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하나님의 사랑, 세상의 미움 (창세기 37:1-11)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0. 9. 20:10

하나님의 사랑, 세상의 미움

 

창세기 37:1-11

 

오늘 말씀은 야곱의 아들 요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에게는 열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6명은 그의 첫 아내인 레아에게서, 나머지 6명은 둘째 아내인 라헬과 여종인 빌하 및 실바에게서 각각 2명씩 나왔습니다. 요셉은 열 둘 중 11번째 아들이며, 라헬로부터 얻은 첫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에 비해 요셉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왜 야곱은 다른 아들들에 비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라헬의 아들이기 때문이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라헬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녀를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이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여자들에게서 10명의 아들이 생기는 동안, 라헬을 통해서는 한 명의 아들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습니다 (창세기 30:22). 이렇게 해서 야곱은 노년에 라헬에게서 아들 요셉을 얻었습니다. 더구나 라헬이 막내인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자, 요셉은 친모가 없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사정으로 야곱이 다른 아들들에 비해 요셉을 더욱 사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요셉의 또 다른 사랑스러운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매우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2절 말씀에 따르면 그는 형제들과 함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양을 치면서 그가 본 형들의 과실을 다 아버지 야곱에게 고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비밀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통해 모든 일들을 소상히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혈기왕성한 아들들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야곱을 형들은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산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고 또 그를 위해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입니다. 채색옷은 그 당시에는 매우 특별한 색이 화려한 옷이었습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은 금방 눈에 띄었습니다. 열 두 아들 중에 오직 유일하게 색동옷을 입은 요셉은 어디를 가나 표시가 났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 색동옷이 너무 부담스러워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또 이 채색옷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사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버지가 그를 위해 만들어주신 색동옷을 입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입은 것이 아니라, 자나깨나 그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쏟아 붓는 부담스러운 사랑을 잘 받았습니다.

 

야곱과 요셉은 이와 같이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쏟아 부었으며, 요셉은 그 사랑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잘 받았습니다. 또한 요셉은 그가 눈으로 보고 귀를 듣는 모든 것들을 아버지 야곱에게 고하므로 아버지의 산업에 손해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이러한 삶으로 인해 형들의 미움을 받는 것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지 않고자이런 삶을 포기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움을 받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것을 열심히 했습니다. 진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진실한 삶은 그에게 두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아버지의 사랑형들의 미움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사랑도 받으며 형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삶이 아버지의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으며, 불의한 형들의 눈에는 심히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랑도 심하게 받고, 미움도 심하게 받았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삶을 살기 어려운 이유이며, 이것이 요셉이 훌륭한 사람인 이유입니다.

 

요셉과 야곱의 관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실된 삶을 살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세상의 죄를 드러내며 이로 인해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께 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몇몇 제자들을 부르시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니라!” 그리고 이런 그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또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동시에 세상의 미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커지는 반면 동시에 세상의 미움도 더욱 거세어집니다. 결국은 그 틈바구니에 끼여서 많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이며,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사하지만, “세상의 미움을 감당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늘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사람들을 이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요셉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형들을 이기고 그들을 다스리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꿈으로 요셉에게 보이셨습니다. 요셉이 꾼 꿈에 형들이 그의 앞에 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꿈을 두 번이나 보여주심으로, 이것이 장차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이루실 일이심을 확약하셨습니다. 과연 그 꿈대로 후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이 지난날 행했던 모든 잘못들에 대한 용서를 빌었습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의 사람으로 진실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피하기 위해 또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그 진리를 포기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는 늘 진리 편에 섰습니다. 이런 그의 고지식함이 그에게 많은 시련들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늘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요셉의 삶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은 늘 형통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는 늘 장관으로 살았습니다. 아버지 밑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형들 가운데 장관 노릇을 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뒤 보디발의 집에서 온 집을 관리하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지만, 이곳에서도 옥중 죄수들을 관리하는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애굽과 온 세상을 관장하고 다스리는 세계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 세상의 미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미움을 피하기 위해 진리를 포기하면, 잠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의 미움을 함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의 사랑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리가 영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꿈을 가진 자가 됩니다. 능히 세상을 심판하며, 장관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진실된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의 미움을 이기는 용기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