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진정한 자유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5:00

마리아, 에스더야,

짧은 연휴 동안
마리아, 에스더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고 아쉽구나.

오늘은 "자유(freedom)"에 관해서 얘기해 보자.

성경 말씀 갈라디아서 (Galatians) 5: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가 "종"이었다는 말이다.

간혹 사람들은 자신들을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자유롭고
우리는 예수님께 매여있으니까.

사실 "종"이나 "자유"라는 말은
그냥 따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항상 "ㅇㅇ의 종 (slave of something)"
또는 "ㅇㅇ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something)"
이렇게 해야 말이 된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셨다고 했는데
이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

요한복음 8:31-36절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신다.
곧 성경에서 말하는 종이나 노예란
"죄의 종" "죄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참으로 자유하리라 (you will be free indeed)!"
이것이 "진정한 자유"란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자유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에는 어떤 조건들(conditions)이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즉,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자유가 없는 종"이 아닌가?

언뜻 생각하면 "죄의 종"이나 "예수님의 종"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무엇인가에 매여있는 것"이니까.

"죄의 종"과 "예수님의 종"은 무엇이 다를까?

다음은 로마서 5:17절 말씀이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이 말씀은 "죄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얼마나 다른가를 잘 보여준다.

아담이 죄를 지어 "죄의 종"이 되자
"사망(death)"이 사람들의 왕이 되어 사람들을 다스리게 되었단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산단다.
아주 작은 일에도 걱정하고 근심한다.
먹고 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괴롭게 일해야 한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결국에는 죽음에 먹혀 버린다(devoured).

마리아, 에스더가 보기에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 사는 것 같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죄의 종"이란다.
모두 죽음의 두려움에 쫓기며 그 지배 하에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예수님을 통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을 때
우리가 그 "생명 안에서 왕노릇"한다.

앞에서는 "사망이 왕노릇"했다고 하지!
예수님 안에서는 "생명이 왕노릇"한다고 하지 않는다.
"생명 안에서 내가 왕노릇"한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서 "나의 생명과 주권(sovereignty)"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신 후에
그의 생명 안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풀어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 생명은 참 생명이다.
죽음이 이길 수 없는 생명이란다.
우리가 "그 생명 안에" 머물러 있는 한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한)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사망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단다.

이해는 되지만 아직 마음에 깊이 와닿지는 않지?
더 설명을 해야겠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 또는 해방(liberation)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Exodus)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살면서 매우 번성(prosper)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Pharaoh)의 노예로 살았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로왕을 위해 온갖 힘든 일들을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곧 고통스러운 "종의 멍에"를 벗기시고
"자유"를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출애굽기 8:1절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Let my people go so that they may worship me)."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시는 것(let my people go)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so that they may worship me)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진정한 해방(liberation)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틀린 것이 아니고 또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단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만" 왕노릇 할 수 있다!!!

하나님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거기는 무서운 정글과, 죽음과, 종의 멍에가 기다리고 있단다.
베드로전서 5:8절 말씀과 같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단다.
사람들은 사망의 종노릇하기도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싫어한다.
혹시 사사기(Judges)를 읽어본 적이 있니?
사사기의 시작 부분인 2:11-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시 우상들(idols)을 섬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들(enemies)의 노예로 만드신다.
그래서 심한 괴로움들을 겪게 된다.

이들이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지만
이들은 다시 우상들을 섬기며
같은 실수들을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끊임 없이 자유를 주시지만
이들은 끊임 없이 "종의 멍에"를 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될까?
이들 속에 있는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었었잖니?
그런데 실상은 그들이 "애굽의 노예"일 뿐 아니라
"죄의 노예"였었던 거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Let my people go)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so that they may worship me)"라고 하시잖니?

이 말씀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애굽(바로)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죄(우상)로부터 자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으로부터의 자유"는 원했지만
"죄로부터의 자유"는 원하지 않았단다.
"절반의 자유"라고나 할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싫어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대적들(enemies)의 종이 되게 하시고
많은 괴로움들을 겪게 하셨다.

"죄"란 무엇일까?
우리가 "자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니
이 점에서 설명해 보면
죄는 "집착(attachment)"이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며
따라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free from everything).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지.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번제(burnt offering)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두말 하지 않고
이에 즉시 순종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겠니?
심지어 이삭을 위해서
자기 몸에서 낳은 다른 아들인 이스마엘을 쫓아냈단다.
그런데 그는 그런 독자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경외(fear)한단다.
아들에게 attach된 것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께 attach되어 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참 자유"란다.

우리가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항상 경계(be on the alert against)해야 한다.
무엇인가에 attach되지 않도록 말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희가 그것에 attach되어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해로운" 것이다.

아주 비싸고 예쁜 옷이 있다.
갖고 싶고 또 입고 싶고 그렇겠지?
그런데 그 옷은 한 번 입으면 영원히 벗을 수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더 이상 좋은 옷이 아니겠지.
아무도 그런 옷을 입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예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마리아가 교회에서 드럼 치는 문제로 갈등을 했잖니?
마리아가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만큼
시작을 할 때는 마리아가 원해서 했지만
그것을 그만 둘 때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고
마리아 마음 속에 아쉬움도 있고 ...

이렇듯이 세상에 좋아 보이는 것들은
"좋아보이는 만큼"
그것들에 attach되지 않기 위해서
"더욱 경계해야 할 것들"이란다.

신명기(Deuteronomy) 8장을 읽어보거라.
이 가운데 10,1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When you have eaten and are satisfied,
praise the LORD your God for the good land he has given you.
Be careful that you do not forget the LORD your God,
failing to observe his commands, his laws and his decrees that I am giving you this day)."

하나님께서 늘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마리아, 에스더야!

"하나님의 종"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이야말로 "참 자유"를 얻는 유일한 길이란다.

우리에게 팔이 있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팔이 몸에, 더 근본적으로는 "머리"에 잘 붙어 있어야겠지!
힘줄이며, 근육이며, 신경이며, 혈관들이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힘줄이나 신경이 끊어지면
팔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것이다.
팔이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자유"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리(separation)" 또는 "절단(cutoff)"라고 한다.
아무 쓸모 없이 버려지고 썩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의 생명이시란다.
그러니 예수님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자유"가 아니고 "분리"이며 "죽음"이란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에서의 자유를 포기하고
"예수님의 종" 되기를 힘쓰고
이를 위해 악착같이 노력해야 하며
예수님의 종 된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고, 자랑해야 한다.

로마서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부른다.
그는 "예수님의 종 된 것"을 하나님의 큰 은혜로 여기고
이를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구 부려먹으실까?
글쎄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그런 점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prodigal son) 알지?
아버지로부터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많은 돈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지만
결국 돼지 치는 "노예"가 되었다.

그가 아버지께 돌아와서 하는 말이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아들은 자신을 "종"으로 써달라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를 "종"으로 취급하지 않고
목을 안고 껴안고 입을 맞추며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큰 잔치를 열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아들의 귀환(return)을 기뻐한다.

"노예"가 다시 "아들"이 되었다.
"종"이 다시 "자유자"가 된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의 "종"이 되셨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죽도록 일하셨단다.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참 자유"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무엇을 잃게 되든 두려워 말고
온 마음을 기울여서 하나님께 완전히 붙어 있거라.
예수님의 생명 안에 편안히 거하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주실 것이다.
너희 영혼이 "참 자유"를 누릴 것이다.

이를 위해 아빠가 열심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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