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에스더에게

어려운 싸움 쉬운 싸움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2. 11. 29. 14:58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오늘은 아빠가 에스더와
코넬에서 작별 인사를 하기 전
계단에 나란히 앉아서 했던 얘기를
다시 하고 싶다.

옛날 어떤 마을에
아주 포악하고 잔인한
거인이 살았다.
그는 큰 칼을 둘러차고
기분이 나쁘면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 거인이
그 큰 칼을 휘두르면서
그 마을의 이발사들(barbers)에게 말했다.

"너희 중 누구든 내 얼굴에 난 수염을 깎아달라.
단 상처가 없이 깨끗이 깎아야 한다.
만일 상처가 나서 피가 조금이라도 난다면
그 자는 이 칼에 죽을 것이다."

모두 숙련된 (skillful) 이발사들이었지만
아무도 감히 이 거인의 수염을 깎으려 하지 않았다.
자칫 실수를 했다가는 바로 "죽음"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런데 그들 중에
나이가 아주 어린 이발사가 있었다.
아마도 이제 막 기술을 배우고 있었나보다.
그가 선뜻 나서서 "내가 깎아 드리겠소" 하는 것이었다.

거인은 어린 것이 용기가 있다고 칭찬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경고를 바꾸지는 않았다.
"네가 잘 깎으면 상을 주겠지만
조금이라도 상처가 날 경우 알지?" 하며 겁을 주었다.

어린 이발사는 조금도 떨지 않고
침착하게 거인의 수염을 다 깎았단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말이다.

거인은 만족해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넌 정말 전혀 상처 없이 깎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냐?
무섭지 않드냐?"

그러자 아이는 대답했단다.
"아니오, 상처가 날 수도 있겠죠.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거인은 더욱 놀라며 물었다.
"그러면 상처가 나면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
아이는 픽 웃으면서 자기의 면도칼을 보여주었다.

"당신이 칼을 빼들기 훨씬 전에 먼저
내 면도칼이 당신 목을 잘랐을 것이요."

성경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지.
너희들도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다.

골리앗은 키가 9 feet 거의 3m나 된다.
게다가 온 몸을 구리와 철갑으로 두르고
창과 단창과 칼과 방패로 무장을 했다.
아마도 생긴 것도 무시무시하고
목소리도 꽤 컸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이 거인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다.
골리앗이 나와서 "나와 싸우자" 해도
모두가 두려워서 떨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골리앗을 죽이겠다고 다윗이 나섰다.
하지만 다윗은 아직 어린 boy였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서
아마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 남자 연애인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다윗이 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에게는 갑옷도 없을 뿐 아니라
무기라고는 겨우
물매(slingshot)와 돌멩이 몇 개 뿐이었다.

그런데 싸움은 꽤 싱겁게 끝났다.
다윗이 물매에 돌을 넣어 골리앗에게 던지자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고 그를 쓰러뜨렸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빼어
그를 죽이고 그 목을 베었다.

아빠가 앞에서 말한 난폭한 거인이나 골리앗이나
모두 보통 사람들이 이겨낼 수 없는 아주 힘이 센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린 소년들이 이들을 "아주 쉽게" 이겨낸다.

아마도 면도를 하는 동안
거인은 허연 목을 드러내고 쿨쿨 잠을 잤을 것이다.
어린 이발사의 손에는
슬쩍 대기만 해도 살을 가르는
날카로운 면도칼이 들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이발사가 거인의 목을 자르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울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 사건은 기적이 아니지.

사사기 (Judges) 20:15b,1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기브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섞여 사는 일종의 minority인데
전쟁을 하기 위해서 이들 중에 700명을 뽑았단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물매를 잘 던지고
던지기만 하면 호리도 틀림이 없다.
"호리도 틀림이 없다(sling a stone at a hair and not miss)"는 말은
영어 표현대로 머리카락이라도 놓치지 않고 정확히 맞춘다는 것이다.

골리앗의 이마는 물론 "머리카락"보다는 훨씬 크겠지?
사무엘상 17:48절에 "마주 가까이 올 때에"라고 쓴 것을 보면
목표물인 골리앗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700명의 사람들 중 누구든지
다윗이 했던 것처럼
골리앗을 "아주 쉽게"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많은 노련한 이발사들 중 오직 이 "어린 이발사"만이
그리고 더 많은 물맷돌 specialist들 중 오직 "어린 다윗"만이
이런 싸움을 싸울 수 있었을까?
이 둘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이들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 무기들(면도칼, 물맷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또 상대방의 약점들(드러난 목, 드러난 이마)을 잘 파악하고
이를 공격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쉬운 싸움"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왜 사람들이 이 거인들을 두려워했을까?
뭐 쉽고 당연한 질문이지?
거인들은 힘이 세고 칼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은 힘도 없고 칼도 없다.

이 사람들의 생각에는
"힘 있고 칼이 있는" 자가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힘도 없고 칼도 없기" 때문에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소년 이발사와 다윗을 보면
이들의 생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전혀 틀린 것임을 볼 수 있다.

실상 이 거인들은
좀 크기가 큰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약점 투성이인데다가
멍청하고 심지어 약하다.

이 거인들을 이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앞에 말한 두려워하는 사람들
곧 거인의 힘과 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거인을 이기기 위해서
(그보다는 아마 두려운 마음에)
"힘"을 기르고 "칼"을 준비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거인이 아주 반가워할 일이다.
왜냐하면 거인 자신이 가장 힘이 세고
가장 큰 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 속에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이다.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빠가 이 글의 제목을
"어려운 싸움 쉬운 싸움"이라고 했는데
이 두려움을 몰아내는 싸움이
바로 "어려운 싸움"이다.

