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온전한 인내를 이루라 (야고보서 1:1-4)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9. 29. 20:14

온전한 인내를 이루라

 

야고보서 1:1-4

 

오늘 말씀은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서신의저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들 중 하나인 그 야고보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고보가 성도들에게 전하는 편지의 시작은 그들이 겪고 있는 시련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시험이란 고난이나 어려움이나 시련을 말합니다. 우리가 늘 인생을 살면서 피하기를 원하고 기도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말합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고난기쁨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고난들 중에서 결코 기뻐할 수 없으며, 또 기쁨은 오직 고난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생깁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말합니다. 여기서 온전히 기뻐한다는 것은 순수한 기쁨또는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그런 기쁨을 말합니다. 많은 시련들과 고난들 중에서 마치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라!”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2절 말씀에서 야고보는 시험을 다른 말로 믿음의 시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들은 믿음의 시련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순수하게 하며, 또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학교에 다니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모양의 시험들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시험 보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들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유익은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모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시험을 통과해야만 그 과목을 끝내고 학점을 받게 되며, 다음 과목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시험은 내가 공부를 잘 해냈음을 보여주고 이를 인정받는 과정입니다. 졸업 성적표에는 이렇게 마친 과목들과 시험 성적들이 죽 나열되어 있습니다. 시험들을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열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들은 믿음의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시련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고 순수해집니다. 그리고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증거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사실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를 뿐 아니라, 믿음에 대해 얘기할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가장 큰 열매는 인내입니다. 인내란 쉽게 말해서 참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태가 계속 되는 가운데 그것을 견디고, 그것에서부터 벗어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난 중에 기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내는 고난의 상태가 오랜 시간을 두고 계속되는 것이며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22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또 요한계시록 3: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말씀들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내를 말씀하실 때 그것은 결코 며칠이나 몇 달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중까지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끝까지입니다. 인내는 우리가 인생의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고생 끝에 인내가 생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우리는 세상이 변할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곧 고난 중에 온전히 즐거워하며 이를 통해 인내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4절에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고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온전한 자는 온전히 인내하는 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강하고 순수하게 하시기 위해 시련들을 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인내가 있습니다. 인내란 거대한 고래 등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래 등위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고래가 힘들다고 움직이거나, 뜨겁다고 요동을 치거나, 또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 하시던 일들을 다 망쳐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고래 등이 마치 육지와 같이, 바위와 같이, 태산과 같이 견고하며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위에 집도 지을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반석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위에 세우시는 교회의 벽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고난들을 온전히 참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반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을만한 아주 든든하고 견고한 반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반석을 교회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또한 이와 같이 작은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들의 기초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많은 시련들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내함으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내의 헌신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오셨을 때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생 끝에 낙을 누리게 됩니다.

 

인내는 집을 지을 터와 같습니다. 터가 닦이지 않고서는 그 위에 아무것도 세울 수 없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우리의 많은 노력이 늘 열매 없이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내는 너무나 값진 보화이며 재산입니다. 그리고 이 보화는 오직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 중에 기뻐합니다. 아니 시련 자체를 매우 기뻐합니다. 이것이 신자가 세상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또 정금 같은 믿음과 인내의 사람으로 빚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