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269

세상을 이기는 삶 (사무엘상 18-20)

세상을 이기는 삶 사무엘상 18-20 크리스천의 삶을 여러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 중 하나는 “세상을 이기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 중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b).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요한1서 5:4-5절 말씀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 말씀은 이해하기 ..

메시지 2022.09.05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 왕으로 부르시며 그에게 기름을 붓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추앙 받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founder)라고 한다면,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시조라고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시작 부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계보가 나오는데, 이 계보에서 오직 다윗에 대해서만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왕들이 이 계보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에 대해서만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합니다 (마태복음 1:6). 이는 다윗이 “여러 왕들 중 하나(one of the kings)”가 아니라,..

메시지 2022.08.29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 9:1)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 9:1 오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권능(power) 또는 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까요? 물론 이것은 단순히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거나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육체적 힘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 권능은 더 고차원적이며, 심지어 영적인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어떤 사람에게 권능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저의 직속 상관은 계급이 “대령”이었습니다. 군대 내에서는 꽤 높은 계급이며 사병인 저는 늘 그의 옆에 서서 명령을 받을 뿐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

메시지 2022.08.22

그리스도 나의 자랑, 나의 생명, 나의 행복 (마가복음 8:27-38)

그리스도 나의 자랑, 나의 생명, 나의 행복 마가복음 8:27-38 사람들에게는 늘 마음에 품고 있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다. 큰 소망이 있고 작은 소망도 있습니다. 또 어떤 소망은 먼 미래의 일이며 어떤 소망은 가까운 장래 일입니다. 이런 소망들 중에는 우리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궁극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인생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소망 또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은 돈이나 지위나 쾌락이 결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메시지 2022.08.15

하나님의 언약궤 (사무엘상 4:1-11)

하나님의 언약궤 사무엘상 4:1-11 성경에 쓰여진 모든 이야기들과 교훈들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를 하나 말해야 한다면, 저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곧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은 참으로 성실하십니다. 그것은 항상 자비롭고, 선하며, 지혜롭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며, 모든 거스르는 대적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뻐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순종하여 따른다면 우리는 이 영광의 증인이 되며, 늘 하나님의 영광의 축복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메시지 2022.08.08

벳새다의 소경을 보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8:22-26)

벳새다의 소경을 보게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8:22-26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벳새다의 한 소경을 보게 하십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라는 마을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와 그에게 손을 대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눈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자 그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만물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저는 “본다 (see)”는 말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에 공부한 본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님..

메시지 2022.08.01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 (마가복음 8:11-21)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 마가복음 8:11-21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누룩(yeast 또는 leaven)”은 누룩곰팡이를 함유하고 있는 발효제인데, 이 곰팡이는 당이나 탄수화물을 흡수하여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배출합니다. 그래서 누룩은 술을 빚거나 빵의 반죽을 부풀릴 때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좋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또 나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천국의 비유들 중 누룩의 비유가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33). 아주 적은 양의 누룩 안에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폭발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

메시지 2022.07.25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8:1-10)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8:1-10 우리는 몇 주 전에 마가복음 6:30-44절을 통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칠병이어)로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몇 가지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반복 교육과 같은 것입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교훈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참 목자 (the Shepherd)”가 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목자란 오늘날 흔히 쓰는 말로 “지도자(le..

메시지 2022.07.18

열리라 (마가복음 7:31-37)

열리라 마가복음 7:31-37 인터페이스 (Interfa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사전적인 정의는 “두 독립적인 시스템, 주체, 기관 등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거나 소통하는 장소(the place at which two independent systems, subjects, organizations, etc. meet and act on or communicate with each oth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인터페이스는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 콘센트”도 일종의 인터페이스입니다. 우리가 TV나 냉장고 같은 전기 기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기구와 연결된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아야 합니다. 그러면 전기 회사의 전기 공..

메시지 2022.07.11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1-31)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1-31 우리는 지난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일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사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있을 수가 없으며, 또 부활이 없는 십자가 죽음이란 다른 죽음들과 다를 바 없이 의미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4: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

메시지 2022.07.04