거인의 목을 베거나
골리앗의 머리를 물맷돌로 때리는 싸움은
"쉬운 싸움"이다.

마리아, 에스더가 싸워야 하는 싸움이
바로 이 "어려운 싸움"
"두려움을 몰아내는 싸움"
곧 "영적인 싸움"이다.

너희들이 이 "어려운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너희 눈에 골리앗은 더 이상 "무서운 거인"이 아니다.
그냥 "무섭게 생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쉽게 이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이 없는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거인은 (이제부터는 "사단"이라고 해야겠다)
우리가 자기와 경쟁하도록 유혹한다.
곧 힘도 세고 칼도 잘 휘두르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란다.
사람들은 "경쟁" 또는 "싸움"을 하는데
그 경쟁들과 싸움들이 다 사단에게 속아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더 많은 돈,
더 높은 인기,
더 예쁜거나 멋있는 외모,
더 좋은 직업,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것들에서 "골리앗"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
큰 부자들, 연예인들 ...

세상에서뿐 아니라
마리아, 에스더가 있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도
너희들을 기죽게 만드는
엄청나게 부유하고
예쁘고
똑똑한 아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사단은 이런 "골리앗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도 이들처럼
돈도 많이 벌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예쁘게 치장도 열심히 해서 이들을 이기라고 유혹한다.

말하자면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힘"을 기르고
"칼"을 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혹들은
우리 속의 "두려움"만 더 키울 뿐이다.
"골리앗들"은 더욱 커 보이고
나는 더욱 작아 보인다.
골리앗 옆에 서 있는 다윗처럼 말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기 위한 싸움이나
또는 그들보다 더 잘 되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을 믿는 싸움"이다.

다윗은 이새라는 아저씨의 아들이었는데
그의 아버지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고
다윗은 그들 중 막내(youngest)였단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사람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다윗이 사는 동네인 베들레헴에 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새와 그 아들들을 행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이새는 8명의 아들들 중
7명만 데리고 가며 막내인 다윗은 데리고 가지 않는다.
다윗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무엘상 16:11절에 사무엘이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하고 묻자
이새가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형들이 모두 혹시 왕이 될지도 모르는
큰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다윗은 홀로 외로이 들판에 남아서 양을 치고 있다.

다윗의 마음이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불평을 했을 것이다.

"형들은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나는 이게 뭐람!
혼자 들판에 남아서 양 똥이나 만지고...
이러다가 나만 낙오자(dropout)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다윗은 그런 불평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다윗에게는 그런 "두려움"이나 "불안함(anxiety)"이 없었다.
그는 열심히 물맷돌 던지는 연습을 하고
수금(harp)을 연주하며
양들을 열심히 돌보며 지켰단다.

어떻게 다윗은 혼자 들판에 남아 있는데도
두려움도 불안함도 없이
그렇게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까?

사무엘서 16:18절에 보면
사울의 한 신하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설명하는 말씀이 나온다.
그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이 말씀에서 보면
다윗은 여러 재능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특히 다른 점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이 점이다.

다윗은 들판에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그는 형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가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위(kingship)"를 주신다.
Youngest한 그를 highest한 자리로 높이신다.

다윗은 "어려운 싸움"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아주 쉽게" 왕이 되고
"아주 쉽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다.

마리아, 에스더야!

어려운 싸움은 이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령(spirit)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들판에서 하나님과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더 많이 갖기 위해 경쟁하는 삶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유혹을 참아내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것은 한 마디로 유치한 (childish) 것이다.

얘기가 길어진다만 조금만 더 하겠다.
아빠가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은
구슬치기 딱지치기 같은 놀이들을 했단다.

구슬치기가 유행일 때는 구슬이 많은 것이 자랑이고
딱지치기가 유행일 때는 딱지가 많은 것이 자랑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아빠는 아니다 ^^) 같은 나이인데도
딱지치기도 구슬치기도 하지 않는다.
열심히 책을 읽거나
부모님을 도와 상점에서 일을 한다.

그에게 딱지나 구슬은 아무런 의미(meaning)가 없다.
아이들과 놀지는 않지만
공부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일하며 용돈을 모으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level)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이 아이를 example로 말한 것이
"공부 열심히 하고 용돈 벌어라" 하는 뜻이 아니라는 거 알지? ^^)

마리아, 에스더야!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얻기를 원하는 것들이 모두
이렇게 유치한 "구슬"이나 "딱지" 같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조금 많이 있거나 적게 있거나
심지어 아주 많이 있더라도
별로 의미가 없단다.

너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차원(level)의 삶을 사는 것이다.

너희가 어려운 싸움을 싸우고
그리하여 일단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그때부터는 "쉬운 싸움"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용돈을 많이 저축한 그 아이가
딱지나 구슬을 많이 갖고 있는 아이를 보고
부러워할까?
전혀 그렇지 않겠지.
오히려 동정(feel pity)할 것이다.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마리아, 에스더야!

영적인 싸움 곧 "어려운 싸움"을 싸워라!
그러면 골리앗과 같이 무섭게 보이던 세상이
어리고 불쌍한 아이처럼 보일 것이다.

너희를 유혹하는 세상의 childish한 것들을 뿌리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임재하심(presence)를 즐기거라.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고
한 말씀 한 말씀 꼭꼭 마음에 새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묵상하거라.

그러면 너희 눈에 모든 것들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너희 뒤에 서 계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주신 필살의 무기들 (lethal weapons)
사단의 여러가지 허점들 (unguarded points)
그리고 그 사단에게 속아 시달리고 있는
불쌍한 이웃들, 친구들, 세상 사람들 ...

사랑하는 마리아, 에스더야!

너희들이 이 어려운 싸움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강하고 두려움 없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세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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