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메시지

태초에 하나님이 (창세기 1:1-5)

전낙무 목사 성경공부 방 2014. 10. 14. 20:05

태초에 하나님이

 

창세기 1:1-5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 66권의 책들을 모아놓은 것이며, 창세기는 그것들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책입니다. 창세기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근본에 관한 책입니다. 따라서 창세기를 읽으면 만물이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겨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의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성경 66권 중 어느 한 권이 빠지더라도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지만, 창세기가 빠지면 성경이 더 이상 성경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를 모르고서는 우리가 성경의 메시지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를 잘 공부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시작의 책인 이 창세기의 시작 부분입니다. 성경의 시작입니다. 첫 말씀은 이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태초모든 만물이 시작되는 시점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들에는 그것들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 부모의 태에서 나온 것처럼, 세상 만물도 영원토록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처음으로 생겨난 시작이 있는 것입니다. 만물에 그것의 시작이 있는 것처럼, 또 그것들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장차 일어날 일들을 비전으로 보이신 예수님께서 끝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이에 사도 요한이 외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마무리 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립니다. 이렇게 세상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주님의 오심을 대망하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친 것이 2000년 전의 일이니, 주님의 오실 때가 이제 훨씬 더 가까워온 것입니다. 이 두 사건, 곧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장차 있을 예수님의 재림이 마치 두 개의 닻과 같이 우리 마음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늘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앞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삽니다. 세상에 자리를 깔고 천년 만년 그곳에 정착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 조차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삶을 살기보다, 안정된 세상의 삶을 동경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끝이 나면 불이 켜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실 일들이 다 끝나면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주님 앞에서 서야 합니다. 심지어 무덤 속에 누워있는 자들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자녀들은 우리 본향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장차 임할 주님의 나라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순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만물에 시작이 있으며, 그것들을 시작하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근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그 능력으로 이것들을 붙드시고 또 운행하십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상 만물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들을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아주 특별하신 존재이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지만 세상의 일부가 아니며, 세상의 일부가 아니시지만 우리와 교제하시는 한 개인으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일반적인 지각 곧 우리의 오감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방 안에 갇혀 있으면서 집 건물의 전체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로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심과 일하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놓고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을 재단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비추심과 인도하심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지만 마치 세상 밖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세상을 다스리는 듯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산 위에서 서서 저 멀리 들판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 내려다보며 그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로 삼으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비밀한 것들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같은 축복을 내리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며, 장래 일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벗어나 산 위에 올라 하나님과 함께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삶이며 신령한 삶인 것입니다.

 

2절은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시기 전의 세상의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으며 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 창조의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창조의 역사는 단순히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역사는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고, 공허함을 생명들로 채우며, 어둠을 빛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매우 예술적인 것들이며, 보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작품들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보고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2절에서 언급하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최초의 세상이 마치 아무 것도 없는 흰 도화지와 같았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흰 도화지 위에 놀라운 그림을 그리신 것입니다.

 

천지 창조는 삼위 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신 곧 성령께서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하시며 빛이 있었고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말씀하시자, 곧 빛이 생겨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 말씀대로 곧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별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들을 그냥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예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되는 일들을 그냥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사,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에 눈을 뜨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날이 이르기까지 이 영광을 찬송하며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