이다.

하늘을 나는 삶이란 "믿음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 영혼이 세상에 매여있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생명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새끼 독수리가 하늘을 날게 된 것보다
훨씬 더 획기적인 (radical) 변화란다.
훨씬 더 높고 깊은 하늘로 오르며
훨씬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꾸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하지 말거라.
대신에 너희 영혼을 무엇에도 매이지 않게 지키며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와 기도" "말씀과 성령"의 날개를 튼튼하게 하고
늘 그렇게 가볍게, 힘차게 그리고 높이 날아다니거라.

땅에, 보금자리에, secure한 무엇에 매달리지 말고 ...

다 읽었니?
한번 더 읽거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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